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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5:1~31 저울에 달아보니 2015. 8. 12

 

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본문 1절을 봅니다.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벨사살 왕이 나옵니다. 바벨론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 나보니두스로 되어있습니다. 그의 장자가 벨사살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서에는 바벨론 왕의 이름이 느부갓네살과 벨사살 두 사람만 나옵니다. 성경은 역대지략에 기록될 내용을 기록한 것이 아님을 열왕기를 통하여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 아니냐고 묻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벨론의 역사기록들이 고고학을 통하여 발견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사후에 짧은 기간 동안 몇 번의 반역들이 있었고 마지막 왕이 나보니두스이지만 그의 장자가 바벨론의 실질적인 통치를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변의 적들이 바벨론을 공격하기에 나보니두스는 적들을 막으러 나가야 합니다. 왕궁은 자신의 장남에게 맡겨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벨사살이 바벨론의 왕궁에서는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브갓네살의 아들이라고 되어있지만 이 당시는 존경할만한 선조를 아버지로 부릅니다.

 

본문 1~2절을 봅니다. “1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2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3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 4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 구리, ,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다니엘 임팩트라는 한홍 목사의 책에서 이 본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나라가 위기에 처하여 있는데도 귀족 천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푸는 이유를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바벨론 성의 견고함에 대한 헛된 자신감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의 요새화는 이미 방송에서도 나온 적이 있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벨론을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만들어준 바벨론 신들이 지켜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흔들리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이벤트로 봅니다. 아무리 바벨론이 요새화 되어 강하여도 주변의 매대 바사의 신흥강대국들이 바벨론을 공격하고 있기에 민심 수습 차원이라고 본 것입니다.

 

저는 이런 설명을 보면서 베테랑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재벌 2세와 형사의 이야기입니다만 몇 년 전에 어떤 재벌이 고용 승계문재로 항의하는 탱크로리 기사를 야구 방망이로 때리고 매 값을 주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이런 사건을 유추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재벌이 하청업체를 통하여 운송업자를 해고 합니다. 그 일에 대하여 항의하는 운송업자를 폭행하여 사망하자 자살로 위장한 것입니다. 결국 그 사건이 경찰에 의하여 추적당하자 대신 벌 받을 자로 자수하게 하고 본인은 외국으로 도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도피하게 전날 자기 친구들을 불러 광란의 파티를 엽니다. 내일 외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에 마약을 투여하면서 환각파티를 하다가 몰락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벨사살 왕도 이 잔치로 인하여 그날 밤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벨사살이 느부갓네살 왕 때의 이야기를 모르지 않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사로잡아 온 유대인 중의 몇 사람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함으로 높은 관직을 가진 사건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도 벨사살은 자신이 섬기는 신이 유대 땅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보다 더 능력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나라에 의하여 멸망한 나라의 신이 무엇이 대단하냐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성전의 금은 그릇으로 왕족과 귀족들이 술을 부어 마시면서 그들의 금, , 구리, , 나무, 돌로 만든 신을 찬양한 것입니다.

 

5~6절입니다. “5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6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7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 8 그 때에 왕의 지혜자가 다 들어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그 해석을 왕께 알려 주지 못하는지라 9 그러므로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의 얼굴빛이 변하였고 귀족들도 다 놀라니라

 

예루살렘의 성전 기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성전 기구들을 바벨론에 넘기신 것은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왕이 교만하여 그 기구들로 자신들의 여흥을 위하여 술 마시는 그릇으로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신들을 찬양한 것입니다. 이러한 교만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이 느부갓네살 왕을 통하여 세 번이나 다니엘과 그 세친구들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짓을 하는 벨사살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왕궁 촛대 맞은 편 석회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을 씁니다.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보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그 즐기던 얼굴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며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 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힌 것입니다. 한마디로 벌벌 떨었습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이정도의 두려움이라면 오줌도 쌌을 것입니다. 그래서 크게 소리 지르며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들과 모든 지혜자들을 다 불러서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해석하면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겠다고 합니다. 이 말을 한 것은 왕이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글을 잃고 해석할 자가 없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자라도 무용지물입니다. 그러자 더욱 왕이 속을 태우고 괴로워함으로 그 얼굴빛이 변하고 귀족들도 놀랐습니다. 먹고 마시며 떠들썩하던 잔치집이 갑자기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이때 왕비가 소식을 듣고 옵니다.

10~12절입니다. “10 왕비가 왕과 그 귀족들의 말로 말미암아 잔치하는 궁에 들어왔더니 이에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하게 하지 말며 얼굴빛을 변할 것도 아니니이다 11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니이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12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왕비가 느부갓네살 왕이 모든 지혜자들의 어른을 삼은 다니엘을 소개합니다.

 

13~15절입니다. “13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되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14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15 지금 여러 지혜자와 술객을 내 앞에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다 그 해석을 내게 보이지 못하였느니라16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푼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면 네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걸어 주어 너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

 

벨사살이 다니엘에게 묻기를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고 묻습니다. 벨사살이 다니엘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직접 대면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부르면서도 아직 자신의 위신을 지키려고 네가 포로로 잡혀온 다니엘이냐고 묻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이 아니면 부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불러서 이 글을 읽고 해석하여 주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주어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겠다고 합니다. 아직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바벨론 왕궁의 왕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다니엘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면 상을 주겠다고 합니다.

