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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12:1~3 땅의 티끌과 부활 2015. 12. 2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 하나를 보면 그 사람의 나머지도 짐작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제 자유게시판에 최홍석 교수님의 은퇴소식을 올렸습니다. 설교 시간에 몇 번 언급한 내용입니다. 저의 신대원 일학년 때 담임교수였습니다. 별명이 총신의 성자였습니다. 세 가지 이야기만 합니다. 하나는 처음 교수와 학생들의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 조촐한 만남의 시간이었는데 학생들은 의자에서 다리 꼬고 앉아 질문을 하는데 교수님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공손하게 답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들은 이야기인데 자전거 뒤에 아들을 태우고 가다가 신학생이 알아보고 인사를 하면 교수님이 자전거에서 내리면서 뒤의 아들도 내리게 한답니다. 그리고 인사를 같이 할뿐 아니라 아들에게도 전도사님께 인사하라고 하셨답니다. 또 하나는 제가 목격한 이야기인데 수련회 기간 중 교수님과 학생들이 둘러서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한 신학생이 짓궂은 사생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때 한 대답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저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할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기독신문의 마지막 기사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최홍석 교수는 퇴직 후에 무엇을 할지 묻는 이가 많다면서 저는 스스로 계획하지 않기로 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이 일도 저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며 저의 삶이 열려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말에 야고보서의 4장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오늘 설교제목이 땅의 티끌과 부활입니다. 땅의 티끌이나 야고보서의 안개나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땅의 티끌이나 안개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사람이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자신을 멸시하는 것보다 더 심한 분노는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입니다. 멸시는 기분 나쁘지만 관심의 있습니다. 그런데 무시하는 것은 아예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 받는 여자보다 잊힌 여자가 더 비참하다는 말을 하는가봅니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종교가들이 인간을 긍정하고 위로하면서 수수료 챙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땅의 티끌이라고 하고 안개라고 하고 수에 칠 가치조차 없는 하나님의 원수라고 합니다.

 

지난주에 본 1절의 말씀을 오늘 함께 읽었습니다. 땅의 티끌과 같고 안개와 같고 수에 칠 가지초자 없을 뿐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죄와 사망아래 태어나 하나님의 원수 짓을 하면서 자기만을 섬기는 이런 인생들 가운데서 책에 기록된 자만 구원을 하신다고 합니다. 이런 인간을 왜 구원하시는 것입니까? 오히려 착한 사람을 구원하신다면 이해가 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러한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책에 기록된 자를 구원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이름과 자기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의 티끌들 가운데 책에 기록된 자를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를 드러내시는 것이 아버지의 영원하신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생명책이라고 하며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2:5~8절입니다.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와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책에 기록된 자들은 구원이 되는 것은 결코 자기를 자랑 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아들의 공로만 자랑할 뿐입니다.

 

골로새서 1:13~23절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땅의 티끌을 구원하시는 이유는 그의 십자가의 피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본문 1절에서 책에 기록된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2절에서 구원이 무엇인지 풀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 모든 사람이 깨어난다고 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깨어난다고 하는 것입니까? 다니엘이 그 시대 상황에서 예언한 내용이기에 그렇다고 합니다. 그 환난의 때에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면 그 중에 믿음을 지킨 사람은 영생을 얻을 것이지만 언약을 배반한 자들은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도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처음 설교 시작할 때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로 시작을 했습니다만 다니엘서의 이러한 부분적인 내용이 신학적인 용어로 계시의 발전을 통하여 신약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땅의 티끌로 돌아가야 하고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부활할 것이며 그 부활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과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는 심판의 부활로 영원히 갈라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 땅의 티끌에 대하여 말씀을 보겠습니다. 히브리어는 아다마-아파르로 연결된 단어입니다. 아다마는 흙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이름이 아다마곧 붉은 흙이라는 말입니다. ‘아파르는 땅의 티끌입니다. 땅의 티끌이며 먼지를 하나님께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땅의 티끌 주제에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라는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을 먹은 자가 됩니다. 이것이 타락이며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인생이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추방이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이 다 흙에서 나와 흙을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기 뜻을 위하여 그들 중에 책에 기록된 자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이 생명을 받은 자는 이 역사 속에서 땅의 티끌임이 계속 폭로되어감으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붙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 생명이 없는 자는 자신이 땅의 티끌인줄도 모르고 땅의 티끌을 꾸미기 위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평생을 살다가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4~29절입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참으로 놀라운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심판 곧 정죄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바로 지금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5절에서 죽은 자들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지금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권을 주셨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주실 수 있고 심판도 하실 수 있는 인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고 믿어졌다면 이것은 책에 기록된 자들을 주님께서 살려주셨기에 듣고 믿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중생이라고도 하고 거듭남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이 땅의 티끌임을 압니다. 이런 자가 첫째 부활에 참여된 것입니다. 이렇게 첫째부활에 참여된 자들은 몸의 부활이 남아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몸의 부활, 몸의 구속이 남아있기에 이 역사 속에서 탄식하며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8:23).

