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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0:9-16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구하라 2010. 2. 17

 

9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12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사사기의 패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면 하나님께서 신명기의 언약대로 징계를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을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의 죄를 알고 여호와께 구원하여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반복적인 상황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큰 줄기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3:7-1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합니다.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알은 가나안의 풍요와 다산을 준다는 가나안의 주신이며 아세라는 그 아내격인 신입니다. 이런 이방신을 섬기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아 가기에 좋은 내용들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번영과 성공을 축복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오늘 우리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를 배반하게 되면 신명기의 언약대로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순종하면 축복이지만 불순종하고 배신하면 저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팔아버립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8년을 이 왕을 섬기게 됩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여호와만 섬기면 그들이 복을 받고 살 텐데 여호와를 배반하였기에 복은커녕 저주를 받고 있으니 그제야 이들이 부르짖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사 옷니엘을 세우셔서 구원하여주십니다. 40년이 평안합니다.

 

3:12-30절입니다. 8년을 고생하고 40년을 평안하게 살게 되니 다시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8년 고생할 때는 구원하여 주시면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고 평안해지니 화장실 갈 때 마음하고 나올 때 마음하고 다른 것이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인 것입니다. 그러니 또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십니다. 적을 강하게 하시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을 모아 이스라엘 쳐서 점령하는데 이제는 18년을 에글론 왕을 섬깁니다.

 

옷니엘 시대에는 8년인데 이제는 18년입니다. 그러니 다시 부르짖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에훗을 세워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에훗은 왼손잡입니다. 즉 오른손에 장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세워서 적을 물리치는 것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교훈하고자 하는 바는 영웅을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영웅을 원하지만 사사들을 결코 영웅이 아니라 오히려 보통사람들보다 못난 자들입니다. 이를 통하여 여호와의 일하심을 어떤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에훗 시대에 80년을 평안합니다.

 

4-5장은 여 사사 드보라입니다. 사사가 다시 세워진다는 것은 또다시 반역하여 적들의 공격을 받아 고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가나안 왕 야빈에게 파셨는데 20년을 고생합니다. 다시 부르짖습니다. 여 사사 드보라와 바보 같은 남자 바락이 세워집니다. 그래서 적장을 죽이는 것은 한 여인 야엘입니다.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 남자들의 불신앙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으로 다시 40년이 평안합니다.

 

6-8장은 기드온 사사입니다. 이때는 여호와께서 미디안 사람들에게 7년 동안 넘겨주십니다. 그러자 미디안 사람들이 약탈하러 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그곳에서 눌려 살려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이나 웅덩이나 굴과 산성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6:7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합니다. 애굽에서 인도하여 이곳으로 인도하여 들이고 그들의 신을 두려워 말라고 하였으니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책망하신 후에 사사를 세우시는데 기드온입니다. 기드온도 얼마나 겁이 많은 사람인지 몇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에 사사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드온이 적들을 물리치고 40년이 평안합니다. 기드온이 죽자 그 은혜를 입고서도 그의 집을 후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자기 어머니의 형제에게 가서 기드온의 아들 70명의 다스리는 것이 좋겠느냐 아니면 한명이 다스리는 것이 좋겠느냐며 충동하여 70명을 죽이고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됩니다.

 

기드온은 백성들이 왕이 되어달라고 할 때에 여호와가 왕이시기에 자신의 왕 됨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운 사사가 아닌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복형제들을 다 죽이는 중에 한 명 요담만 피하여 그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나무의 왕을 뽑기 위하여 좋은 나무들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하니 거절하였는데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하기 가시가 허락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을 것을 말한 것입니다. 요담의 선언대로 아비멜렉으로 인하여 오히려 고통을 받습니다.

