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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9:1~2 칠십년 만에 2015. 10. 7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성경에서 가장 복잡한 해석이 다니엘서 9장의 ‘70 이레일 것입니다. 개역한글은 칠십 이레로 개역개정은 일흔 이레로 번역합니다. 우리는 아라비아 숫자와 한문표기에 익숙하여 우리 고유의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개역 한글에서 칠십을 개역한글에서 일흔으로 바꾼 것은 한문적인 표현을 우리말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면 이레는 무엇입니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이렇게 말하는 이레입니다. 그러므로 일흔 이레란 아라비아 숫자로 표현하면 707이라는 말입니다. ‘일흔 이레에 대하여 2주 후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일흔 이레의 바탕이 되는 칠십년칠일에 대하여 먼저 보도록 합니다.

 

본문을 보시면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은 첫해라고 합니다. 그 통치 원년에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칠십년에 대하여 깨달은 내용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 만에 그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황폐함이란 예루살렘의 성과 예루살렘의 성전의 파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황폐함이 마치려면 성전이 재건되고 성도 재건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재건이 이방 왕들의 명령으로 이루어집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가게 하는 것도 성전의 재건과 성벽의 재건도 이방 왕들의 허락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방의 왕들도 여호와를 위한 목자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4:28절입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여호와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목자로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며 성전도 재건하도록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온 천지가 다 여호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도구들임을 알게 됩니다.

 

에스라 1:1~4절입니다.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이방의 왕 고레스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목자로 사용하시는지 그 내용이 에스라서에서 상세하게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책을 통하여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무슨 책을 본 것일까요? 포로로 잡혀가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서와 그때까지 기록된 구약을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그 중에 예레미야가 보낸 편지도 있습니다. 그 내용을 먼저 봅니다.

 

예레미야 29:10~14절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자들에게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70년 만에 돌아오리라는 말씀과 함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70년 만에 돌아오게 하실 것인데 왜 기도는 하라고 하십니까? 이 부분은 다음 주에 볼 다니엘의 기도를 통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이 편지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70년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다니엘은 회개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 끝에 일흔 이레에 대한 계시를 또 받습니다. 포로 생활이 70년 만에 끝이 나서 돌아온다는 뜻을 알고 났는데 다시 일흔 이레에 대한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칠십년 만에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그치리라고 하신 칠십년의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25:1, 11~13절입니다.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13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70년에 대한 계시를 받은 날로 계산하면 유다의 왕 여호야김 넷째 해이기에 주전 605년이 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인 시드기야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으로 계산하면 주전 586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70년을 어느 기점에 맞추느냐에 따라 사람들마다 해석이 달라집니다. 605년을 기점으로 보면 예루살렘의 성전의 재건만이 아니라 성벽의 재건까지 마치는 때까지 약 70년이 걸립니다. 이 부분은 2주 후에 봅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계산도 있지만 시간의 계산보다 7이라는 뜻과 의미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70년을 포로생활을 해야 하는지 그 문제부터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역대하 36:14~21절입니다. “14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 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의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15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16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17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18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그릇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9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며 그들의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들의 모든 귀한 그릇들을 부수고 20 칼에서 살아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예루살렘이 망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이유는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 하였습니다.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을 더럽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 결과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칠십년 포로기간 동안 땅이 안식하게 되었다는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다는 반증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에 땅에 들어와서 안식일만이 아니라 안식년과 희년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감이 무엇인지 배워야하는데 그들은 안식일은 지킨다고 하였지만 안식년과 희년을 지켰다는 기록이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안식년을 연속으로 칠십년을 쉬게 한 것입니다.

 

안식년을 이야기하려면 안식일을 언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엿새 만에 창조하시고 제 칠일 곧 이레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이 안식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을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참된 안식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은 모든 피조물보다 제일 나중에 지음을 받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지어지고 난 그 날이 창조의 마지막 날이며 그 다음날은 안식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음을 받고서 제대로 인간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6일은 일하고 7일은 쉬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계명에서 창조를 기억한 안식(20)과 구원을 위한 안식(5)이 인간의 노동금지를 통하여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안식일의 연장이 안식년과 희년으로 연결됩니다.

 

레위기 25:1~7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3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5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6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7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하다가 해방되어 나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한다는 것은 쉼의 자유가 없는 곳입니다. 종이기에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합니다. 강제노역에 시달리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이 하늘에 사무칩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대로 출애굽을 시키십니다.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에서는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갑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시내산 앞에 와서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합니다.

 

언약을 체결의 아주 중요한 내용이 안식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물론 처음에 약속의 땅을 다 차지하지 못하여서 안식년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다윗시대 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땅을 다 차지하였기에 안식년을 지켜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다윗시대 때와 그 이후로도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성전을 짓고서는 안식년을 지켰습니까?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시작한 때가 출애굽한지 480년입니다(왕상 6:1). 성전을 짓고 나서도 안식년을 지킨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자격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식년을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안식년의 자연적인 소출은 땅의 주인만이 아니라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거류민과 가축과 들짐승까지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내용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사람들은 쉼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일하여 자신의 평생 먹을 것을 확보하느라고 쉬지 않고 일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웃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노후를 위하여 열심히 모으기만 하다가 어느 날 덜컥 병이 들면 그 모아두었던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함으로 가족과의 관계도 소원하여 졌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하여 스스로 채찍질만 가하고 있다면 안식이 없는 지옥을 보는 것입니다. 지옥이란 밤낮 쉼이 없는 곳입니다(14:11). 그런데 하나님의 안식을 보여주어야 할 이스라엘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강제로 안식하게 하신 것이 70년의 포로생활입니다.