 

그런데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도 마지막에 몸의 부활로 나오게 됩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나 참여하지 못한 자나 다 부활합니다. 다니엘서의 말씀대로 하면 땅의 티끌 가운데 자는 자들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일학교 설교할 때에 간단하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두 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한번 태어나고 두 번 죽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육신의 출생이 한번이며 예수님을 믿음으로 위로부터 태어나는 거듭남이 있기에 두 번 태어납니다. 이런 자들은 생물학적인 죽음을 죽을 수밖에 없지만 마지막 몸의 부활에서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나오기에 둘째 사망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거듭남이 없기에 한번 죽음을 죽고 나서 최후에 몸의 부활 시에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며 영원한 부끄러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활의 내용을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도 십자가와 부활 이전에는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21~27절입니다.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활이며 생명이라는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이 부활이며 생명이라는 말씀이신데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불러오라고 합니다. 마리아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하는 말이 예수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우리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나사로가 아플 때에 예수님께 오셔서 고쳐달라고 사람을 보냈는데 일부러 죽고 나서 오신 것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보시며 우십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살려내심을 예수님께서 부활이며 생명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나사로도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몸의 부활은 아직 성도에게 남아 있습니다. 몸의 부활이 언제 일어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입니다.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초대교회에 임박한 종말론이 있었습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말씀하신 것을 문자대로 보면 예루살렘 동네에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을 믿고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다가 죽는 자들이 생깁니다. 그러면 이들은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는 자들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는 부활에 대하여 설명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자는 자 곧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다음에 살아있는 자도 마지막 하나님의 나팔 소리에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공중 재림과 휴거를 말하는 것이 세대주의적 해석입니다. 그런데 몸의 부활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지 이것이 세대주의 해석처럼 공중 재림, 휴거, 7년 대 환난, 지상 재림, 천년왕국,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인 일입니다.

 

마태복음 24:21~27절입니다.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도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부분으로 세상의 멸망을 함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의 날을 감하여 주시지 않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기에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을 감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이 날을 십일(2:10)이라고도 하고, 한때 두 때 반 때라고도 하고(12:7),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이라는 것도 환난의 날이 칠이라는 개념으로 완전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환난을 당하지 않고 휴거 된다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자기 구원욕망을 부추기는 일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 사는 것 자체가 환난입니다. 이런 환난을 당하다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자는 죽은 것이 아니라 안식에 들어갔기에 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순서상 예수님의 재림 시에 먼저 부활을 하는 것이며 동시에 살아있는 자들도 홀연히 변화되어 영원한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자의 임함이 번개가 동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과 같다고 합니다. 번개의 속도 곧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킬로미터입니다. 지구의 둘레가 약 4만 킬로미터입니다. 그래서 일초에 지구 일곱 바퀴 반을 도는 속도가 빛의 속도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주님의 재림을 보고서 회개할 기회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며 또한 인자의 날이 번개같이 임하는 것도 시차의 의미가 아니라 순서상의 의미로 봐야 합니다. 이 역사의 끝이 시공간의 끝이기에 더 이상 현 시공간 개념으로 묵시적인 인자의 오심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한 종말론에 미혹되지 마시고 단번에 순식간에 번개가 번쩍임 같이 이루어집니다. 이럴 때에 책에 기록된 자들, 곧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은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영생을 얻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자는 영원한 부끄러움을 얻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11~15절입니다.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지금까지 드린 말씀으로 이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선명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심판을 받지 않기에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심판의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책들에 기록된 자들 곧 자신들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 자들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에 던져집니다. 여기에 사망과 음부도 함께 불 못에 던져지는데 그런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땅의 티끌임을 알지 못한 채 평생을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들만 사랑하며 살아온 자들입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이 둘째 사망에 들어가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이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의 삶 자체가 칠년 대 환난의 기간입니다. 성도에게는 초림과 재림사이가 다 환난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3~12절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연결하여 이 말씀을 읽어보시면 연결이 될 것입니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이 모든 일이 동시에 순식간에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다니엘 12:2~3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구약의 이 말씀이 지금까지 찾아본 신약에서 다 답이 나옵니다. 땅의 티끌이 이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여받게 되면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영원한 영광의 중요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자의 날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시는 그 날에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누어집니다. 심판의 부활은 영원한 부끄러움의 세계입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고 믿는 자가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셔야 합니다(11:27, 1:17). 이것을 전도 많이 하면 상을 많이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이 복음을 믿고 전하는 것은 이미 영원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기에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올해도 마지막 달입니다. 마지막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시간과 공간의 역사가 이미 십자가로 완료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우리의 몸과 마음이 힘든 것은 이 시간과 공간속에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들을 털어내기에 그렇게 힘이 듭니다. 고린도후서 4:16~18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