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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2:1~12 잠잠히 2021. 7. 28

 

1 나의 1)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5 나의 영혼아 2)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9 ,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표제어를 봅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시편 39편에 나온 내용입니다. 여두둔은 레위인으로 성전의 문지기 역할도 맡고 찬양의 인도도 맡은 자입니다(대상16:42, 25:1).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성전에서 봉사할 여러 직무를 차례대로 조직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시를 여두둔이 작곡하여 부른 것으로 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잠잠히라고 생각해 두었을 때 하나의 예화를 생각하였습니다. 분도 출판사의 우화 시리즈 중에 잠잠이가 있습니다. 여러 우화가 있는데 유명한 우화는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으로 봅니다. 그중에 잠잠이의 내용은 쥐들의 이야기인데 쥐들이 여름 동안 열심히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잠이라는 쥐는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고 늘 잠잠합니다. 드디어 겨울이 오고 눈이 오고 세상이 회색이 되었을 때 더 어두운 동굴에서 잠잠이는 햇볕을 말하고 바람과 꽃들과 그 향기를 말한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으로 잠잠이의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 1절을 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란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이라는 단어에서 이라는 단어는 오직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강조하는 단어가 문법과 상관없이 제일 앞에 나옵니다. 그래서 으로 번역되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아크입니다. 이 단어는 대상을 제한할 때 씁니다만 단정적으로 사용할 때는 확실히가 됩니다. ‘오직’ ‘확실히라는 아크가 문장 제일 앞에 오는 구절이 1, 2, 4, 5, 6, 9절입니다.

 

본문 1절에서 오직을 앞으로 보내면 오직 내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잠잠하니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온다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란 나에게서 나오지 않으니 잠잠히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면 잠잠히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성경은 부르짖으라고 하지 않았느냐도 되물으실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 곳 한 곳만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3:2~3절입니다.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절이기에 333으로 외우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부르짖으라고 하는 말씀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포위하고 있는 상황인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조용히 포로로 잡혀가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 말씀이 얼마나 매국적인 행위로 보이겠습니까? 적이 쳐들어와서 포위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잠잠할 수가 없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가옥과 왕궁마저 헐어서 성벽을 높게 쌓아서 대항하려고 합니다(33:4). 애굽의 도움을 구하려고 하고 애굽으로 피난 가려고도 합니다. 이럴 때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오히려 잠잠히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부르짖는 모습이 잠잠히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장래 일을 알게 하여 주시겠다는 내용은 바벨론에 잠잠히 잡혀감이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이 극히 좋은 무화과이며 애굽으로 피난 가는 자는 극히 악한 무화과라고 합니다(24).

 

예레미야애가 3:26~32절입니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의하여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목격한 선지자입니다. 이럴 때 잠잠히 바벨론에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라고 합니다. 누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듣겠습니까?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는데 예레미야 선지자의 애가입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란다면 멍에를 매고 잠잠히 기다리라고 합니다. 심지어 입을 땅의 티끌에 대고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며 치욕으로 배를 불리라고 합니다. 누가 이럴 때 잠잠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런 말씀에서도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하시며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이 보입니다. 그 십자가가 구원임을 사람들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자기 구원을 위하여 요란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을 봅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여기서도 오직을 문장 제일 앞에서 두었습니다. 내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것은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 요새, 구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석, 요새는 흔들리지 않고 든든한 곳입니다. 그러나 다른 시편에서도 보았습니다. 다윗은 쫓겨 다니는 중에 요새도 반석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바라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 요새, 구원입니다.

 

3절입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로 비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30:13절을 보면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선지자들에게 말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멸망하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장마철에 담벼락이 불룩하게 나와 있는 곳은 곧 무너질 조짐입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울타리란 중간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사이에 싸릿대로 엮어둡니다. 이런 울타리는 몇 년이 지나면 땅에 닿은 부분이 썩기에 밀어버리면 툭 하고 쓰러집니다. 이런 연약한 인간이 시인 자신이기도 하고 시인을 공격하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인생의 연약함을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4절입니다. 이 구절도 오직이 문장 처음에 나옵니다. 4절의 사역을 봅니다. “오직 그들은 그를 높은 자리에서 밀어낼 계획으로 거짓말을 좋아하여, 입으로는 축복하나 속으로는 저주한다.” 3절이 인간의 연약함을 말한다면 4절은 인간의 악함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축복을 하지만 속으로는 저주하는 겁니다. 지금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도 똑같습니다. 겉으로는 국민 국민을 입에 달고 있지만, 그 속에는 자기의 권력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보다 높거나 인기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떨어뜨리려고 온갖 흑색선전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인 말씀을 보면서 바르게 분별하여야 진영이나 이념에 따라 흔들리지 않습니다. 4절 끝에서 셀라가 나오는 것은 한 단락이 끝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찬송의 간주(間奏)와 같습니다.

