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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12~18 바람을 잡으려는 것 2018. 11. 7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서 세 번째 말씀을 봅니다. 첫 번째 제목은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씀이었고 두 번째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도 같이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해 아래 행하는 모든 일들이 모두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 바람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이 단어는 영, 영혼, 호흡, 입 기운, , 공기, 바람, 정신, 마음, 의심, 생기, 폭풍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오늘 본문은 일반적인 바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여 헛됨과 연결하여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단어 하나를 봐도 그 문맥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봐야 합니다.

 

본문 12~13절입니다.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솔로몬 자신을 말합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어떠한지도 앞에서 보았습니다. 최고의 지혜를 받은 자가 대충 살펴본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고 살펴보니 이것은 괴로운 것이라고 합니다. 해 아래 사는 인생들이 전도자처럼 연구하고 대단한 지혜로 살펴보지 않아도 사는 것이 괴롭고 수고로운 것을 압니다.

 

몇 년 전에 동영상에서 어린 아이에게 산수를 가르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아이가 산수 문제를 풀다가 어려우니 하는 말이 내가 이래 가지고는 힘들어서 못 산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교회의 초등학생도 사는 것이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드는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 철학과 종교도 괴로움과 허무함을 말합니다.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다 찾아서 연구를 합니다. 오늘날은 소..행을 말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사성제와 팔정도를 말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사성제란 고집멸도(苦集滅道)입니다. 괴로움이란 여러 가지 인연으로 오기에 이것을 끊는 방법이 도로서 멸하는 것입니다. 팔정도는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여덟 가지의 바른 수행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미 굽어진 인간의 상태를 인간의 힘으로 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구부러진 것을 바르게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인간의 힘으로는 괴로움과 수고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 13절입니다.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하늘 아래 행하는 모든 인생들의 일을 살펴보니 괴로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인생들이 이렇게 괴롭고 수고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철학이나 다른 종교에서는 그 원인을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미봉책(彌縫策)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왜 인생들이 이렇게 괴롭고 수고로운 일을 하지만 결국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무하다고 합니까?

 

창세기 3:17~19절입니다.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모든 인간이 한 아담 안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사는 동안 수고로움을 다한 후에 허무하게 흙으로 돌아감이 타락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연구해도 왜 인생이 괴롭고 허무한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철학으로도 종교로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이 원인을 잠시 보류해두고 인생의 가장 뛰어난 지혜로서 하늘 아래의 일들을 살펴본 것입니다. 그런 연구의 결론은 헛되다는 결론입니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헛되지 않는 일을 몰라서 이렇게 연구해 본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인생은 모든 세상의 좋다는 것을 다 해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알고 있습니다. 그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인생이 하고 있는 일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살펴보니 모두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는 말은 무언가 잡았다고 하는 순간 허무함이 더 크게 밀려오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다고 합니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말합니다. 세상의 강물과 길도 굽은 것을 바르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구부러진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미 경험해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서 말씀하셔도 하나님을 말씀을 듣지 않고 여자에게 빠진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구부러져 있기에 헛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모자란 것을 셀 수 없다는 것은 무언가 빠진 것이 있는데 이것을 인간이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부러진 것이나 모자라는 것이란 인간의 마음이 어떠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잠언에서 마음이 굽은 자에 대하여 네 번이나 나옵니다.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고(11:20) 멸시를 받고(12:8) 보응을 받고(14:4) 복을 얻지 못한다고(17:20) 합니다. 사람이 일평생 고생을 하고 수고롭게 살지만 결국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 마음이 굽어있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와 연결을 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마에 땀을 흘리며 살 것이라고 하신 후에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늘 아래의 세상인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다고 합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더 많이 얻었기에 자기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지혜와 비교하여 보았을 때에 자신이 더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연구하고 노력하여 다른 사람이 연구하지 않은 것 까지 알고자 하였습니다.

 

본문 17~18절입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세상의 지혜롭다는 자들이 연구하지 못한 새로운 분야까지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까지 알고자 하였지만 그런 것도 결국은 바람은 잡는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연구하고 지혜가 많아지니 번뇌도 많아진다고 한 것입니다. 지식을 더하니 근심도 더하여 진다고 합니다. 아는 게 병이라는 말처럼 지혜와 지식을 구하고 보니 번뇌와 근심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것들이 바람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본문에서 바람을 잡는 것에 대한 내용이 열 번이나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번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전체적으로 내용만 읽어보겠습니다. 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2: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2: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4: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4:1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5:16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6:9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8:8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하늘 아래 인생의 수고들이 이렇게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26:17~18절입니다. “17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 18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여인이 잉태하여 해산을 하는 것은 죽음과 같은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 해산을 하였는데 그 같은 것이 바람과 같아서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세계의 거민이 출산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낳는 해산은 주님만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호세아 8:4~7절입니다. “4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5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내 진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그들이 어느 때에야 무죄하겠느냐 6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7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북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고 지도자를 세우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한 왕과 지도자들이 아니라 백성들이 원하는 자를 세운 것입니다.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처럼 북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고 지도자를 세운 것은 자신들을 구원하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온갖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한 것은 그들이 구원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둡니다.


호세아 12:1절입니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는 모습을 여기서는 에브라함이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라 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한다고 합니다. 그 모습 중의 하나가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에 기름을 보내는 곳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였지만 결국은 앗수르에 멸망합니다. 이것이 바람을 심고 바람을 먹은 결과 광풍을 거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잡기 위하여 이렇게 살아왔습니까? 어려서부터 가진 우리 마음의 소원들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붙들었습니까? 그것을 붙드는 순간 만족은 잠시이지만 허무는 더 크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또 다시 다른 것을 잡기 위하여 달려갑니다. 흔히 파랑새를 잡는다거나 무지개를 잡는다는 식으로 자신의 꿈과 비전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과연 생명을 주는 것입니까?

 

지난주일 오후에 2남전도회 모임이 있어서 참석했습니다. 어떤 분이 질문이었습니다. ‘하게 하면 하고 하지 못하게 하면 안하면 되고라는 말을 듣고서 어떤 일을 추진해야 하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하면 아무 일도 못하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전도서를 들으면 이런 질문이 더욱 많이 나올 것입니다. 제가 다른 분들이 대답을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한 분은 바울의 예를 들어서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한분은 생존에 관한 일과 생명의 관한 일을 구분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7~8절입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여기서 두 가지 얻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이러함에도 생존을 위하여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가 다 죽을 때 까지 이마에 땀을 흘리도록 노력하여야 얻습니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에게 동일하게 햇빛과 비를 주십니다. 교회 다니느라고 농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교회 다니지 않고 농사를 잘 돌본 사람보다 수확이 적은 것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렇게 안 보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심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거둡니다. 성령으로 심는 것은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인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심으면 영생을 거둔다는 말은 주님께서 성령을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셔야 성령으로 심고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람을 잡는 헛된 삶에서 참으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생명에 눈 뜨게 되고 그 생명 얻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 생명 얻는 일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생존의 일들도 마땅히 감당을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삶의 방향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향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헛된 바람이 아니라 생명과 썩지 아니할 복음을 추구할 것입니다(딤후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