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4:1~30   개혁이 안 되는 인간    2014. 11. 12  

1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난을 보았느니라 보라 오늘 그것들이 황무지가 되었고 사는 사람이 없나니 3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으로 말미암음이라 

오늘 제목을 ‘개혁이 안 되는 인간’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회개가 안 되는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10월 말이 되면 해마다 종교개혁의 정신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이라는 기치아래 칼뱅의 교리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전적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에 대하여 금요성경공부 시간에라도 한번 씩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개혁주의는 항상 개혁한다는 것이 개혁주의 이지만 개혁을 한다고 오백 년 동안 개혁하여도 별로 개혁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개혁한다는 그 역사와 전통이 새로운 힘이 되어 버린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사람이 개혁하여 고쳐지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성을 선포하고 그 완성된 약속의 말씀이 믿어지는 자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표현하는 말이 ‘죽었다 깨도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고쳐지지 않는 불가능한 일인지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그것은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표현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에스겔서를 통하여 이미 살펴보았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도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런 자들이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하여 광야에 나왔을 때에 광야 40년 동안 늘 반역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사사시대와 왕들의 시대에 단 한 번도 온전하게 하나님을 섬긴 적이 없습니다. 

에스겔 23:1~4절을 봅니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머니의 딸이라 3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져졌나니 4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애굽에서부터 음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망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우상숭배 하였습니다. 오늘은 바벨론에 의하며 멸망할 때에 애굽으로 피난간 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예레미야 44:1~3절입니다. “봉독” 애굽에서 우상숭배 하던 자들을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하여 약속의 땅에 들여놓았지만 이들은 끊임없이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우상숭배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자기를 위한 하나님으로 부르며 섬기는 것 역시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이란 자기를 위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시내산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내라고 백성들이 아론에게 요구하여 만들어진 신이 금송아지입니다. 자기를 위한 신이 우상이며 이러한 우상의 근원은 탐심입니다(골3:5). 이러한 탐심의 근원은 아담과 하와가 받은 유혹입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선악과의 유혹에 넘어간 인생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아 나온 자들이 다시 애굽으로 피난하여 들어간 것입니다. 우상숭배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멸망하였는데도 다시 애굽으로 피난 간 것이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 때문이라고 합니다. 

4~6절입니다. “4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 5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6 나의 분과 나의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살랐더니 그것들이 오늘과 같이 폐허와 황무지가 되었느니라” 우상숭배 하는 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냈습니다. 한두 번 보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보내어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여전히 우상에게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않았기에 여호와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불살라 폐허와 황무지가 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어 있을 때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애굽으로 피난 왔습니다. 피난 오기 전에 예레미야에게 기도요청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들에게 좋든지 아니 좋든지 순종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0일 후에 기도응답이 왔습니다. 애굽으로 피난가지 말고 유다 땅에 남아있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스스로 속은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죽었다 깨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를 절대 진리로 여기고 있기에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하난의 일행이 유다의 남은 자들과 예레미야까지 함께 끌고 애굽으로 왔습니다. 이 애굽에서 다시 우상숭배를 합니다. 

7~10절입니다. “7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가운데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남은 자가 없게 하려느냐 8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이 만든 것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너희가 가서 머물러 사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 버림을 당하여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저주와 수치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9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조상들의 악행과 유다 왕들의 악행과 왕비들의 악행과 너희의 악행과 너희 아내들의 악행을 잊었느냐 10 그들이 오늘까지 겸손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 앞에 세운 나의 율법과 나의 법규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다시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가운데 남은 남녀와 아이와 젖먹이 까지 멸절하여 남은 자가 없게 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유다 왕들과 왕비들과 너희와 너희 아내의 악행을 잊었느냐고 합니다. 그러한 우상숭배라는 악행을 통하여 나라가 망하여 애굽까지 피난하여 왔는데도 겸손하지도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의 악함이 어떠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그 바닥까지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조상들이 악행을 하여 나라가 망하여 피난 왔는데도 다시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 회개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조상들이 행한 그 악행이 무엇인지 요시야 왕의 개혁을 통하여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23:3~7절입니다. “3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6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7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요시야 왕 때에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된 율법 책으로 인하여 엄청난 개혁을 하였습니다. 그 개혁을 한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과 유다 땅에만 우상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섬긴다는 성전 안에 어떤 우상들이 가득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섬기는 온갖 기구들이 다 있었습니다. 심지어 성전 가운데 남창도 있었습니다. 이방의 신들이란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성적인 혼음을 하는 것도 제의의 속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우상이 가득한 역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상을 버리고 개혁하여도 그들의 마음을 근원적으로 주께로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44:11~14절입니다. “11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12 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13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 14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려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살아남아 소원대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여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요시야 왕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뿌리 깊은 우상숭배는 돌이킬 수가 없었기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하여 겨우 남은 자들이 피난가지 말라는 애굽까지 피난을 와서는 이곳에서 다시 우상을 섬기고 있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을 향하여 심판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여 멸망시키신다고 합니다. 칼과 기근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와 전염병으로 벌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애굽으로 가면 살 줄 알고 피난 갔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곳까지 심판을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15~19절입니다. “15 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19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애굽에서도 우상 숭배하는 이들을 향하여 너희와 너희 조상들이 우상숭배로 인하여 유다가 멸망하였는데 여기서도 다시 우상을 섬기느냐며 여호와의 말씀으로 책망을 합니다. 여기에 대한 우상숭배 하는 모든 남자와 여자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항변을 합니다.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제사할 때에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고난을 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 여왕에게 제사를 폐하고부터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앞에서 찾아본 요시야의 개혁으로 모든 우상들을 철폐하고 나니 오히려 나라가 망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므낫세 왕 때와 같이 우상을 가득 섬길 때 나라가 든든했다고 하는 역사적인 경험을 가지고 예레미야를 대항합니다. 여인들이 하늘 여왕 곧 풍요와 다산을 준다는 아스다롯을 섬길 때에 남편의 허락 하에 그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실상입니다. 우상을 섬길 때는 기근도 오지 않고 전쟁도 없이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우상을 버리고부터 기근이 왔고 전쟁으로 나라가 망하여 이렇게 피난 온 신세가 되었으니 이제라도 하늘 여왕에게 제사를 드림으로 그 복을 받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땅의 교회의 모습과 별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 잘 살았는데 하나님을 믿고 나니 오히려 어려움이 많다고 하면서 이것을 무언가 하나님을 잘 못 믿어서 그렇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겨 땅에서도 잘 되고 하늘에서도 많은 상을 받자고 하는 마음의 자세와 같은 모습입니다. 

