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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17~24 여호와를 기다리라 2018. 1. 10

 

17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18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지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21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22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23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오늘 오전에 책상에 있다가 잠시 창밖을 봤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날은 춥고 계속해서 눈이 이렇게 내리면 저녁에 사람들이 오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설교준비를 미뤄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났습니다. 아마 주부가 매일 밥을 준비하는데 한 번씩 하지 않으면 기분 좋은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 햇볕이 났습니다. 어떤 분은 설교를 하고 싶어 하는 분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힘이 들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준비하다가 보면 말씀 가운데 은혜가 있기에 지금까지 하고는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설교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특별한 인간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사람들은 속여서 얻은 빵이 맛있다고 하지만, 훗날에 그 입에 모래가 가득 찰 것이다.” 이런 말씀은 문자대로 보아도 누구나 수긍하는 말씀입니다. 안기부에서 현금을 청와대로 보내고 그 돈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명절 보너스로 수 천 만원씩 받을 때에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드러나지 않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도 대통령도 재벌도 감옥에 가서 먹는 밥이 모래를 씹는 것 같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사필귀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이러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 다 일까요?

 

21절을 봅니다. 처음부터 빨리 모은 재산은 행복하게 끝을 맺지 못한다.” 사람들이 뇌물을 받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보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월요일 광주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그 모임에 전남대교수를 은퇴하신 분이 참석하시는데 이분은 진리를 찾으려고 추기경에게도 질문하고 유명하다는 종교인들에게도 질문하였다고 합니다. 그분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이 세상을 주관한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 있는가 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결국 믿지 않기에 그렇다고 한 것입니다.

 

세상이 새마을 운동을 하고 경제개발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때에 성경을 읽고 믿는다는 교회는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빨리 빨리 보다는 바르게 가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마저 세상과 더불어 빨리 성장하는 것이 마치 진리가 되는 양 그렇게 밀어붙인 것입니다. 성장제일주의로 갔기에 과정은 어떠하여도 거저 교회에 숫자가 많이 모이고 건물들이 우뚝 우뚝 세워지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빨리 성장한 교회가 오늘날 세상에서 얼마나 욕을 얻어먹고 있는지 어디 가서 교회 다닌다고 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23절입니다.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한결 같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이 한결같지 않는 저울추를 사용합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17절과 21절을 연결하여 보면 자기의 산업을 속히 일으키기 위하여 속여서 취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한국에서 많은 돈을 벌려면 불법을 행하거나 권력을 잡는 길 외에는 없다고 하더랍니다.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은 부정과 반칙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자들이 상대적인 불이익을 당하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이런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면 사회운동이 될 것입니다. 물론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성도가 아니라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런 말이 궁극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다시 봅니다. 사람들은 속여서 먹는 빵이 맛있다고 하지만 결국 그 입에는 모래가 가득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잠언 9:17절을 봅니다.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이런 자들이 가는 곳이 스올이라고 이어지는 말씀에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속여서 속히 부하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결국 영원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문자대로도 보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저 하나님 잘 섬겨서 세상에서 부자 되고 높은 사람 되고 영향력을 끼치자고 하니 문자대로도 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고 추구하는 양식이 세상의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양식임을 알아야합니다. 세상의 썩을 양식은 심은 대로 거두기 마련입니다. 봄에 부지런히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 가을에 거둘 것입니다. 게을러서 밭을 갈고 씨 뿌리지 않으면 추수 때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 이런 말씀들도 잠언서와 성경 곳곳에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양식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을 말합니다. 생명의 양식을 전하는 자들이 썩을 양식으로 속여서 말한다면 그 사람의 입에 결국은 모래가 가득하게 될 것이며 그 말을 듣는 자도 그러할 것입니다.

 

신명기 28:23~24절입니다. “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신명기 28장에서 여호와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 저주로 임하는 모습이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비처럼 내리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비 대신에 모래가 내리면 결국 사람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이러함에도 제사장과 선지자들과 방백들이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보지 않고 그들을 속여서 자기들의 배를 채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재앙이 오고 결국은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5:1~5절입니다.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재산을 빨리 모으려고 하면 부당한 방법을 쓰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그 결국은 불행하게 되는데 그 모든 내용을 야고보서 5장에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부한 자들이 되었다는 것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가난해 진 것입니다. 재화(財貨)는 한계가 있는데 이 재화가 골고루 나누어지지 않고 한 곳으로 몰리면 그것을 부자라고 합니다. 이렇게 부한 자가 된다는 것은 부당한 수익을 잡았기에 가난한 자들이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주께서 들으시고 이러한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의 근거는 부당하게 모아들인 재물이 증거가 되어 불처럼 그 사람의 살을 먹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읽고 듣고 믿는 사람이라면 부당한 수익을 좋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진짜 생명의 양식을 구할 것입니다.

 

이사야 55:1~3절입니다.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사람은 양식이 되지 않을 것을 위하여 은과 금을 소비합니다. 여기서 양식이 되지 않는 것이란 생명의 양식이 아니라 섞을 양식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죽고 이 세상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져 버릴 것들을 목숨처럼 여기면서 은과 금을 소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의 양식이 되지 못합니다. 생명의 양식은 너무나 귀하기에 인간이 결코 그 값을 지불할 수 없기에 돈 없이 값없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라고 합니다. 일한 것이 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그 불법이 사함을 받고 그 죄가 가려짐을 받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4:6,7). 이것을 사도요한은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합니다(22:17).

