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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1:41~53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2015. 4. 22

 

50 칼을 피한 자들이여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

계속하여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바벨론이란 그 동안 살펴보았듯이 유프라테스 강가의 그 바벨론제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의 총합이 바벨론입니다.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한 거룩한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그들이 스스로 원한 것은 세상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그들을 삼켜버린 것이 바벨론 유수(幽囚)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신실하게 이루시기 때문에 바벨론에 삼켜진 자기 백성을 다시 끄집어내시기 위하여 바벨론을 심판하십니다.

 

41~43절입니다. “41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온 세상의 칭찬 받는 성읍이 빼앗겼도다 슬프다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폐하였도다 42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노도 소리가 그 땅을 뒤덮었도다 43 그 성읍들은 황폐하여 마른 땅과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으니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도다

 

세삭은 바벨론의 별명입니다. 이 바벨론이 온 세상의 칭찬받는 성읍이었습니다. 칭찬 받는 다는 말은 자랑거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온 세상의 자랑거리가 된 그 바벨론이 멸망하게 된 것을 슬픈 탄식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멸망의 모습을 함락되고 빼앗기고 황폐하여졌다고 합니다. 마치 큰 파도가 덮치듯이 대적들이 그 땅을 뒤덮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은 황폐하여 사막과 같이 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습니다.

 

44절입니다.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벨은 바벨론의 주신(主神)입니다. 바벨론의 신을 벌하신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을 삼키면서 자기들의 신이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의 입에서 그가 삼킨 것을 끌어낼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 비록 세상에 삼켜졌다고 하여도 그곳에서 소화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끄집어내시기 위하여 바벨론을 무너뜨리시는데 그 성벽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이 성벽은 외벽의 두께가 3.5미터 내 벽의 두께가 6.5미터 그 사이 구덩이의 폭이 7미터라고 합니다. 그 당시로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벽입니다. 그런 성벽이 무너졌다고 완료형으로 말씀합니다.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에 바벨론이 무너졌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최고의 강성한 나라였기에 주변국들을 정복하고 예루살렘마저 함락시켰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바벨론이 이미 멸망하였다고 완료형으로 말합니다. 이런 말씀을 볼 때에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여호와의 말씀은 언제나 신실하게 이루어내시기에 선포 그 자체가 이미 완료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다른 표현으로 묵시에서 완료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로 표현하면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 속에서 아직 일어나지 아니한 일도 이미 완료된 것으로 말하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45절입니다.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아직 멸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이미 멸망한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하여 나오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피하여 나오는 사람은 이미 바벨론의 멸망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곳에서 머뭇거릴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자기가 수십 년 수백 년 대대로 살던 곳에서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그들을 떠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끄집어내시듯이 바벨론에서도 끄집어내십니다.

 

44절을 보시면 내 백성을 바벨론에서 끄집어내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나오는 것은 제 2의 출애굽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에 성도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성도(聖徒)란 거룩한 무리입니다. 거룩함이란 분리를 말합니다. 멸망할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분리되어 모인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도가 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세상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 때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나오듯이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바르고 세상과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자기 백성들을 이끌어 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출애굽이 일어나며 날마다 바벨론에서 빠져 나오는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하신 말씀을 주님께서 이루어내시기 때문입니다.

 

46절입니다. 너희 마음을 나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소문은 이 해에도 있겠고 저 해에도 있으리라 그 땅에는 강포함이 있어 다스리는 자가 다스리는 자를 서로 치리라우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세상에서 이리 저리 흔들어서 끄집어내십니다. 그렇게 흔들리게 될 때에 마음을 나약하게 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의 소문들은 이 해에도 있을 것이고 저 해에도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당시에는 전쟁의 소식입니다. 다스리는 자가 다스리는 자를 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흉흉한 소식은 이 땅에 늘 들립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전쟁과 기근, 전염병, 종말의 현상들이라고 하는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나고 그런 것을 무섭게 유포시키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두려운 소문들로 떠는 자들을 자기의 먹잇감으로 삼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을 들어야 안전하다고 합니다. 우리 단체에 들어와야 종말에 구원을 얻는다며 온갖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것들은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끝난 세상임을 아는 자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가 이미 완료이기에 바벨론이 멸망했다는 말씀은 온 세상이 멸망했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멸망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인데 그런 것으로 두려워한다면 성도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2:14~15절을 보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평생 매여 종노릇하고 있는 자가 모든 인생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놓아주기 위하여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의 잡은 마귀를 이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성도는 이미 이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 이기에 세상이 무너지는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47~49절입니다. “47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바벨론의 우상들을 벌할 것이라 그 온 땅이 치욕을 당하겠고 그 죽임 당할 자가 모두 그 가운데에 엎드러질 것이며 48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리니 이는 파멸시키는 자가 북쪽에서 그에게 옴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9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죽여 엎드러뜨림 같이 온 세상이 바벨론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리라

 

날이 이르면 바벨론의 우상들을 벌하신다고 합니다. 앞에서는 이미 완료형으로 말씀하시고 이곳에서는 앞으로 바벨론의 우상들을 벌하신다고 합니다. 이미 역사 속에서도 바벨론은 멸망했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바벨론으로 여겨진 로마제국도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자체도 바벨론이기에 멸망할 것입니다. 그렇게 멸망을 당하면 온 땅이 치욕을 당하고 죽임 당할 자가 그 가운데서 엎드러질 것입니다. 이때에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할 것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을 파멸시키는 세력이 와서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죽여 엎드러뜨림 같이 온 세상이 바벨론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려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앞에서도 보았습니다. 세상 곧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피 흘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한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를 흘린 땅입니다. 그런데 그 죽임 당하면서 증거 한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피 흘렸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죽임 당한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그리스도를 증거 한 자들이 피 흘린 성읍을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는데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입니다(11:8). 주께서 못 박히신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 소돔과 애굽이라면 온 세상이 이러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곳에서 나오라고 합니다. 이미 멸망한 세상이기에 빠져나온 자들은 기뻐합니다.

