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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2:1 책에 기록된 자 2015. 11. 25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지난주에 세상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작정된 대로 일어난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로마서 11:36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이 말씀과 같은 의미가 골로새서 1:16절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우리가 이런 말씀을 볼 때에 두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뭐냐? 또 하나는 참으로 다행이다. 우리는 어느 편입니까? 지난주에 작정된 대로 일어난다는 말씀을 드리면서도 이 말을 했습니다. 작정 된 대로 된다면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하는 말이나 나는 뭐냐?’ 는 반응이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선악과 따 먹고 나서 자신이 주체가 되었다고 착각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시든지 아멘 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왜 나에게 그런 일을 시키느냐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로마서 9:20~24절입니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구원이 사람하기 나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일방적인 선택과 부르심에 있다는 복음에 반발하는 자들에 대하여 사도는 토기장이의 비유로 답을 합니다.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으로 하는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 긍휼의 그릇이나 진노의 그릇으로 만드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의 풍성함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유대인이나 이방인 중에서 부르신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발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선악과 이후에 타락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맡기는 것입니다. 인간 자신이 구원을 결정할 권한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도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면 비로서 자기 자신이 전적인 죄인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죄란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님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자기가 주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교회도 가정도 나라도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행복하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을 받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세상의 모든 일들이 자신의 주인 됨을 무너뜨리는 사건이 됩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모든 사건의 해석들을 자신을 부인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범사에 원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봉독본문을 한절만 택한 이유는 책에 기록된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보기 위한 것입니다. 구원이란 다니엘이 예언한 내용이 안티오쿠스 4세의 박해를 내다본 것이라면 그런 박해에서 아주 소수가 구원받는다는 내용이 일차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이라는 개념은 단지 예루살렘이 적에 의하여 유린당할 때에 구원받는 내용만 담지 않습니다. 다음 주에 볼 2절의 말씀처럼 영생을 얻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 영생을 얻지 못하는 자는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원한 운명이 달려있는 구원이 사람의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대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반발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주와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이런 반발이 죄라는 것입니다. 이런 반발을 반박하는 말씀들이 지금까지 본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우리는 관심사는 그러면 나는 책에 기록된 사람이 맞느냐 아니냐에 관심이 갈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책에 기록될 수 있을까 하는 방법론을 찾을 것입니다. 오늘 생명책과 책에 기록되었다는 내용들을 성경 전체를 통하여 찾아보려고 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의 노력으로 책에 기록될 수 있을 것 같은 뉘앙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입니다. 우리는 책에 기록된 자들이 어떤 모습인지를 문맥을 따라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출애굽기 32:32~33절입니다.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시내산 앞에서 여호와와 피로 언약을 체결하고 그 언약증서를 받아오는 40일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언약을 배반하고 금으로 된 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언약 배반입니다.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피는 곧 생명이기에(12:23) 이들은 모든 생명을 내어 놓아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진멸하시겠다고 합니다(32:10). 이때 모세가 중보자의 역할을 합니다. 모세도 죄인입니다. 그런데 중보자의 역할을 한 것은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는 자신의 생명을 건 중보입니다. 이 백성들을 진멸하시려면 자신의 이름도 책에서 지워달라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내 책에서 그를 지운다고 하십니다. 이 사건 전체에서 모세는 중보하고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용서합니다.

 

여기서 살펴볼 말씀은 33절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보면 죄를 지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있었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 이름을 지워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인간의 이름이 다 지워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3:23, 5:12).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이 되고 지워지지 않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뿐입니다. 모세가 범죄 한 백성을 다 진멸하시려면 자기 이름을 책에서 지워달라며 생명을 건 기도를 한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4:2~6절입니다. “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2절에서 그날이란 이사야 3장에서 예루살렘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기에 예루살렘의 심판이 일어난 후에 여호와의 구원을 받는 그 날을 말씀합니다. 그 구원이 누구에게 일어나는가 하면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오늘날 적용한다고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성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며 예배에 목숨 걸어야 한다고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모든 사람이 거룩하다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것을 문자대로 보고 예루살렘에 끝까지 남아 있어도 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는 거룩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에 기록된 자들에게만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을 보내셔서 그 더러움을 씻으시고 주님께서 밤낮으로 그들의 거처가 되신다고 합니다.

 

시편 69:24~28절입니다. “24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25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26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27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여기서 하나님의 분노를 붓도록 간구하는 그들은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조롱하며 말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조롱하는 자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받으실 때에 바로 앞에서 본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을 보내셔서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환난이며 고난이며 핍박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을 보고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기에 이들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시고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이 역사 속에서는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32절에서 곤고한 자들은 기뻐하고 그 마음이 소생하게 된다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뻐하며 마음이 소생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입니다.

 

말라기 3:13~18절입니다.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16절에서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이 기록되는 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면서 대듭니다. 말라기에서 이런 논쟁들이 많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이 무엇이냐고 대듭니다. 그때 하나님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1:2,3). 에서는 별 고생한 내용이 없이 승승장구한 사람입니다. 그 아버지보다 사병이 더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야곱을 죽도록 고생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자가 야곱이라는 말씀에 그 고난 중에 있는 유대인들이 반박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모세나 이사야나 다윗이나 말라기에서 공통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책 곧 생명책에 기록되는 자들이 우리가 평소에 부러워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기피하고 싶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말라기 3:16절에서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불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금욕적으로 살아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악인이 형통하니 하나님을 섬겨서 무엇을 하느냐고 말합니다. 오히려 교만한 자가 복을 받고 악한 자가 형통하다는 불만입니다. 이런 내용은 시편 37편과 73편과 욥기서와 하박국서에 잘 나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말들을 다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그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여호와의 책에 기록될 자들입니까? 지워질 자들입니까?