 

5~8절입니다. 5절과 6절도 오직이 문장 제일 앞에 나옵니다. 이 단락은 1~3절의 반복과 같습니다. 오직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합니다. 나의 소망이 그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 구원,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으며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토한다는 것은 마음을 쏟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마음을 쏟아 놓으라는 말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겁니다. (셀라)

 

9절입니다. 3절에서는 인생의 연약함을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로 말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사람이 입김이며 속임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울에 달면 입김보다 가볍다고 합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신분이 낮은 사람도 입김에 지나지 아니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도 속임수에 지나지 아니하니, 그들을 모두 다 저울에 올려놓아도 입김보다 가벼울 것이다.’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이 무너지는 담, 흔들리는 울타리, 입김, 속임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천한 자는 입김이라고 하고 신분이 높은 자도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천한 자들의 목소리는 힘이 없기에 입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자들은 목소리에 힘이 있지만 그들의 힘도 결국 속임수로 얻은 것이라 입김에 불과합니다.

 

10~11절입니다. 9절과 같은 인생살이 속에서 사람마다 힘을 가지려고 합니다. 힘은 재물에서 나오기에 재물을 가지려고 합니다. 재물을 가지려면 포악해져야 합니다. 다른 번역에서 포악을 억압이라고 합니다. 억압하고 포악한 자들은 탈취하여 자기의 재물을 늘립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탈취하여 재물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런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으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합니다. 참된 권세와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에 하나님께서 한번 불어버리시면 한순간에 날아 가버리는 먼지와 티끌에 불과한 것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12절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인자함이 주께 속하였다고 합니다. 주의 인자함이란 주님의 언약을 따른 사랑입니다. 그 사랑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다는 말이 주의 인자하심을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오직이라는 말의 결론은 오직이라는 말이 없지만, 잠잠히 주님의 약속만 믿고 사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말씀은 잠잠히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는지 아니면 자신의 힘을 키우려고 온갖 악을 행하였는지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다니엘 5:25~28절입니다. “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하다가 짐승이 된 적이 있는 것을 다 본 벨사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그릇으로 술을 먹다가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쓴 글을 다니엘이 해석한 겁니다. 제국의 왕이지만 하나님이 저울에 달아보면 입김보다 가벼운 겁니다.

 

그러나 힘이란 제국주의가 추구하는 이런 힘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나라마다 그 나라의 선악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시대의 윤리와 도덕적인 힘도 힘입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율법의 의가 힘이 됩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는 자들이 백성들의 지도자들이며 존경을 받는 사회입니다. 또한 로마의 권력이 유대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오셨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사람들이 의지하는 힘을 하나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고,나를 따르라고 하신 겁니다.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도 다들 자기 나름대로 포부를 가지고 따라간 겁니다. 이러한 자들은 잠잠할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 안에서도 서로 높아지려고 시기 경쟁하면서 따라갔기에 십자가에 앞에서는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이루어내십니다. 그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이루심을 봅니다.

 

이사야 42:1~9절입니다.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하나님의 구원을 어떻게 이루실지를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성취하려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2:15~21절입니다. “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18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1)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면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이사야 선지자의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길을 기록된 말씀대로 가시는 겁니다.

 

이사야 53:7절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장은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의 노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 미리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8:32절입니다.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빌립을 그에게 이끌어 가십니다. 그 읽는 내용을 알겠느냐고 묻습니다. 가르치는 자가 없으니 어떻게 알겠느냐고 하자 빌립이 그 말씀으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자 그가 세례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세상이 요란합니다.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정치적인 요란함, 경제적인 요란함, 종교적인 요란함, 바이러스로 인한 요란함, 올림픽의 요란함, 남북의 요란함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이 임하여 성경의 계시를 믿는 사람이라면 처음에 우화 잠잠이의 예를 든 것처럼 이 요란하고 우울한 세상 속에서 잠잠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