 

요한계시록 18:15~20절입니다.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세상이 이미 멸망한 것을 아는 자들은 세상이 무너지는 소식에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아는 자들만 세상이 무너지는 소식을 울며 애통해 합니다. 20절을 다시 봅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그로 말미암는 다는 말씀은 바벨론의 멸망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즐거워하는 자들은 바벨론에서 빠져 나와서 무너지지 아니할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게 됩니다. 이들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합니다. 이런 말씀은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은 우리가 바벨론에 속하여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 세상이 바벨론임을 알게 하시고 반드시 그 속에서 끄집어내십니다.

 

50~53절입니다. “50 칼을 피한 자들이여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 51 외국인이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므로 우리가 책망을 들으며 수치를 당하여 모욕이 우리 얼굴을 덮었느니라 52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그 우상들을 벌할 것이라 부상자들이 그 땅에서 한숨을 지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3 가령 바벨론이 하늘까지 솟아오른다 하자 높은 곳에 있는 피난처를 요새로 삼더라도 멸망시킬 자가 내게로부터 그들에게 임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멸망에서 피한 자들입니다. 바벨론이 멸망당할 때에 함께 멸망당하지 않도록 미리 세상에서 흔들고 뽑아서 자기 백성으로 불러내신 자들을 향하여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고 합니다. 전에는 예루살렘의성전이 수치를 당하였지만 이제 그 예루살렘을 무너뜨린 자들이 멸망할 것이기에 그곳에서 빠져 나왔다면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고 합니다. 바벨론이 멸망하지 않으려고 하늘까지 솟아오르고 높은 곳에 피난처를 삼아도 멸망시킬 자가 여호와로 인하여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도 장차 이렇게 됩니다. 이런 곳에서 빠져 나온 자들에게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고 합니다.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고 하니 Tom JonesKeep On Running 이 생각이 났습니다. 물론 가사의 내용은 다르지만 그 제목이 계속 달리라는 말이라서 생각이 났습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입니다. 정주하지 않습니다. 애굽에서 나왔다면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지난주 어떤 두 사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함께 다니던 교회에서 찬양대를 하던 두 사람이 서로 진리를 찾는다고 헤어졌다가 10년 넘어 만난 것입니다. 한 분은 어떤 교회가 종착역이라고 생각하면서 7년을 훈련받았는데 그곳도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헤매다가 여기서 눈물의 상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이 결코 머물 곳이 아닙니다. 만약 이곳이 계속 머물 곳이라면 이곳이 우상숭배의 자리가 됩니다. 우리는 멈추지 말고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정말 바벨론에서 빠져 나왔습니까?

 

팝송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더 합니다. 보니 엠의 Rivers Of Babylon입니다. 이 노래는 흑인 여성 3명과 남자 한명이 노예의 옷처럼 입고 노래를 합니다만 그 곡이 디스코 풍의 경쾌한 곡으로 유행한 노래이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을 할 때에 가사도 중요하지만 곡도 중요합니다. 가사는 바벨론 유수에서 해방되어 시온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곡이 고고클럽에서 춤추기 좋은 곡입니다. 복음 성가 중에도 이런 곡들이 많습니다. 가사보다는 곡으로 인하여 청소년들이 펄쩍 펄쩍 뛰는 곡들이 많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은 말씀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보니 엠의 바벨론 강가라는 노래의 가사가 나오는 시편을 보겠습니다.

 

시편 137편입니다.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바벨론의 포로지에서 시온을 향한 그리움의 찬양입니다. 이런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 바벨론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면 바벨론에서 시온을 향하여 어떻게 걸어가겠습니까? 멈추지 않고 걸어간 것입니다. 물론 중간에 쉬기도 하고 잠도 자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멈출 수가 없습니까? 시온을 향하여 달려가는 그 마음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한 바벨론, 멸망할 바벨론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끄집어내시고서는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고 합니다. 시온을 향하여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돌아간 시온마저 다시 무너져 내려버립니다. 로마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을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그러면 성도는 어디로 멈추지 말고 걸어가야 합니까?

 

빌립보서 3:10~14절입니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바울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사로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사로잡아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 상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는 것입니다. 그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것은 이 땅에서 십자가로 달려가는 길입니다.

 

디모데후서 4:7~8절입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사도가 자신은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서 달려왔습니까? 앞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달려 온 것처럼 디모데에게 달려가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바울과 디모데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지만 바울은 예수님께 사로잡혀 그 잡힌바 된 것을 향하여 달려왔다고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의의 면류관도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의가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이러한 의는 바울만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십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은 멈추지 않고 걸어가도록 우리의 모든 상황을 흔들어서 이끌기도 하시고 밀기도 하시고 엎기도 하시고 안기도 하시면서 데리고 가십니다. 그러므로 무너진 바벨론에서 빠져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으로 멈추지 않고 우리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 다시는 오시는 그날까지 걸어가게 되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