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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6:1~10 죽을 줄 알고도 2015. 8. 26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벨사살 왕이 하나님에 의하여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의 왕을 헤아리시고 저울에 달아보니 가벼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끝내 버리십니다. 이로 인하여 벨사살은 그날 밤에 죽임을 당하고 바벨론은 메대 바사 제국이 되었습니다. 바사는 페르시아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1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다리오가 왕이 되어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합니다. 그 중에 총리 셋을 둡니다. 그런데 그 세 총리 중에 다니엘이 포함이 됩니다. 다니엘이 메대 바사에 의하여 멸망한 바벨론 왕국의 총리였는데 메대 바사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세 명의 왕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는데도 총리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니엘을 인정한 것입니다. 물론 다니엘이 이렇게 민첩한 것은 여호와의 신이 그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니엘이 세 총리 중 에서도 가장 뛰어난 총리로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한 것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메대 바사가 바벨론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무너진 바벨론의 총리로 지낸 다니엘이 왕 다음으로 높은 지위를 받았기에 시기와 질투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한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로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 제국의 총리로 오랫동안 지냈습니다. 두 번의 왕이 바뀌고 세 번째 왕의 통치하에서도 그의 잘못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어떻습니까? 박근혜 정부에서 총리로 인준되어 사퇴한 사람과 총리후보로 인사 청문회 중에 사퇴한 사람까지 5명이나 됩니다. 2년 반 만에 무려 6명의 총리가 언급되었습니다. 그 중에 문창극씨와 황교안 현 총리는 기독교계에서 신앙이 좋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신앙의 문제도 비신앙인의 눈에는 얼마든지 좋지 않게 봅니다. 국무 총리로 봐야할 역사관과 신앙인의 역사관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세상의 다른 것으로는  정말 깨끗하였습니까? 대한민국의 법을 제대로 지켰습니까? 총리후보만이 아니라 청문회를 통과해야 하는 고위 관료들 중에 정말 깨끗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런데 다니엘은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신상이 다 털렸습니다. 그런데 털어서 먼지 나지 아니할 사람 없다고 하는 속담이 다니엘에게서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국가의 일로 인하여 단 한건도 사사로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나 어떤 특정한 편을 들어서 혜택을 준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조사하여도 아무른 잘 못을 발견할 수 없으니 이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하여 다니엘의 신앙으로 고발의 건수를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법을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1:9~10절입니다.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주를 위한 것이기에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전할 때에 누가 가장 핍박을 하겠습니까? 자기 행위로 의를 추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핍박을 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어도 핍박을 받습니다. 생명도 아닌 것 이 세상의 썩을 것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을 믿는 다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무엇으로 욕을 얻어먹습니까? 저 사람은 정말 착하게 살았는데도 자신은 그 행위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은 전적인 죄인이라고 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 의지한다는 이런 사람이라서 욕을 얻어먹습니까? 이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 사람도 칭찬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 썩을 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으로 욕을 얻어먹겠습니까?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이 전과 14범이 되어도 장로이기에 찍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나 경제를 살려준다고 하니 찍어주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복음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믿는 다는 사람들이 욕을 얻어먹는 것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얻어먹는 욕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 우리는 다니엘처럼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뒷조사를 다 해보고서도 전혀 비리가 없다는 말을 듣지 못합니까? 그것은 교회가 복음을 제대로 증거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드러내기도 하여야 하지만 이러한 내용과 동일하게 예수 믿는 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말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고 하는 이 말을 좋아하면서 온갖 썩어질 것들을 세상의 양심보다 더 못한 양심으로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권력을 가지고 재물을 얻은 것을 축복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털어서 먼지 나지 낳는 사람으로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고 추구하며 산다면 세상의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도 세상은 미워합니다. 마치 다니엘을 시기하여 미워하는 것처럼 온갖 법들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어제 고시부 모임이 있어서 회의하고 식사하는 자리에게 동성애 문제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차별 금지법이 통과 된 외국의 사례들을 이야기하면서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을 해도 법에 걸리고 동성애를 죄라고 해도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내야 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법이 통과되면 기독교가 얼마나 위축이 되겠느냐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알곡만 남겠지요!

 

본문 5~9절입니다. “5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국사에 대하여 아무리 털어도 먼지도 안 나는 다니엘입니다. 그래서 그의 신앙으로 올무를 걸려고 합니다. 다니엘을 유심이 살펴본 자들이 다니엘이 섬기는 그 하나님의 율법으로 고발할 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의를 한 것입니다. 총리와 고관들이 모여서 작전 회의를 하고 다니엘을 잡아 죽일 법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아부를 합니다. 이 왕이 다니엘을 총애하지만 이런 법에 도장을 찍은 것은 자신의 입지를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기회에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30일간 어느 누구도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즉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자는 것을 법으로 만들어 메대 바사의 변개할 수 없는 법으로 공포하자고 합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사자 굴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법은 왕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죽을 줄 알고도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선 왜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까?

