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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7:20~27 만족함이 없는 곳 2018. 7. 4

 

20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24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5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26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27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의 음식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지난주일 오전에 빌립보서에서 자족함을 배웠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자족을 배우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무덥고 장마철에 태풍까지 겹쳐지니 불쾌지수가 높아집니다. 이럴 때에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다. 바울사도가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함을 배웠다는 말씀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삼일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도 원망하고,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도 원망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도 원망하다가 나라가 망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이 자족을 배우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 앞에서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물론 이렇게 되는 것이 전적인 은혜입니다- 자족을 배우는 학교에 입학 한 것과 같습니다. 이런 자를 새 사람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게 됩니다(3:11). 여기에는 어떤 차별이 없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만유시기에(3:12). 모두가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20절은 만족함이 없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스올과 아바돈은 같은 뜻입니다. 죽은 자들이 가는 곳 또는 죽음의 자리를 말합니다.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지옥과 저승은 아무리 들어가도 한이 없듯이 사람의 욕심도 끝이 없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이 죽어갑니다. 아담으로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현재 세계 인구가 약 75억 명이 넘습니다. 이 인구들이 백년 안에 거의 다 죽습니다. 그런데도 무덤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눈과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만족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이 만족함이 없다는 것을 보기 전에 먼저 간략하게나마 왜 죽는지의 이유를 보려고 합니다. 사람이 왜 죽습니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늙고 병들어서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그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무려 천년을 가까이 살아도 그들은 죽었더라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런데도 특이하게 에녹은 365세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를 죽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인간들은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이유를 몰라도 죽어갑니다.

 

로마서 5:12~13절입니다.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릅니다. 개인주의로 철저하게 무장된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만 우리가 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자들이기에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먹고 태어난 자들이라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4~15절을 봅니다.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아담 이후로 모든 자들이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죽어간 이유를 율법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를 밝히면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담 안에서 사망이 왕 노릇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이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모형이라는 말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자가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이 왕 노릇하기에 산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 역사 속에서는 모든 인류의 죽음이 계속됩니다. 겉으로 죽음이 같아 보여도 두 종류의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죽는 자와 약속 밖에서 죽는 자가 다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22:32).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는 살아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두 종류인데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 자인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죽음과 그리스도 밖의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죽는 죽음은 복된 죽음입니다(14:13). 이들은 부활과 생명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 보겠습니다.

 

에스겔 32:26~27절입니다. “26 거기에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27 그들이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가운데에 이미 엎드러진 용사와 함께 누운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 용사들은 다 무기를 가지고 스올에 내려가서 자기의 칼을 베개로 삼았으니 그 백골이 자기 죄악을 졌음이여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 있던 자로다

 

거기란 죽음의 자리를 말합니다. 이 죽음의 자리에 들어간 자들을 17~32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유명한 여자들과(18) 극히 아름다운 자들도 이곳으로 내려갑니다(19). 그 당시 주변의 나라들을 두렵게 만들던 용사들이 그곳에 다 들어갑니다.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앗수르와 엘림의 용사들, 메섹과 두발의 용사들이 애굽의 바로 왕과 함께 가 있는 곳입니다. 생존 세상에서 사람들은 두렵게 하는 자들은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여도 그것조차 죽음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만족함이 없는 곳이 죽음의 자리임을 보았습니다. 그 죽음의 자리에 어떤 자들이 가는 것인지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죽음의 자리가 족함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의 눈이 만족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의 눈이 만족이 없다는 것은 단지 눈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문제이고 사람의 자리라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속담도 바다는 채울 수 있어도 사람 마음의 욕심은 채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만족을 모르는 것에 대하여 몇 곳을 봅니다.

 

잠언 30:15~16절입니다. “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6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거머리를 말하면서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것 서너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스올입니다. 스올은 지금까지 본 죽음의 자리입니다. 이 죽음의 자리가 족하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불입니다. 이러한 것들도 족함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전도서 1:8절입니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우리의 눈이 보아도 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아름답고 좋은 것을 아무리 보아도 만족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진 아담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1:15) 말씀을 모르는 세상이기에 끊임없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지만 결코 족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전도서 4:8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는 사람이 수고를 끝없이 하여 부요를 가졌지만 그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않고 계속하여 수고를 하는 것은 눈에 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불행한 노고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유행하는 말은 소,,행입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도 곧 식상해지기에 인간은 늘 불만으로 살아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레미야 2: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기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자족하고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들은 헛된 일에 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헛된 줄 모르고 달려갑니다. 그렇게 달려가서 무엇을 성취하였다고 하면서 든든히 섰다고 할 그 때에도 실로 허사입니다(39:5,6).

 

본문 21절입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사람됨을 달아보는 것은 칭찬을 해 보면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칭찬은 남으로 하여금 하게하고 자기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27:2). 그런데 사람이 칭찬받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매슬로우의 욕망이론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랑거리를 만들어내어서 칭찬을 받고 싶어 합니다.

 

시편 49:6~9절입니다.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생수의 근원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헛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10~13절입니다. “10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1 그러나 그들의 속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어리석은 자의 종말입니다.

 

14~15절입니다.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여기서 스올이 나옵니다. 무덤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 들어가는 자들이 무엇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지 성경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십니다. 그렇게 건져내어지는 과정이 고난이라는 형태로 옵니다.

 

16~20절입니다.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편 49편은 오늘 본문 20절과 21절의 해석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연결하여 본 성경의 구절들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듯이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방금까지 찾아본 여러 성경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받아들여지고 또 그렇게 삶에서 나타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말은 스스로 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이 전혀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귓등으로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라면 아직도 미련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지혜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절구에 넣고 찧어도 그 미련함이 벗겨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미련한 사람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이런 말씀들이 우리에게 실재가 됩니다. 우선 이런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강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 우리를 지혜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자족하면서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본문 23~27절입니다. “봉독 이 당시 문화에서 목축을 말하지만 오늘날로 번역하면 자신의 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고 마음을 두라는 것입니다. 자족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재물과 면류관을 추구한다면 그런 것이 어찌 대대에 있겠느냐고 합니다. 자신의 일에 자족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풀을 벤 후에 새로 움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것입니다. 비가 오고 풀이 자라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은총을 보는 것입니다.

 

시편 104:13~14절입니다. “13 그가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주께서 하시는 일의 결실이 땅을 만족시켜 주는도다 14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농사짓고 목축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타락한 인생은 감사를 모릅니다.

 

이어지는 24~30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2)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6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3)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28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바다의 괴물로 알려진 리워야단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손을 펴서 주시면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시면 그들의 떨게 됩니다.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시면 죽어 먼지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풀을 베고 나면 움이 돋아나는 것처럼 죽은 것들도 주님께서 그 영을 보내시면 새롭게 창조해 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만족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37~39절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면서 늘 목말라 하는 우리들에게 끊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생명수를 자신의 죽으심으로 성령을 통하여 값없이 공급하시는 그 주님을 믿고 사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만족합니다. 지금 그렇지 못하다고 하여도 결국 우리의 인생길에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한다는 고백이 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자리, 내가 내 자신으로부터도 도망가고 싶은 그 자리에도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 뿐 아니라 죽음의 자리에까지 함께 하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만족이 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만족함이 없는 곳이 지옥이며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 지금 천국을 맛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은혜를 우리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시편 17:15절입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