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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34:1~22   자유를 주리라     2014. 8. 20

14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1)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16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1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난 반응들은 율법의 무거운 집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 있다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이 되는 것은 참된 자유와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동안 억지로 마지못해 충성 헌신 하였는데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의 자유를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누리는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로마서 8:1~17절입니다. “봉독” 아주 긴 본문입니다. 이미 로마서 강해에서 다 보았기에 오늘 주제와 연결하여 간략하게만 보겠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 묶여있는 자를 해방시키십니다. 이러한 일을 위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에게 죄를 정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내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의 다 이루심으로 의가 만들어집니다. 그 의를 선물로 받은 자들이 바로 주의 영이 임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릅니다. 또한 반드시 영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영의 인도란 곧 말씀의 인도입니다. 말씀이 문자가 아니라 주님의 영으로 일하셔서 책망하고 훈계하며 의로 교육합니다. 또한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의 인도가 없이 단지 자신이 그동안 종교적인 속박에서 해방되었다며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한 다면 이 사람은 참된 해방과 자유를 맛보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유라는 말에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자유를 주리라’는 말씀이 자유가 아니라 심판에 붙여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자유가 어떤 것인지 보겠습니다. 

오늘본문 예레미야 34:1~5절입니다.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 3 네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손에 넘겨져서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의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너는 바벨론으로 가리라”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실 것이며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왕도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손에 넘겨지고 그 얼굴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선지자가 이런 말을 왕에게 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에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가서 전하여야 하는 것이 말씀의 힘에 떠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에게도 나라가 망하고 사로잡힐 것을 말합니다. 

4~6절입니다. “4 그러나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5 평안히 죽을 것이며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네 조상들 곧 선왕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6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 모든 말씀을 예루살렘에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니라 7 그 때에 바벨론의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들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시드기야 왕의 죽음이 어떠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칼에 죽지 않고 평안히 죽을 것이며 백성들이 애통하며 선왕들에게 분향하듯이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52장에 보면 시드기야는 자기의 눈앞에서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으며 그 후에 두 눈이 뽑히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감옥에서 죽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시드기야는 평안한 죽음을 죽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끝까지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견고한 성읍으로 여긴 ‘라기스’와 ‘아세가’가 예루살렘과 함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때 시드기야 왕이 히브리 노비를 해방시키는 일을 합니다. 

히브리인이 동족을 노비로 삼는 경우는 히브리인이 살기가 힘들어 빚을 질 경우에 그 빚 대신에 자기의 몸을 종으로 파는 것입니다. 그러면 6년을 종으로 섬기고 나면 7년째는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신15:12).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시드기야 때에 하나님께서 노비들에게 자유를 주라는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이 백성들과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하게 됩니다. 이것은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지경에 자기들의 힘을 합하여 바벨론을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호와의 지시가 없었는데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백성들의 힘을 모아야 하기에 자발적인 율법지킴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자구책입니다. 마치 아브라함 링컨의 흑인노예 해방운동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거나 휴머니즘이 아니라 정치적인 결정이 더 큰 것처럼 시드기야 왕이 정치적인 이유로 노비를 데리고 있는 자들과 언약을 체결하여 노예들에게 자유를 준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일을 행하고 나니 바벨론이 포위를 풀고 잠시 물러간 것입니다. 37:5절을 봅니다.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대항하고 있으며 또한 애굽에 원병을 요청하였기에 애굽에서 군대를 보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바벨론 군대가 잠시 포위를 풀고 예루살렘에서 물러갑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시드기야 왕이나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노비에게 자유를 준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으로 여기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여야 할 거입니다. 그런데 포위가 풀리자말자 곧 풀어준 노비들을 다시 잡아와서 노비를 삼아버린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8~11절입니다.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9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10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방금 말씀드린 대로 여호와의 지시가 없이 스스로 왕과 백성들이 계약을 맺고 노비에게 자유를 주었다가 다시 노비로 삼았습니다. 

