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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55:1~23 날개가 있다면 2021. 6. 9

 

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2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 3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6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8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9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10 그들이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 중에는 죄악과 재난이 있으며 11 악독이 그중에 있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 12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14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15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9 옛부터 계시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낮추시리이다 (셀라) 그들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이다 20 그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의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21 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23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오늘 본문의 표제어가 다윗의 1)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입니다. ‘다윗의 마스길이라고 하니 다윗의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이 시편으로 무엇을 교훈하려는 것입니까? 세상의 악인들이 주를 의지하는 자를 핍박합니다. 그 핍박을 하는 자가 처음부터 원수나 미워하는 자라면 덜 고통스럽겠는데 친한 친구에게서 배신을 당하니 더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광야로 날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날개가 있다면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배신당한 경험이 없습니까? 배신당하는 고통은 그동안의 신뢰가 큰 사람이었을수록 배신감은 더 큽니다. 가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을 봅니다.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떠나 산속에 홀로 사는 이유가 여러 가지입니다. 그중에 많은 이유는 일 중독에 빠졌다가 건강을 잃어 죽는다는 선고를 받고 산으로 온 사람이 많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의 인간관계에서 여러 모양의 배신을 당한 자들이 산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들어갈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산으로 들어갈 능력도 없는 사람은 여러 가지 가정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오늘 시편에도 가정법이 있습니다.

 

본문 1~5절을 봅니다. “봉독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 기도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간구할 때 숨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내게 굽히사 응답하여 달라고 합니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말을 자세히 듣기 위하여 몸을 굽히는 일은 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한다고 합니다. 그 근심은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입니다.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프고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다고 합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 간구하지만 빠른 응답이 없습니다. 이럴 때 가정법이 나옵니다.

 

본문 6~8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6 나는 말하기를 "나에게 비둘기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다면, 그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서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으련만. 7 내가 멀리멀리 날아가서, 광야에서 머무를 수도 있으련만. (셀라) 8 광풍과 폭풍을 피할 은신처로 서둘러서 날아갈 수도 있으련만" 하였다.” 영어를 배울 때 가정법을 배우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있었다면이라는 무엇에무엇을 넣고 싶습니까? 자본주의 사회는 돈만 있었다면 이렇게 저렇게 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을 합니다. 그런데 그 가정의 끝은 결국 내가 전능한 신이 되려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본문의 가정법은 우리가 가정해 보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가정을 하게 됩니까? 시편 52편을 보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에돔 사람 도엑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왔다고 사울에게 고발함으로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시편 54편은 십 사람들이 다윗이 그곳에 숨어 있다고 사울에게 고발합니다. 십 황무지로 피하게 된 이유는 그일라 성 사람들을 구하여 주었지만, 사울이 내려오면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거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정법을 사용하는 이유를 봅니다.

 

본문 9~11절을 봅니다. “봉독시편 52편과 54편의 배경만 보아도 이스라엘의 상태가 어떠한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이 떠난 자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데 백성들이 여기에 동조합니다. 이것이 폭력과 분쟁, 저주와 재난, 파괴, 억압과 속임수가 가득한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말끔히 없애 버리고 그들의 혀를 잘라달라고 합니다. 그들의 말이 일치되지 않게 하여 달라는 뜻도 됩니다. 그래야 다윗을 추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에서, 이런 세상에서, 비둘기처럼 날개 있다면 광야로 피난하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본문 12~14절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12 나를 비난하는 자가 차라리, 내 원수였다면, 내가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차라리, 자기가 나보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내 원수였다면, 나는 그들을 피하여서 숨기라도 하였을 것이다. 13 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바로 너라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바로, 내 동료, 내 친구, 내 가까운 벗이라니! 14 함께 두터운 우정을 나누며, 하나님의 집을 사람들과 어울려 드나들던 너라니!”

 

이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은 다윗이 왕이 되고 난 후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추적할 때는 동료들과 함께 예배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집을 사람들과 어울려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다윗이 언약궤로 예루살렘으로 메고 왔을 때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동료들과 함께 예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동료들이 배신한 겁니다. 다윗을 배신 한 자들이 처음부터 원수나 미워하는 자들이라면 견디거나 피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잘 지내며 함께 예배를 드리던 자들이 배신하였기에 더욱 큰 고통입니다.

 

사무엘하 15:10~12절입니다. “10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1 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12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압살롬의 반역에 아히도벨이 함께 합니다.

