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은 못하였습니다

마태복음 6:9-13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2010. 12. 8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4)(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하여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어서 아들이 아버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은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선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씨를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고 보니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범죄 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 죄란 권세이기에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혹 하나님을 부른다고 하여도 그것은 자기들의 상상의 하나님이지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른 하나님이 아님을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유대인들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 부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내신 일이며 그 이루어내신 일을 성령을 통하여 공급받아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면 이제부터 아빠가 생겼기에 아빠가 없는 고아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것은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이 있어야 할 줄을 하나님이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에 서머나교회 청지기 부흥회를 참석하였습니다. 뉴욕 순복음교회 목사인데 얼마나 열심히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교회입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런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 우리가 죽을 때에 사라지고 말 것들, 죽을 때에 의미 없는 것들에 대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였답니다. 성공과 번영을 위하여 기도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기도할 것이 없어서 가만히 있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한 교회에서 30년을 지켜보니 30년 동안 똑 같이 달라고만 하더랍니다. 본인을 위하여 세상의 것을 기도하더니 아들을 낳고는 아들을 위하여 그렇게 기도하고 손자를 위하여 그렇게 기도하더랍니다.

 

그런데 기도(祈禱)라는 말 자체가 빌 기자에 빌 도자입니다. 빌고 비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라면 빌어먹을 자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하번도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는 것을 말하면서 다음세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선교단체들이 10/40에 복음을 전하는 타깃을 삼았습니다. 위도 상 10도에서 40도 사이에 가장 인구가 많고 복음이 적게 증거 되었다고 보고 집중을 하였는데 이 분은 북한을 몇 번에 걸쳐 갔다 오면서 어떻게 저런 체제가 오래 가는지를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북한 탁아소와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교육을 본 것입니다. 젖 때고부터 탁아소에 맡기고 부모의 손길은 조국통일에 이바지하게 만들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교육시킵니까? 천지창조는 수령님께서 하셨고 나라는 장군님이 지키고 그들을 인도하는 것은 수령님의 영이 하신다고 합니다. 삼위일체죠! 탈북한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성경을 보다가 너무나 놀랐다고 합니다. 북한의 체제가 성경에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교집단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거짓말도 계속하여 들으면 거짓말도 사실로 믿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외부의 정보는 다 차단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으니 아시안 게임 때 장군님의 사진이 비에 맞는다고 웁니다.

 

이런 체제가 이슬람이며 카토릭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를 보면서 교회가 아이들에게 집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제는 10/40이 아니라 4/14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4세부터 14세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여러 나라에 유치원과 학교를 세우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그런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주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 안에 다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가르치신 이 기도도 주님께서 이루어내실 산상수훈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러놓고 무엇을 기도하도록 가르치신 것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기도 제목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름은 어느 누구도 거룩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모든 인간이 죄 아래 갇혔기에 죄인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문둥병자가 성물을 손데 대면 부정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더럽힙니다. 모세와 이사야와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와 사도요한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죽은 자와 같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맞는 말 같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거듭났고 성령이 임하였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름을 능동적으로 거룩하게 하여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름을 거명하여 죄송합니다만 김기선 집사님이 여러 사람이 있는데서 한 말이라서 인용을 합니다.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얼마나 많이 훈련을 받았고 그렇게 살아온다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땅의 것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아무리 애를 쓰도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고민이 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좀 해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에스겔서 36의 말씀 때문일 것입니다. 16-23절을 봅니다. “봉독”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한 짓이라고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언약의 저주대로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십니다. 그렇게 잡혀가니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럽힌 그 이름을 스스로 아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일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23절을 봅니다. 너희가 더럽힌 내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기 이름의 거룩함을 나타내시는 것이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십니까?

 

24-28절입니다. “봉독” 죄를 범하여 여러 나라 가운데 흩어진 그들을 모아 고국 땅에 데리고 와서 맑을 물을 뿌리고 정결하게 하며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숭배에서 정결하게 하며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주어서 너희 육신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준다고 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은 새 언약으로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 자기 백성의 구원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이 간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 자기 백성의 구원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간구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어내십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을 정결하게 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이 임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27절에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거듭났으니 우리가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정말 주의 영이 임하여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그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는 바는 언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였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사랑이 조금이라도 나왔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음을 성령이 충만한 사도가 증거 하였습니다(고전15:10).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이 기도가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나올 수밖에 없는 기도입니다. 그래야 아버지의 이름의 거룩히 여김을 받는 길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일이 됩니다. 이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제 아들이 되었기에 더 이상 회개도 기도도 필요 없다는 구원파가 되든지 아니면 이제 거듭난 나의 양심과 의지의 능력으로 성화를 이루어가겠다고 애를 쓰는 꼴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는 성도에게 지금도 계속하여 현재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다

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입증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입증이 오늘도 주의 영이 임하여 자신이 죄인 됨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만약에 거듭난 우리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성화를 이루어낼 수가 있다면 내가 성화될수록 예수님은 밀려나야 합니다. 흔히 성령의 도움을 말하지만 성령의 도움도 내가 주체가 되고 성령은 내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주는 식으로 말합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아니라 거듭났다는 자기 영광과 자기 거룩함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원형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함을 받는 자리는 세리와 죄인과 창기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는 자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인간의 공로가 들어설 틈이 없어야 거룩함입니다. 골로새서 1:9-23절을 봅니다. “봉독” 천지 만물을 누가 누구를 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이 비밀을 다른 사람들은 모릅니다. 오직 교회만 압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영광을 모르고 인간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영광과 거룩함을 만들어내겠다고 나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닦달합니다. 그러니 교회마다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위하여 일하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길은 오직 참된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만이 아버지의 말씀을 백퍼센트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기 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이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돌아온 아들과 집을 나가지도 아니한 아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가지고 탕진한 아들은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아들의 자격이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품꾼의 하나라도 여겨 달라고 오는데 아버지는 아들로 맞아주십니다. 그런데 자신은 아버지의 것을 탕진하지도 않았다고 여기는 그래서 참된 아들의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큰 아들을 아직도 삐져서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이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루어내시는 것임을 요한복음 17:16-19절에서 봅니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거룩함을 얻게 기도하시고 이루어내십니다.

 

주의 영이 임하여 이런 간구를 하는 자는 구원이 오직 주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알기에 지금도 주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 됨을 인하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은 간구이며 찬양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여 달라는 이 간구와 찬양이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이루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