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녹음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예레미야 42:1-6 기도해 주소서 2010. 9. 22

 

1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4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을 거역하고 바벨론을 대항하다가 시드기야 왕 때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나서 바벨론에 의하여 남겨진 자들의 총독으로 세워진 자가 그다랴입니다. 이 그다랴를 이스마엘이 죽이고 남은 백성들을 이끌고 암몬족속으로 피난을 가려고 나섭니다. 이때 요하난이 이 소식을 듣고 추격하자 잡혀가던 사람들이 요하난에게 돌아옵니다. 그러자 이스마엘과 여덟명은 암몬자손에게로 도망갑니다.

 

요하난이 남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인데 이 사람과 다른 군대의 지휘관들이 남은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게롯김함이라는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 애굽으로 가려고 하는가 하면 바벨론이 세운 총독 그다랴를 죽였기에 바벨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총독을 죽였다고 공격을 해 오면 그나마 남은 백성들이 진멸할 것이기에 애굽으로 가려고  합니다. 애급으로 가기전에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아주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를 요청합니다.

 

1-6절입니다. 군대 지휘관들과 요하난과 여사냐와 모든 백성들이 낮은 자와 높은 자가 다 예레미야에게 나아와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남아 있는 이 모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갈 길과 할 일을 보여주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으면 숨김없이 다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기도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기도 응답대로 다 순종하겠다고 여호와가 증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응답이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 간에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복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누구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에 이 정도의 자세라면 참 좋은 자세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별로 부탁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부탁할 때에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여 기도를 부탁합니까? 아니면 자기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까? 거의 후자입니다. 자기 혼자 기도하는 것 보다 그래도 목사가 기도하면 좀 더 효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기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이 사람들은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예언하였는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매국노 같은 발언입니까? 일본에 항복하는 것이 조선이 사는 길이라고 하는 자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지금도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였기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고 말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예레미야는 그 당시의 매국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대로 이루어지고 났으니 이제 참 선지자는 예레미야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하나님이 참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면서 어떤 여호와의 말씀이라도 우리가 청종하겠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말씀이든지 좋지 않은 말씀이든지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도합니다. 10일 후에 응답이 왔습니다.

 

7-22절까지가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봉독" 기도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애굽으로 피난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애굽으로 갈 준비를 하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벨론 왕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 바벨론 왕이 오히려 호의를 베풀어 각자의 고향에 가서 살게 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애굽으로 피난가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기도하는 속마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 20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여러분은 나를 여러분의 하나님이신 주께 보내면서, 나에게 간구하였습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께 우리를 위하여 기도를 드려 주십시오. 그리고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알려 주십시오. 우리가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 하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일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공동 번역은 여러분의 목숨을 내 걸었다고 합니다. 치명적인 실수와 목숨을 내 걸었다는 것은 5절에 보시면 여호와의 이름을 증인으로 세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도가 자기 소원성취를 목표로 합니다. 자기의 뜻을 부인하고 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정성을 바쳐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온 말씀은 자기들에게 좋지 않아도 그대로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 사람들의 기도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기도가 아직도 세상 사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한 기술을 부립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은 기본이고 그런 것만이 아니라 기도의 법칙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성은 기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늘이 추석인데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어떤 이야기들을 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이나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나 결국 이야기의 중심은 자기자랑으로 돌아갑니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의 예수 믿는 유익에 대하여 말하는데 어떤 것들이 나오는가 하면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좋다는 것입니다. 제사 지내려면 번거롭고 힘듭니다. 그리고 올해처럼 추석 물가가 폭등을 하면 제수비용이 상당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니 그런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합니다. 이것이 누구의 유익입니까?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도 응답의 결론을 21-22절을 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전하여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기에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애굽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심각한 응답이 임하였다면 좀 주춤하는 것이라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이라고 답하는지 봅시다. 43:1-2절입니다. “1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신 이 모든 말씀을 말하기를 마치니 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그대로 순종하겠다고 하고서는 막상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예레미야가 거짓말한다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기도를 하든지, 기도 부탁을 하든지, 상담을 하든지, 질문을 하든지, 성경을 보든지 간에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합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되어야 만족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어떤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입니까? 자기들의 입맛에 맞아야 좋은 하나님입니다. 그동안 자기들의 구미에 맞도록 설교한 그 무수한 거짓 선지자들의 말들이 다 엉터리였음이 드러났고 예레미야가 참으로 하나님의 선지자임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된 것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바룩은 예레미야와 함께 사역한 사람인데 이렇게 몰아붙입니다. 그러면서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과 모든 백성들이 유다 땅에 살라고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고 유다에 남은 자 쫓겨났던 여러 나라 가운데서 유다땅에 살려고 돌아온 자들까지 예레미야와 바룩까지 데리고 애굽 땅 다바네스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9-13절을 봅니다. “봉독”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몸으로 보여줍니다. 바로 궁전 대문의 벽돌을 쌓은 축대에 진흙으로 깔라고 합니다. 그곳에 바벨론 왕이 그의 왕좌를 놓고 그 위에 화려한 큰 장막을 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벨론 왕이 쳐들어와서 애굽을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애굽에서 죽일 자는 죽이고 사로잡을 자를 사로잡고 칼로 칠자를 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왕이 또한 애굽의 신상들을 부수어버리고 평안하게 돌아갈 것이라고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다 백성들이 애굽으로 간 이유는 애굽을 의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을 멸망시킴으로 애굽으로 피한 유대인들을 심판하시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김으로 멸망당할 것을 44:1-14절까지 전하면서 애굽에서 살려고 하는 자는 다 죽을 것이며 도망치는 자만이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15-19절입니다. “봉독” 우상숭배 할 때는 평안 했는데 우상숭배를 버리니 고난이 왔다고 합니다. 우상 버리고 하나님 섬기려고 하니 더 고난이 왔는데 이제 우상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우상숭배를 온 땅에 가득하게 한 므낫세 왕 때는 평안하고 번영하였는데 요시아 왕 때에 이방신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려고 한 때부터 재난이 더욱 많았다고 합니다. 므낫세의 우상숭배 죄악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심판을 받는데도 백성들이 경험하는 바로는 이방신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잘 된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답변이 20-30절입니다. 바벨론이 애굽까지 쳐들어와서 유다 모든 사람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의 이 예언대로 곧 바벨론이 애굽으로 쳐들어와서 애굽이 패배합니다. 인간의 실상이 이러합니다. 기도해 달라고 하면서 무슨 말씀이든 순종하겠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자기 마음의 욕망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무엇을 해도 죄라는 말이 이런 것입니다.

 

추석이라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사람들이나 추석에 고향도 가지 않고 기도원의 특별 집회에 참석하는 인간이나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20절에서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조상을 위한다고 하거나 신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이루는 방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하시면서 십자를 지신 예수님만이 참된 기도를 하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영이 임한 자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탄식하면 주님의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18-27절입니다. “봉독” 세상 만물이 다 탄식합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탄식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까지도 속으로 탄식한다고 합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무엇을 위한 탄식입니까? 양자 될 것 곧 몸의 속량을 기다리며 이 세상과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합니다. 이런 탄식은 성령의 탄식으로 인하여 일어납니다. 우리의 기도 중에도 이러한 성령의 탄식이 들리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