 

그 이후에 돌라와 야일이라는 사사도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는다는 것은 자기들이 평안할 때에는 우상숭배 하다가 괴로우면 부르짖는 일들이 반복이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여! 주여! 하면서 부르짖는다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부르짖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평소에 평안하게 잘 살 때에는 여호와를 섬기지도 않고 온갖 우상숭배를 하면서 살다가 답답한 일을 당하면 주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런 부르짖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오늘 본문을 통하여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0:6-9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데 얼마나 많은 신들을 섬기는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들은 다 끌어당겨서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바알,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의 신들, 블레셋 사람들의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진멸당해야 할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기고 있는 것이 바로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여호와를 버리고 자꾸만 이방의 신들을 섬기는 것입니까?

 

홈페이지 복음 칼럼에 올려놓은 이근호 목사의 ‘말씀을 외면하는 세계’라는 글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자기 외에 공경할 자가 따로 없는 자에게 저주와 진노가 임한다. 자기 외에 순종할 대상이 없는 자에게 저주와 진노가 임한다. 자기 외에 따로 엎드릴 것이 없는 자에게 저주와 진노가 임한다. 이런 자는 결국 자기 외에 모두를 미워하게 된다. 신이라 할지라도!” 자기 외에 공경하고 순종하고 엎드릴 분이 없는 사람, 이런 자는 결국 자기 외에 모두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며 바로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살아오는 자들이 요단강 동쪽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암몬에 의하여 18년을 억압을 당합니다. 이러면 늘 하던 습관대로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10절에서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다고 합니다. 11-14절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가 부르짖을 때에 구원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너희가 다른 신들을 섬기니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15-16절입니다. 구원요청을 하나님께서 거절하시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여쭙니다.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좋은 대로 행하셔도 좋다고 해 놓고서는 다시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가운데서 이방신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것입니다. 아이가 잘못하면 스스로 방청소하고 평소에 하지 않는 짓을 하는 것처럼 이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대로 하면 다시는 구원을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곤고를 보시면서 마음에 근심을 하시는 것입니다. 근심은 하지지만 아직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침묵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계속하여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구책을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암몬자손들은 쳐들어와서 길르앗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미스바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장서서 나가 싸울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누구든지 암몬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나서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때 입다를 그들의 지도자로 모시려고 합니다. 입다는 길르앗의 아들인데 길르앗이 기생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길르앗이 자기 아내에게서 또 다른 아들들은 낳았습니다. 이 아들들이 자라자 기생에게서 낳은 아들을 다른 여인의 자식이라고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있지 못하도록 쫒아 버린 것입니다. 이 입다가 나가서 거한 곳이 돕 땅이며 이 입다에게 잡류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즉 깡패두목과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큰 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급하니 입다를 데리고 오려고 합니다.

 

입다가 말하기를 전에 나를 미워하여 아버지의 집에서 쫒아내더니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내게 왔느냐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속성인 것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이렇게 하더니 사람에게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 장로들이 암몬과 싸워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기들의 장관이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입다가 그들보다 믿음이 있는 말을 합니다. 11:9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 과연 내가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장로들이 여호와가 우리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29절에 보시면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합니다. 그러면 나가서 싸우면 됩니다. 그런데 자신이 서원을 합니다. 암몬 자손을 내게 넘겨주시면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자기 집 문 앞에서 가장 먼저 영접하는 자를 여호와께 돌려서 번제로 드리겠다고 합니다. 이런 인신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도 않으시는데 이방신 숭배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승리하면 여호와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여 전쟁에 나갑니다. 입다의 서원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근심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입다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입다의 무남독녀가 제일 먼저 영접을 하는 것입니다. 입다가 자기 옷을 찢으며 통곡합니다. 여호와께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때 그 딸이 여호와를 향하여 말한 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기에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입다의 서원으로 자기 딸이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부르짖는 것은 우리가 살기 힘들다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평소에 살기 편할 때는 자기가 원하는 신들을 부르면서 어려움을 당하면 주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것도 입다 처럼 온갖 서원을 하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런 죄인들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를 하면서도 우리의 잘못된 기도로 인하여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