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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0:1~5 영원한 언약으로 2015. 2. 11

 

1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바벨론과 갈대아 사람의 땅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라 2 너희는 나라들 가운데에 전파하라 공포하라 깃발을 세우라 숨김이 없이 공포하여 이르라 바벨론이 함락되고 벨이 수치를 당하며 므로닥이 부스러지며 그 신상들은 수치를 당하며 우상들은 부스러진다 하라 3 이는 한 나라가 북쪽에서 나와서 그를 쳐서 그 땅으로 황폐하게 하여 그 가운데에 사는 자가 없게 할 것임이라 사람이나 짐승이 다 도망할 것임이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그들이 울면서 그 길을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5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 하리라

 

예루살렘의 멸망을 근거로 예루살렘 주변의 나라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나라인 바벨론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지명이 성경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은 창세기 10:6~10절 입니다.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노아의 세 아들 중 덮어줌의 은혜를 모르는 함의 후손들이 차지한 지역이 바벨입니다. 그 중에 니므롯은 세상의 처음 용사라고 합니다.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이름을 들을 정도로 힘이 강한 자입니다. 노아를 통하여 저주의 선언을 받은 함의 후손들이 이렇게 강한 나라가 된다는 것을 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말하는 힘이 복이 아닙니다.

 

오늘본문 1~2절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바벨론과 갈대아 사람의 땅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바벨론은 앞에서 말씀드렸고 갈대아 인은 아람 족속의 한 갈래로 주전 900년 경에 바벨론 지역에 들어온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벨론과 갈대아를 함께 말합니다. 이 바벨론과 갈대아에 대한 말씀인데 너희는 나라들 가운데 전파하라고 합니다. 여러 나라들에게 공포하고 깃발을 세우고 숨김이 없이 공포하라고 합니다. 그 내용은 바벨론이 함락되고 벨이 수치를 당하고 므로닥이 부스러지며 그 신상들이 수치를 당하며 우상들이 부스러진다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벨은 주인이라는 뜻이며 므로닥은 바벨론의 수호신 마르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벨론이 망했다는 것은 그들의 신들이 망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벨과 므로닥이 부서졌다고 합니다.

 

3절입니다. 이는 한 나라가 북쪽에서 나와서 그를 쳐서 그 땅으로 황폐하게 하여 그 가운데에 사는 자가 없게 할 것임이라 사람이나 짐승이 다 도망할 것임이니라바벨론을 치는 나라가 북쪽에서 온다고 합니다. 이 나라가 페르시아입니다. 바벨론이 결국 페르시아에 의하여 정복됩니다. 이렇게 바벨론이 무너지게 되면 그 땅이 황폐하여 그 가운데 사는 자가 없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나 짐승이 다 도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한때 온 세상을 호령하던 바벨론이라는 제국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망하게 됩니다.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본문 이후로 자세하게 나옵니다. 오늘은 이렇게 바벨론이 무너질 것이기에 그 바벨론에서 도망쳐 영원한 언약으로 나오라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겠습니다.

 

4절입니다. “봉독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선포가 이미 완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는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바를 식언(食言)치 아니하시고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이 망하게 됨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북 이스라엘은 주전 622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함께 돌아오는데 울면서 돌아옵니다. 왜 울면서 돌아오는 것입니까?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였기에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지만 여호와의 언약이 신실하시기에 그 언약대로 자기들을 돌이켜 주시기 때문에 돌아오면서 회개의 눈물도 되고 감사의 눈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울면서 그 길을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합니다.

 

5절입니다. “봉독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이 그 얼굴을 시온을 향하여 그 길을 묻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에 바벨론 강가에서 수금을 걸어놓고 시온을 생각하여 울었던 자들입니다(137:1~2). 이들이 서로 말하면서 오라고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고 합니다.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이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입니다. 그 언약으로 돌아와서 여호와야 연합하라고 합니다. 야곱의 아내 레아가 셋째 아들을 낳고 이제 남편이 자신과 연합하리라고 이름을 레위라고 지었습니다. 이처럼 남편 되신 여호와 하나님과 아내 된 이스라엘이 연합하는 것이 그 영원한 언약 때문입니다. 그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반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언약에 신실하셔서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1~3절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예레미야 50:5절에서는 영원한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영원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언약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그들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지만 그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이유는 그 영원한 언약과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그 영원한 언약이 언제 체결되는지 봅니다.