 

본문 18절입니다.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지략을 베풀고 전쟁하라고 합니다. 무슨 계획을 세울 때에 자문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할 때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손자병법과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4장에서 자신을 따르려고 하면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고 하시면서 망대를 세우는 자가 계산 없이 세우다가 중도에 그만두면 비웃음을 당합니다. 전쟁을 할 때도 상대를 보고 대적을 하든지 화해를 하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를 때에 무엇을 얻을지를 생각하고 따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예수님만 계시면 된다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19절입니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경영을 의논하거나 전쟁을 하는데 그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기에 그런 자를 사귀지 말라고 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과 사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가서 나의 이야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정말 자신의 죄를 알고 그리스도를 나누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입을 닫는 것이 좋습니다.

 

20절입니다.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한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아비와 어미의 역할을 자녀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은 자기 아들을 몰렉의 신전에 제물로 바치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그 부모의 가르침을 배척하고 저주한다면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기에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지는 것입니다.

 

22절입니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이기도 하고 중점적으로 보려고 하는 구절입니다. 사람들이 속여서 재산을 취하려 하고 속히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군의 주가 되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너는 악을 갚겠다고 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가 너를 구원하신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말씀은 악인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바르게 알고 믿는다면 기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알지도 못하기에 기다리지 못하여 내가 일을 처리한다고 하다가 늘 그르칩니다.

 

사무엘상 13장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자신이 올 때 까지 일주일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적은 공격하여 오고 백성들은 흩어집니다. 사무엘은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이런 제사는 백성의 흩어짐을 면하기 위한 제사이기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아니라 사술(邪術)이 되는 것입니다. 백성이 흩어지고 적들이 쳐들어와도 사무엘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그럴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왕위가 길지 않을 것이라고 사무엘이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울이라면 기다렸을까요? 그러므로 저는 믿음을 기다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기다림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기에 믿음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잠언 24:29절을 봅니다.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율법에 의하면 동해보복법이 있습니다(24:20, 19:21).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은 타락한 인간의 악함으로 인한 과도한 복수를 막기 위한 법이지 이대로 갚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손해를 보고 모욕을 당하면 상대방을 배로 갚아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잠언서 24:29절에서는 동해보복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나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22절에서 여호와께서 갚아주시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호와께서 갚아주실 것을 믿고 기다릴 믿음이 없습니다. 나에게 해를 끼친 자들이 속히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빌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의 심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속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수들이 오히려 더 잘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악하다고 하여도 저 인간보다 악하지는 않는데 왜 이렇게 더 악한 자가 떵떵거리며 잘 살도록 내 버려두십니까? 하박국 선지자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에 하나님의 답변이 있습니다.

 

하박국 2:1~4절입니다.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1)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더딜지라도 기다려라 이 말씀이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우리의 눈에 아무른 증거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표적과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기다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의인의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믿음이 없기에 철야기도를 하고 새벽기도를 하고 금식기도를 하고 선불감사 기도도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속히 원수 갚아 달라는 것입니다. 내 살아생전에 내가 예수 믿는다고 조롱한 자들이 내 발 앞에 무릎 꿇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세상에서 힘이 있고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헌신 충성 봉사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예수님을 잘 못 믿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8절을 보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어느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습니다. 이런 재판장이 아무른 힘이 없는 과부가 나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합니다. 이런 재판장이 들어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런데 날마다 재판장 앞에서 일인 피케팅 시위하듯이 하고 있으니 내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지만 내가 귀찮아서 들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으로 오늘날 강청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과부가 정당한 내용이 아니라면 무고죄로 감옥에 넣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당한 억울함인데 해결할 수가 없어서 늘 악한 재판장에게 청한 것입니다. 이 말씀의 결론이 중요합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십니다. 기도해도 들어주지도 않으시고 억울할 일을 당하는데도 그저 주님만 바라보는 자가 있겠느냐고 합니다. 우리는 내가 힘이 없으면 사돈의 팔촌이라도 끌어들여서 나의 힘을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무엇을 기도하셨습니까?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기를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오니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한다고 하면서 아무른 원수 갚음이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이 임한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저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런 모습이 주님께 심판을 맡기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심판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악인이 형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의인이 고난당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만 사람을 평가합니다. 고난당하는 의인을 향하여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저런 꼴을 당한다고 손가락질 합니다. 이것이 시편 22편과 이사야 53장에 상세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악인이 형통하게 살아가니 사람들이 하는 말이 복을 받아서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편 73편에 악인의 형통으로 인하여 불평하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혀 실수가 없으십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결론이 내려짐을 믿는다면 지금 나를 억울하게 하는 원수가 있다고 하여도 주님께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받은 자는 자신도 오래 참습니다.

 

베드로후서 3:8~9절입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의 강림이 없다며 먹고 마시며 사고파는 일에 인생을 전부 건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심판을 받은 것처럼 지금도 주의 재림이 없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자들이 거의 대다수입니다. 문제는 교회를 다니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들도 이러하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성경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재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오늘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15절에서 주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고 합니다. 내가 원수 갚으려고 나설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의 긍휼을 입어야 하는 오래 참으심의 대상임을 알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는 주님께 맡기고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