20~23절입니다. “20 예레미야가 남녀 모든 무리 곧 이 말로 대답하는 모든 백성에게 일러 이르되 21 너희가 너희 선조와 너희 왕들과 고관들과 유다 땅 백성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분향한 일을 여호와께서 기억하셨고 그의 마음에 떠오른 것이 아닌가 22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나니 23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와 여러 증거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일어났느니라”

애굽으로 피난 온 사람들과 예레미야의 상황 해석이 정반대입니다. 피난 온 자들의 말은 자신들이 하늘 여왕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아서 나라가 망하고 이렇게 피난 온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예레미야는 너희의 그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여호와께서 더 참을 수 없으셨기에 오늘과 같이 황폐하여 졌고 놀램과 저주거리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유다의 백성들과 예레미야는 도저히 더 이상의 접점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라도 비슷한 내용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함께 애굽으로 끌려온 것은 이러한 유다 백성들의 죄악의 끝까지 폭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24~25절입니다. “24 예레미야가 다시 모든 백성과 모든 여인에게 말하되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 사람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와 너희 아내들이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이루려 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서원한 대로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리라 하였은즉 너희 서원을 성취하며 너희 서원을 이행하라 하시느니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애굽에서도 전하였지만 이들의 마음을 돌아서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의 말하고 서원한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너희 서원을 성취하며 너희 서원을 이행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라 버려주시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으시고 버려두심이 심판입니다. 

26~27절입니다. “26 그러므로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 사람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나의 큰 이름으로 맹세하였은즉 애굽 온 땅에 사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을 부르며 주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으리라 27 보라 내가 깨어 있어 그들에게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되리라” 하나님께서 버려둔 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이 믿은 것은 하늘 여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버림을 당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소수를 남겨 유다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들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증인으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28~30절입니다. “28 그런즉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사는 유다의 모든 남은 자가 내 말과 그들의 말 가운데서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알리라 2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곳에서 너희를 벌할 표징이 이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재난을 내리리라 한 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그것으로 알게 하리라 30 보라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그의 원수 곧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긴 것 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애굽에서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유다 땅으로 들어가서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알릴 것이라고 합니다. 유다로 돌아간 자들이 애굽으로 피난한 자들이 망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수의 사람을 칼을 피하여 돌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애굽에 피난한 자들이 망하는 것은 애굽이 망해야 합니다. 애굽을 의지하여 피난 갔으니 그들이 의지하던 애굽이 망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긴 것 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애굽이 바벨론에 의하여 패배하게 되는 것을 지난주에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회개하거나 개혁할 수 없음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여실하게 증명이 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들어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린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이 유명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문화재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패러디 했는지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아는 것만큼 들린다고 하면서 곡을 해설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아는 것만큼 보일까요? 그 아는 것이 누가 아는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안다는 것들이 말씀 앞에 날마다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안다는 것이 지식으로 남아있으면 이것 또한 우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그 말씀을 포착하여 나의 것으로 포획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이 우리를 날마다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느 성경을 보든지 간에 나의 죄가 드러나게 되며 이런 죄인으로 인하여 진리이신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이 날마다 새롭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개혁하거나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자기 백성들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무너뜨린 후에 세우며 건설하시는 것을 믿고 살게 됩니다. 

호세아 2:14~20절입니다.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늘 바람만 피우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도하셔서 그 입에서 바알의 이름을 제거하시고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이 역사 속에 살려두시는 이유는 바알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그 이름을 기억도 못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나라가 망하여 애굽으로 피난 가서도 버리지 못하는 그 바알과 아세라를 그 풍요의 신을 다 부수어 내시는 과정이 이 역사입니다. 그렇게 바알을 제거하시고 하나님께서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과 진실함으로 장가들어 영원히 살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로 자기 약속을 다 이루시고 성도 안에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영원히 사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스스로 개혁할 수도 회개 할 수도 없는 자기 백성들을 오직 자기 언약과 자기희생으로 재창조 해내시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은혜 가운데 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