 

사도행전 3:18~21절입니다.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난 베드로 사도의 증언입니다.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증거 한 그리스도의 고난은 영원 전부터 약속된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선지자들이 말한 만물을 회복하실 때 까지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만물의 회복이란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는 지상낙원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이라는 유배지에서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하여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을 통하여 영원한 언약 곧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이 회복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주께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것이 다 영원 전부터 약속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영원 전 언약은 아버지와 아들의 언약입니다.

 

디모데후서 1:9~10절입니다.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우리가 지금까지 예레미야서를 통하여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망 받아 마땅함을 보았습니다. 1퍼센트도 자기들의 의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기 뜻대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신 것입니다. 이 영원 전 언약이 그리스도 예수로 나타났습니다.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반드시 생명이 드러나고 썩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이라고 하면서 생명이 아니라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전하면 다른 복음입니다.

 

디도서 1:1~3절입니다.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하나님의 종이며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가 받아서 전한 복음은 여기서도 분명하지만 땅의 썩어질 것들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이 땅은 바벨론이기 때문입니다. 무너질 바벨론, 불에 태워져 사라질 바벨론이기에 믿음의 내용이란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내용이기에 사람이 일체 개입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직 자기의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란 반드시 사도들이 증거 한 그 복음의 내용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전도를 하는지 보면 그 사람이 성경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오전에 어떤 분이 전화가 왔습니다. 국민일보와 CTS에서도 협찬을 하는 전도프로그램인데 무료로 강의한다고 해서 교회에서 함께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저녁에 전도가 어려운 시대라고 하면서 예수 자도 들어가지 않고 하나님 자도 들어가지 않는 전도지를 만들어 돌려야 한다고 하면서 한부에 300원 하는데 천부씩 보내 줄 테니 30만원씩 헌금할 사람 열두 명 손을 들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전화를 한 분이 자신은 기도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니 자기에게서 멈추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장과 요한복음의 2장에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도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세상의 썩어질 것들에 대한 약속이 없습니다.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내용들입니다.

 

유다서 1:23~25절입니다.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1년 전에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아 가는 곳마다 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기를 기원하는 것이 유다서의 끝인사입니다.

 

영원 전과 영원까지는 묵시적인 표현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이제에 속한 자들입니다. 이제라는 시공간의 사람들이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라는 이 묵시가 감지가 된다는 것은 결코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이해하고 믿는다는 것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영원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하신 그 언약의 능력이 영원한 사랑에 바탕 한 그 언약의 능력이 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들은 그 언약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향하게 됩니다. 원치 않는 그 길로 이끌리어 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봅니다. “봉독 바벨론이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시대에 바벨론이 멸망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아도 이미 멸망한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그 바벨론에서 도망쳐 나와야 합니다. 다음번에 바벨론에서 도망쳐 나오라는 말씀을 보겠습니다만 이 바벨론이란 역사 속에서 멸망한 바벨론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때에는 이 바벨론이 로마입니다. 예레미야시대의 제국이었던 바벨론이 멸망한 것처럼 신약시대에 바벨론으로 불렸던 로마도 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은 이 세상을 말합니다. 이 세상이 이미 무너진 세상입니다. 이미 불타 없어진 세상입니다. 묵시 속에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묵시의 말씀을 듣고 영원한 언약으로 돌아와 여호와와 연합 할 자는 영원 전 언약에 약속된 자들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언약과 영원한 사랑의 완성은 예레미야 31장에서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새 언약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오는 자들은 바벨론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자들입니다. 내가 믿고 사랑하던 바벨론들이 무너짐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과 영원한 사랑을 깨닫고 울면서 주께로 돌아오는 자들이 언약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바벨론에 속한 것을 얻고자 교회당에 모여서 온갖 정성을 바치는 것은 그 자체가 바벨론이 된 곳입니다. 그런 바벨론에서도 도망쳐 나오라고 합니다(51:8). 그러나 아무리 바벨론에서 도망쳐 나오라고 하여도 영원한 언약 백성이 아니면 들리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32:36~41절입니다. “36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37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38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3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한 이스라엘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때문입니다. 이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마음이 끌리는 자들이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그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영원 전 언약으로 약속된 자들에게 부어지면 그제야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어떠함을 알고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의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언약으로 돌아와 여호와와 연합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이 영원한 언약으로 연합하는 것을 요한복음에서 봅니다.

 

요한복음 14:16~20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가시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가셔야 보혜사를 보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신다는 것은 그냥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완성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완성하심으로 자기의 영을 넘겨주시는 것이 보혜사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혜사가 임하시면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진리의 영은 세상은 받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오직 영원 전에 언약된 자기 백성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결코 자기들의 능력이나 선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그 영원하신 언약으로 돌아갑니다. 그 영원한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났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영원한 언약으로 영원한 사랑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맛보며 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