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부]

                  [음성 설교]

열왕기 상 8:22-53 솔로몬의 기도 2010. 4. 28

 

22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26 그런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28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출애굽한지 480년, 솔로몬이 왕이 된지 사년에 성전을 건축하여 7년 만에 완공을 합니다.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제사장이 언약궤를 지성소에 두고 나오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이때 솔로몬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성전이 완공된 것은 솔로몬의 지혜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내셨다고 합니다. 열왕기상 8:15절을 봅니다.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겸손하여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22-26절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합니다.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다고 합니다.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이 신실함이 다윗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도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자가 끊어지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을 지켜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을 확실하게 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과연 내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이나 뜻이나 비전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한다는 것은 모든 세상의 종교가 다 그러한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뿌리 깊은 사상이 불교와 유교와 혼합이 되어 있는 종교적인 풍토에 오직 은혜라는 기독교가 들어와도 똑같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은 복음이라고 하면서 복음과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름만 되면 알만한 교회들 중에 기도해서 부흥했다는 곳이 많습니다. 그 내용을 논문으로 작성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도 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작은 교회들이 그런 교회를 배우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행하다시피 하는 ‘특새’가 나온 것입니다. 특별새벽기도라는 것입니다. 정성 바쳐 기도하면 자녀가 잘되고, 집안이 잘되고, 교회가 잘되고, 나라가 잘된다고 하니 다 나오는 것입니다. 잘 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잘 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내용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만으로 정성을 바치기는 부족한 것입니다. 더 정성을 바치는 일이 무엇입니까? 물심양면으로 해야지요! 흔히 도움을 요청하는 곳에서 하는 말입니다. 마음만 가지지 말고 물질이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일이 성전건축입니다. 다윗도 짓지 못한 성전을 우리가 건축하게 되었으니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허무신 것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심각한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일로 말하는 것입니다.

 

바르트의 신학묵상을 보고 있는데 교회와 복음에 대하여 이런 글을 오늘 보았습니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이스라엘, 교회, 종교의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원의 복음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것들이 역사 속에서 가장 순수하게, 가장 강력하게, 자신의 본질에 가장 적합하게 출현할지라도 형편은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교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광범위하게 그리고 열렬하게 하나님의 것을 인간화하고 시간화하고 사물화하고 세속화하고 실용화하려고 시도하는 장소입니다.” 아무리 올바른 교회라고 하여도 여기서 벗어날 교회는 없는 것입니다.

 

27-30절을 봅니다. 27절에서 하늘의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용납하지 못하겠거늘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건축한 이 성전에 거하실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늘관이 나옵니다. 가장 높은 하늘도 하나님을 용납할 수 없는데 어떻게 사람의 손에 지은 이런 건물에 거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는 유대인들 앞에서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하였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면 성전을 왜 건축한 것입니까? 28절을 보시면 기도하는 곳입니다. 왜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입니까? 29절에서 주의 이름을 그곳에 두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의 이름이란 언약을 이루시는 주님이시니 언약궤가 있고 그곳에 피 흘림의 제사가 있는 곳입니다. 그 언약궤 위에서 만나주시겠다고 하였기에 주의 이름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시면 하늘에서 들으시는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인 기도의 내용을 봅니다. 31-32절입니다. 이웃 에게 범죄 함으로 맹세시킴을 받을 때에 성전 제단 앞에서 맹세하는 것입니다. 이웃과의 송사에 있어서 그 판결을 성전 앞 제단에서 맹세로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는 의로운 대로 갚아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신앙에 의지하여야만 되는 판결입니다. 여호와께서 다 보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얼마든지 거짓 맹세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3-34절입니다. 주의 백성이 주께 범죄 함으로 적국에게 패배하게 되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것이 죄로 인한 것인 줄 알고 주께로 돌아와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둔 곳이기에 주의 이름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들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가게 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35-39절입니다. 주께 범죄 함으로 비가 오지 않으면, 기근, 전염병, 곡식이 시듦, 깜부기, 메뚜기, 황충, 적군이 와서 성읍을 에워쌈,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을 막론하고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행위대로 갚아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만 홀로 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 비가 오지 않고 온갖 재앙이 오면 이스라엘이 아니라도 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우제도 지내고,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도 하고, 신에게 정성을 바치는 종교적인 제의들이 나라들마다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과의 차이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방나라들도 재앙이 오면 자기들의 신에게 잘 못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이방인들의 제의에 빠지지 않도록 율법은 이미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8:15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순종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저주의 내용들이 지금 솔로몬의 기도하는 내용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비가 오지 않는 것, 전쟁, 전염병, 포로로 잡혀감 등이 다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은 언약의 저주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저주가 임하는 것은 범죄 하는 것이기에 이런 저주가 임할 때에 한 사람이라도 죄를 깨닫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사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와 응답을 통하여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왕상8:40절입니다.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항상 주를 경외하게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항상 내가 좋은 것이 우선입니다. 여호와 경외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늘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쁘신 것은 우리가 기쁘지 않고 우리가 기쁜 것은 하나님이 기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차이를 알아가며 아버지의 기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구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41-43절입니다.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들어온 이방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이방인, 땅의 만민이 성전에서 기도할 수 있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수가 있기에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여호와의 명성을 듣고 참여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이 세워지기도 전이지만 여호와의 명성을 듣고서 이스라엘에 들어온 기생 라합과 모압 여인 룻이 있습니다. 성전을 짓고 나서는 남방여왕이 왔습니다.

 

44-53절입니다. 계속하여 솔로몬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전쟁에 나갈 때에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적국에 포로로 잡혀 갔을지라도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 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다고 하면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어달라고 합니다. 여기에 두 가지 내용을 눈여겨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는 46절에서 범죄 하지 아니하는 인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인생이 없다는 말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입니까? 그런데 그런 범죄자가 용서 받을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전인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담은 언약궤가 있고 속죄가 있으니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도 또 하나는 51절과 53절입니다. 철 풀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과 언약하신 대로 출애굽 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출애굽 시키신 것처럼 다시 범죄 하여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 가 있을지라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다시 구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기도를 압축하면 범죄 하지 않는 인생이 없지만 주의 언약을 따라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용서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여호와를 경외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전의 완성은 예수님입니다. 마가복음 11:17절입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이사야 56:7절의 말씀을 하시면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도적의 소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물을 바꾸어주면서 장사하고 성전의 돈으로 바꾸기 위하여 환전하면서 장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어떤 도적의 소굴이 되었습니까? 바치면 복을 받는다는 도적의 소굴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런 성전을 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3일 만에 짓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성전이 되시는 것입니다(요2:19-22). 성전 되신 예수님이 가짜 성전을 고수하는 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또 승천하셔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성전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와 성령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결국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롬8:2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