 

열왕기상 8:46~51절입니다. “46 범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 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47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 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48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4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50 주께 범죄 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51 그들은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소유가 됨이니이다

 

다니엘은 솔로몬의 이 간구한 내용을 믿는 것입니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솔로몬이 압니다. 그래서 그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적국에게 넘기심으로 포로로 잡혀갔을 지라도 그곳에서 죄를 깨닫고 그 땅에서 주의 이름으로 건축한 이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기도하면 주께서 돌이켜 주시기를 기도한 내용입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간구한 근거는 주께서 이스라엘을 철 풀무와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주의 소유로 삼았기 때문임을 믿고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기도도 주의 영의 의하여 한 것입니다. 이 간구의 내용이 지금 다니엘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죽을 줄 알고도 기도한 것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란 지난주일 낮에 본 백부장의 믿음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의 선물이 임하여 믿게 된 자들은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미 이 세상이 끝이 났음을 아는 것입니다. 다니엘 7:1절입니다.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사자 굴에 던져지는 때는 벨사살 왕 다음의 메대 바사의 다리오 왕입니다. 다리오 왕 이전에 다니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 때에는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면서 이 역사의 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벨사살 왕 때도 보았습니다.

 

다니엘 2:44~45절입니다. “44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이후의 나라들이 이 역사 속에 어떻게 등장하며 망할지를 다니엘을 통하여 이미 알려주었습니다.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인데 이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을 나라라고 합니다.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도 돌아가지 아니할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세워지는 것은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날아와서 그 신상을 부수어 타작마당에 겨 같이 흩어버리실 것입니다. 이러한 계시를 받은 다니엘은 앞으로 어떤 나라가 세워지고 자신을 위협하여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미 완료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는 보면 다니엘 주변의 사람들이 다니엘을 모함하고 죽이기 위하여 아주 분주한 모습이지만 다니엘은 전혀 미동도 없습니다. 내일 죽는 것을 알고서도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이미 역사 끝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본 것입니다. 구약에서 역사의 끝은 메시아 오시는 날입니다. 이 날이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 날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 이미 종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역사는 그것으로 종결입니다. 지금의 역사는 종말의 확정으로 구체화 되는 것입니다. 계시의 발전이나 역사의 발전이 아닙니다. 계시의 발전이란 구약에서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증거 한 계시 외에 다른 계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역사의 발전이라는 희망을 철학자나 과학자들도 말하지 못합니다. 혹 역사의 발전을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보는 자들이 있을지라도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디로 가다가 도시가 많이 발전하였다는 말에 동의를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을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과 역사의 종결로 보지 않으면 세상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증거 한 복음의 내용은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은 십자가의 완성을 우주적으로 확인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의 영이 임한 자들만 이 세상의 끝을 알고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은 바울사도가 잘 표현한 것처럼 내가 세상을 보면 세상이 죽은 세상으로 보입니다. 세상이 나를 보면 내가 죽은 자로 보입니다(6:14). 다니엘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모든 상황을 다 알면서 평소대로 살아갑니다. 이미 죽은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분을 두려워하라고 하신 말씀(19:28)이 이미 다니엘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곡성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난 주일날 오신 분들입니다. 어떤 분이 자녀의 유학문제로 상담을 했는데 자녀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전화오신 분이 부부가 떨어져 있으니 함께 있어야 되지요? 그렇게 묻기에 같이 있어야 되지만 떨어져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 당사자가 무슨 도를 통한 사람의 말처럼 느꼈다고 합니다. 그때 저의 집사람이 들어와서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 물으니 함께 있어도 되고 함께 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아주 쉽게 말하더랍니다. 그 분들은 지금 자녀의 유학 문제와 부부가 따로 떨어져 지내는 이런 문제로 심각하였는데 그 말을 듣고서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 역사의 끝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 전체의 끝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끝도 보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바닥 곧 자기 욕망의 바닥도 보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은 이 역사 속에서 가볍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나그네는 짐이 가벼운 법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이미 완료된 그 나라와 그 의를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죽을 줄 알고도 평소의 믿음대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미 흔들리지 아니할 나라를 받았기에 흔들리는 것들을 보면서 요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7~30절입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는 짐이 가벼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다 이루심의 뜻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을수록 짐이 무거워지면 잘 못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수록 짐이 가벼워집니다.

 

에베소서 1:17~23절입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또 구하게 됩니다. 이러한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한 자들은 이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지 알고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우리의 부름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는 것이 지혜와 계시의 영입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며 그 안에서 성도도 연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에 죽을 줄 알고도 평소에 하던 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면서 지내는 것은 이미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의 은혜가 임하였다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너 그렇게 살면 이 세상에서 죽는 것이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또는 세상에서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 세상의 끝을 아는 자들은 그런 일에 흔들림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이미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은 자들은 세상의 요동치는 일에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습니다. 죽을 줄 알고도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은 오직 주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은혜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이런 은혜를 받고 이런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내일 죽는다고 하여도 오늘 평안히 주무실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