 

사무엘하 15:30~31절입니다. “30 다윗이 감람 산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31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이 맨발로 울면서 감람산으로 도망갑니다. 어떤 사람이 압살롬의 반역에 함께 한 자가 아히도벨이 있다고 합니다. 아비도벨은 다윗의 모사였습니다. 뛰어난 책략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께 기도합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 혀를 잘라달라는 말과 같습니다. 다윗의 피난길에 후새가 다윗에게 오자 다윗이 후새를 성안으로 들어가 압살롬에게 충성하듯이 하게 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너뜨리게 합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이 좋았지만, 그 뜻이 무너지자 아히도벨은 고향으로 돌아가 집안을 정리하고 목을 매서 죽습니다. 아히도벨이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어 죽은 것은 압살롬의 패배를 내다본 것이기도 하지만 다윗의 간구가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5~19절입니다. “봉독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가라고 합니다. 이는 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악인들은 남을 모함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근심과 탄식이 얼마나 많았으면 아침과 저녁과 정오에 탄식하며 주께 부르짖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 겁니다. 바로 앞에서 찾아본 아히도벨의 모략이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생명을 구원하십니다. 예로부터 계시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낮추셨습니다(셀라).

 

15절을 보면 산채로 스올에 내려가게 해 달라고 합니다. 모세를 반역한 자들이 산채로 땅에 들어갔습니다. 다윗을 반역한 아히도벨도 자기 모략이 통하지 않자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맵니다. 이러한 일들이 성경에 수도 없이 나옵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가 심판을 당하는 일을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여호와의 심판을 보면서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19절의 (셀라) 다음부터 21절까지 봅니다. “봉독 여호와의 심판을 보고도 그들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실상이 이와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어가는 일을 날마다 보면서도 자신은 죽음과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심판을 보면서도 그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의 삶의 모습은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의 언약을 배반합니다. 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라고 합니다. 사자성어로 하면 구밀복검(口蜜腹劍)입니다.

 

본문 22~23절입니다. “봉독 배신과 배신이 가득한 이런 세상에서 너의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원수들은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십니다. 피를 흘리는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고 합니다. 이 고백이 날개가 있다면 광야로 가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주를 의지한 예수님은 어떻게 됩니까? 가룟 유다가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깁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 자리까지 함께하겠다고 큰소리친 베드로이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날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저주하며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안에 일어나는 일로 배반당하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십자가의 잔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구하였고 결국은 십자가를 지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버림받음이 우리에게로 버림받아 우리를 안고 함께 광야로 나갑니다.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시지 않고 광야로 인도합니다. 광야에서 여러 시험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6~8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성안의 악의 가득함을 보고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광야로 날아가서 머물겠다고 합니다. 왜 광야로 날아가려고 합니까? 성안에 악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고대로 갈수록 성안에 사는 사람들이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성안에 사는 자들의 권모술수가 어떠한지 주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광야로 날아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광야는 어떤 보호도 없는 곳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랄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로 날아가기를 원한 것은 전적인 주의 도움만 바라는 겁니다.

 

신명기 32:9~12절입니다.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거대한 제국 이집트, 성이 있고, 나일강의 비옥한 토지가 있기에 곡식이 풍성하며, 고기와 채소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그런 땅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 땅을 차지하여 살게 하지 않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광야로 인도하셔서 보호하시는 겁니다. 세상의 보호가 없는 곳으로 인도하여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날개가 있다면 광야로 가겠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9:1~6절입니다. “봉독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가운데 온갖 악들이 가득함으로 보고 선지자들은 광야로 나가기를 원합니다. 성안에 일어나는 일들이 온갖 악이며 우상 숭배이며 거짓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광야로 가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1:8절입니다.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두 증인이 죽임을 당한 장소가 어디입니까? 영적으로 말하면 소돔과 애굽이라고 하는 곳인데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성에서 일어난 악으로 인하여 다윗은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광야로 날아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도는 성안의 삶이 아니라 성 밖으로 나갑니다.

 

히브리서 13:12~15절입니다.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성도는 예루살렘 성안에 일어나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이마에 표하라고 말씀합니다(9).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곳이 가정이든, 교회이든, 회사이든, 국가이든 세상이라는 성안에는 탐심이라는 우상 숭배가 가득함을 보는 자들이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이런 곳에서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광야로 가겠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 성문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성도란 이 땅에 영구한 도성이 없음을 알고 장차 올 것, 곧 그리스도가 우리의 거처가 되고 우리가 그 거처가 될 날을 사모하며 오늘도 광야로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