 

레위기 25:8~12절입니다.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 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희년은 안식년 곱하기 안식년 곧 49년의 다음해입니다. 49년도 안식년이지만 50년도 안식년입니다. 2년 농안 땅을 경작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살라는 말입니까? 레위기 25:20~22절입니다. “20 만일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21 내가 명령하여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 22 너희가 여덟째 해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소출을 먹을 것이며 아홉째 해에 그 땅에 소출이 들어오기까지 너희는 묵은 것을 먹으리라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믿지 못하였기에 안식년도 지키지 못하고 희년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안식에 자기 백성을 참여시키시기 위하여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땅이 70년간 안식하게 함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안식에 대하여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일을 하면 율법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하셨고 실제로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자도 모세시대에 있었습니다. 이런 안식은 인간의 노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짐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 본문처럼 70년 만에 돌아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안식이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70년 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합니다. 여기서 70년 만에 돌아왔다는 것은 그 연대의 기점을 어디에 잡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앞에서도 보았습니다만 예레미야 선지자가 계시를 받은 시점으로 봐야 하는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한 시점으로 봐야 하는지 다릅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도 일차 이차로 사로잡혀 가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도 일차 이차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은 에스라 느헤미야에서 상세하게 나옵니다. 그러므로 70년 후라는 말은 2주 후에도 살펴보겠지만 예루살렘 멸망에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이 재건되기 까지가 약 70년입니다. 물론 예루살렘의 성의 중건은 좀 더 시간이 걸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이 깨달은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어진 계시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이 칠십년에 마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깨닫고 회개의 기도를 하고 나자 다시 칠십 이레에 대한 계시를 받습니다. 칠십년 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정을 재건하여도 참된 안식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약 4백년 간 침묵의 기간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은 칠십년의 일곱 배가 지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레위기 25장에서 안식년이 칠년이며, 칠년의 일곱 배가 희년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칠십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일곱 배를 하면 490년이 됩니다. 안식년의 7곱하기 7이 희년이 되는데 다니엘이 다시 받은 일흔 이레는 70곱하기 7이 되기에 490년이 됩니다. 왜 이렇게 일곱 배를 다시 계수해야 하는 것입니까?

 

레위기 26:17~18절입니다. “17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의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18 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 19 내가 너희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교만을 꺾고 너희의 하늘을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을 놋과 같게 하리니 20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21 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체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동의하여 체결을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면 어떤 벌을 받게 될지에 대하여서도 시내산에서 동의하였습니다. 언약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그런데 언약을 배반하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십니다. 여기에도 다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언약을 배반함으로 징계를 하십니다. 그런데 징계를 하여도 청종하지 않으면 벌을 일곱 배를 더 하신다는 것을 18절과 21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음으로 70년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그 형벌의 때를 마치고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성전도 재건하였습니다. 제사도 드리고 율법도 다시 준행합니다. 그러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짓고 성벽도 완성하고 나서 안식년을 지킵니까? 전혀 지킨 흔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70년의 일곱 배의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일흔 이레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나면 그 내용이 너무 무서워서 앓아눕게 됩니다(8:27, 10:8,9). 그러나 그 계시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음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12:13). 다니엘서의 마지막 구절이 안식에 들어가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참된 안식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라면 다니엘서를 보면서 세상을 기대하지 않게 됨과 동시에 세상의 그 어떤 일들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다니엘 9:20~27절을 볼 때에 다시 일흔 이레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일흔이란 이레를 기준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칠일, 안식일, 칠년, 안식년, 칠십년, 칠십년의 일곱 배인 일흔 이레가 다 영원한 안식의 주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의 주인이 자기 백성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모든 언약 배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날과 달과 절기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요 모형의 역할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칠십이며 이 역사 전체도 일흔 이레라는 의미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7~30절입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이중적인 짐을 지고 삽니다. 율법과 유대 종교의 전통이라는 종교적인 짐만이 아니라 로마의 압제라는 두 가지 짐을 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예수님께서 쉬게 하시기 위하여 무엇을 하셨습니까? 종교를 개혁하거나 로마를 둘러엎지 않았습니다. 물론 성전을 무너뜨리라고 하셨습니다만 자신이 성전이 되시기에 자신이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쉼을 얻습니다. 그 다 이루심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으로 부어짐으로 쉼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흉흉한 소문으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 개인의 어떤 일로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니엘서를 말하고 요한 계시록을 말하면서 온갖 종말의 프로그램을 말하면서 자기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그런 소리들에 현혹당하지 않습니다. 이미 십자가로 완성하신 그 사랑이 부어진 자들은 이미 안식을 맛보며 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