12~16절입니다. “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14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1)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16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 되었던 자들을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으로 해방시켜 약속의 땅에 들여놓으실 때에 시내산에서 피를 뿌려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땅에는 자유가 늘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자유에 대하여 6년 일하면 7년째 자유를 주어야 하고 또 희년이 되면 모든 종들이 자유를 얻고 경작권을 팔았던 땅도 아무 조건 없이 원 주인에게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도 땅도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말씀이 레위기 25장에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을 통하여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가 율법으로 제정되어있기에 이방나라들의 빈익빈 부익부의 모습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어느 왕과 백성도 제대로 자유를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시드기야가 이런 일을 행한 것입니다. 율법의 순종보다는 힘을 합하여 바벨론을 대항하기 위한 의도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지만 바벨론을 대항하기 위한 것이든 어떻든 간에 노비에게 자유를 준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기니 다시 풀어준 노비를 잡아온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행위가 됩니다. 

17절입니다. “1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않고 다시 그들을 종으로 삼았기에 이제 여호와께서 이들을 대적하여 자유를 주신다고 합니다. 이 자유란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 자유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자유란 바로 심판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자유를 좋아하지만 참된 자유란 주님께서 우리를 언약으로 붙들고 계시는 것이 자유입니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곳에서 주님의 십자가로 해방시키셔서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곳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자유란 주님의 언약에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언약 곧 새 언약에 붙들려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인 줄 아는 자들은 아직도 죄와 사망의 종일뿐입니다. 그 중간지대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자유를 주신다는 이 자유란 그야말로 심판의 말씀입니다. 

18~22절입니다. “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19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20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21 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언약 체결이란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언약 당사자들이 그 사이로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건 언약체결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의 언약 체결장면도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이 일방적인 은혜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타는 불의 형상으로 지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드기야는 노비를 둘 정도의 재력과 권력이 있는 자들 곧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 내시들, 제사장들, 이 땅 모든 백성들을 모아서 송아지를 쪼개어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노비들에게 자유를 주자고 하였지만 그러나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기자 다시 노비를 잡아왔기에 여호와께서 이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너희에게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70년이 되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옵니다. 이제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노비들을 법대로 풀어주면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왔지만 인간은 역사를 보고서 교훈을 삼을 만큼 지혜롭지 못합니다. 이렇게 가면 나라가 망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망하는 길에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나온 것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나온 것도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입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하나님의 자유를 알고 그 자유를 선포하며 살았습니까? 

느헤미야 5:1~5절입니다. “1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하고 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왔지만 여전히 고리대금으로 자기 백성을 종으로 만들고 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느헤미야가 크게 노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고 다시 백성들과 언약을 새롭게 하여 동족에게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고 꾸어준 것의 백분의 일을 돌려주게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맹세시킨 후에 옷자락을 털며 이 언약을 배반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털어 버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나라가 망하여 돌아온다고 해도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옛 언약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은 말씀을 마음에 새겨버립니다. 이것은 주의 영이 임하여 자기 백성을 이끌어 가심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새 언약에 이끌려 갈 것을 예레미야 31~33장을 통하여 말씀하신 후에 34~38장을 통하여 마지막 경고를 한 번 더 하십니다. 마지막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어떤 계시의 말씀을 받았습니까?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스스로 순종하여 이루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바벨론을 대항하기 위하여 노비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그 순간 바벨론이 물러가자 자유를 준 노비를 다시 노비로 삼아버리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며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느헤미야서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율법이 아닌 새 언약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새 언약의 백성들은 어떻게 인도받을까요? 

고린도후서 1:8~10절입니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새 언약의 백성은 살 소망까지 끊어지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참된 자유는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인 그리스도의 사랑(롬8:35)의 줄에 묶여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자유를 얻은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가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는 반드시 임하는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가 임하면 당황하지 마시고 천천히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