 

범사에 나를 중심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나를 중심으로 이해타산을 따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면서 늘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고 의인의 고난을 기피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를 통하여 세상에 속한 것을 끊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사모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면서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는 모습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이란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은 십자가 외에 해석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대한 내용의 줄기를 따라 가 보면 십자가가 선명해집니다.

 

누가복음 10:17~20절입니다.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지난 11492세를 생을 마감한 르네 지라르는 자신이 학문을 하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게 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연구를 한 책 중에 한글로 번역된 것이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는 책입니다. 몇 년 전에 이 책을 보았습니다만 그가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독일어판 부제로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변증으로 되어 있으며 이 책의 3부 제목이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근대 철학이 모든 권위를 다 해체하는 시대에 십자가를 이야기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나간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기뻐서 예수님께 보고를 할 때에 예수님은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사탄이 하늘에서 패배한 것은 하늘에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121절에서도 미가엘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가엘이 다니엘에게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 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전쟁이 이미 하늘에서는 완료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2:7~11절입니다.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3)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다니엘서의 미가엘이 여기서도 나타납니다.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나서 쫓겨난 사탄 용이라고 불리며 옛 뱀 곧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들이 땅에 하는 짓이 무엇입니까? 온 천하를 꾀는 자가 됩니다. 최초의 꾐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게 함으로 온 인류로 하여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이 땅에 속하여 이 땅의 것으로 만족하게 하는 삶을 살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것을 추구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신으로부터 온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요일 1:16). 우리 모두가 여기에 미혹되어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자 곧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이 일어나듯이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출 세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분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책에 기록하셨고 분리하여 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란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을 오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짐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기에 믿게 됩니다.

 

빌립보서 4:3절입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바울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압니다. 바울도 이미 하늘의 생명 첵을 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생명책에 기록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모세, 이사야, 다윗, 에스겔, 말라기와 같은 선지자들의 말을 통하여 알 수 있으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증거 한 예수님께서 생명 책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복음에 함께 힘쓰던 자들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복음이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힌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로 자기 백성을 끌어 올리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묵시 속에서 완료가 되었고 이 역사 속에서 그렇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바울의 복음에 동의하고 협력을 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4~5절입니다.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사데 교회에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않는 자 몇 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의의 옷을 입은 자들이면 주님과 동행을 하게 됩니다. 이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는지 자기의 옷을 입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은 주님께서 입혀주시는 의의 옷만 고집하게 됩니다. 자기의 주장, 자기의 의, 자기의 인생해석, 자기의 성경해석이 다 무너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옷 입는 자들이 생명책의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3:8절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죽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산자들입니다. 이들은 짐승에게 경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나서 천하에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꾀어 영원한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감추어져 있음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말해도 도깨비 방망이로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창세 이후로 기록이 되지 않은 자만 이 세상의 권세와 이 세상의 영광을 준다는 짐승에게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8절입니다.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멸망할 짐승으로 인하여 놀랍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오히려 그들을 이깁니다. 계시록 17:14절입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이기는 이유는 어린 어린 양의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0:11~15절입니다.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요한계시록 설교할 때에 자세히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서 두 책이 나옵니다. 하는 생명책으로 단수입니다. 다른 책은 책들로 복수입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인데 자신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면 모든 인간은 다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둘째 사망 곳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지금까지 생명책에 대하여 살펴본 대로 예수 그리스도,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공로로만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입니다. 그러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많겠습니까? 심판의 책이라는 행위 책에 기록된 자들이 많겠습니까? 성경전체에서 언제가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생명책에 기록된 자가 적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이 내용을 미켈란젤로가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이탈리아에 가면 이 그림과 베드로 대 성당을 보려고 하루에도 수 만 명이 몰려갑니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그림에 보면 책을 들고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생명책은 작게 그리고 심판의 책은 아주 크게 그려놓았습니다. 모든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만 천국으로 데려가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는 지옥으로 보내는 그림입니다.

 

요한계시록 21:22~27절입니다.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새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그 성은 열두 기초에 열두 문으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건물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로 대속하신 주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 안에 성전이 없다는 말씀이 주 하나님 곧 전하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성령이 임한 우리가 성전이 된다는 말씀의 완성 태를 여기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못 들어가는 것은 속된 것,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 곳으로들어 가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라면 어떤 일들이 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겠습니까? 지금까지 찾아본 생명책에 관한 내용들이 그 사람에게 일어나게 됩니다. 시내산 앞에서 진멸당해야 마땅한대 모세의 생명을 건 중보로 용서 받듯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가 용서 받는다는 것을 믿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을 통하여 분리당하여 나오는 일이 일어납니다. 시편과 말라기처럼 의인의 고난에 대하여 근심하게 되고 그 해결을 말씀으로 보게 됩니다. 신약에서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복음에 협력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영광을 주는 복음이 아니라 세상에서 죽어야 한다는 복음에 협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에 함몰되지 않고 그 수렁과 같은 곳에서 십자가로 끌려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눈앞에 보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눈앞에 밝히 보이려면 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들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날 때에 이것이 저주와 멸망의 길이 아니라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생명의 길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런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