 

17절입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리이다바벨론 왕의 선물을 거절합니다. 그런 예물은 왕이나 가지라고 합니다. 신앙의 모습이 이런 것입니다. 세상의 힘으로 줄 수 있는 물질과 권세와 같은 것들은 다른 사람에게나 주라고 합니다. 나는 그런 선물로 이 글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고 해석해 주겠다고 합니다. 왕을 위한다는 것은 왕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18~21절입니다. “18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19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20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21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 나귀와 함께 살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다니엘에 벨사살 왕에게 느부갓네살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미 앞에서 본 느부갓네살의 이야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교만하여져서 그가 임의로 죽이고 임의로 살리고 임으로 높이고 임의로 낮추었다고 합니다. 임의로 했다는 말은 자기 마음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사사기 식으로 말하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기에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짐승과 같이 되었다가 여호와께서 임의로 하시는 것을 알게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알면서 그랬느냐고 벨사살 왕을 책망합니다.

 

22~24절입니다. “22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23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24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다니엘이 벨사살 왕을 책망한 이 내용이 벨사살 왕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왕이 아니라서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벨사살의 자리에 있게 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이렇게 나옵니다. 지금 우리가 이러한 권세와 영광이 없어도 우리는 우리의 임의대로 행하고 살아갑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 한번이라도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나의 만족과 나의 쾌락을 살아가지 않습니까? 벨사살 왕만이 아니라 우리도 우리의 호흡을 주장하고 우리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25~31절입니다. “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다니엘이 그 글자를 읽고 해석합니다.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우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연수를 헤아리시고 끝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오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우리의 날 계수함을 알고 우리를 말씀의 저울에 달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날마다 해야 하는 일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은 왕궁의 든든함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 왕궁에는 20년 먹을 양식이 비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세계를 제패하게 한 바벨론 신의 보호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날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계산을 끝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울에 달아보아도 달아볼 것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의 임의대로 살아온 인생이기에 저울에 달 것도 없습니다.

 

29~31절입니다. “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30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31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다니엘이 그 글자를 읽고 해석합니다. 벨사살 왕 자신이 심판을 받는다는 소식이지만 왕의 말은 왕도 변개할 수 없기에 다니엘을 셋째 통치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매데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가 육십 이세였다고 합니다. 다리오는 다음 장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벨사살 왕에게 임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벨사살 왕은 그날 밤에 죽을 줄을 알지 못하고 귀인 천명을 불러서 잔치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에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소출이 많아져서 창고를 늘려짓고서는 내 영혼아 평안히 먹고 마시며 즐기자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이 모든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날 계수함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것을 믿고 사는 어리석은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유산문제로 예수님께 부탁하였을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 핵심 내용은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벨사살 왕이 믿은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날 계수함 곧 메네 메네 앞에서는 모두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시편 90편에서 우리의 날 계수함을 알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것이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에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이나 오늘 우리나 간에 우리의 날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이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잔칫집에 간다는 것입니다(7:2,4). 우리가 우리에게 의미를 두는 날 계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날 계수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천년 만면 살 것처럼 잔치하는데 그 날이 죽음의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시편 39:4~7절입니다.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우리 인생의 길이가 한 뼘이라고 합니다. 주 앞에서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든든히 서 있다고 할 그 때에도 모두가 허사뿐입니다. 벨사살 왕이 그날 밤에 죽을 줄 알았다면 귀인 천명을 불러서 잔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날 계수함을 알게 되면 소망을 주님께만 둡니다.

 

그리고 저울에 달았다고 합니다. 데겔이라는 말은 저울에 달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저울에 달면 무게가 얼마나 나올까요? 바벨론 왕의 벨사살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때 암행어사는 물건 중에 유척(鍮尺)이라는 놋쇠로 만든 자가 있습니다. 이 자를 가지고 물건을 사고팔거나 또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되와 말과 같은 크기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저울에 인생을 달아보는 것입니다. 그 저울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메네 메네 데겔을 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인생의 날은 얼마나 남았으며 우리의 무게는 얼마나 나갑니까?

 

이사야 40:12~17절입니다.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책망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사람이 측량 할 수 없습니다.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다고 합니다. 열방이란 모든 나라들을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 앞에서 통의 한 방물 물과 같고 열방이 저울의 작은 티끌과 같다고 합니다. 바벨론과 같은 제국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저울을 작은 티끌과 같기에 저울에 달아볼 것도 없습니다. 그런 나라의 왕인 벨사살이 교만하였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울에 달아보니 저울의 티끌도 되지 못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열방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치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이 빈 것같이 여기신다고 합니다.

 

시편 62:8~12절입니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9 ,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으면 모두가 벨사살 왕처럼 됩니다. 그러나 주의 인자함으로 자기 백성을 오늘도 말씀의 자와 저울로 측량을 하십니다. 완전히 끝내시기 전에 말씀으로 미리 측량을 당하는 자들이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날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압니다. 자신의 날이 하나님 앞에서 한 뼘임을 압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를 말씀에 저울에 달아봅니다. 저울에 자신을 달아보니 자신은 입김이며 자기 인생도 속임수이기에 입김보다 가벼워 달아 볼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측량을 받는 자들은 잠시 있다가 사라질 헛된 것들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