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녹음하지 못하였습니다)

요엘 2:12-17 이제라도 돌아오라 2010. 10. 27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이방의 조롱거리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그동안 기도에 대하여 많은 본문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조차 하나님 앞에 가증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평소에는 우상 앞에 빌다가 위기만 오면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하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시기 에도 염증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선지자가 일방적인 여호와의 말씀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서려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도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심판입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구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12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에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고 합니다.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물론 기도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마음을 다하여 주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왜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하시는지 그 배경과 왜 그렇게 돌아오라고 하시는지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하시는 그 배경은 1장에 나옵니다. 재앙으로 인하여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재앙은 두 가지입니다. 자연적인 재앙과 적의 침략입니다. 첫째 재앙은 메뚜기 재앙입니다. 무려 네 번이나 메뚜기 떼가 지나갑니다. 팟종이, 늣, 느치, 황충이 지나가니 아예 푸른 것이라고는 남기지 않습니다. 또 기근으로 인하여 먹을 양식이 없고 풀이 없어서 짐승들조차 먹을 것이 없습니다. 씨앗 들은 땅 속에서 썩어갑니다. 둘째 재앙은 적들이 쳐들어와서 포도나무를 하얗게 벗겨버립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 소제와 번제를 드릴 제물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신명기 28장의 언약대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소망이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13-14절입니다. “13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회개하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 소망입니다. 여호와께서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주께로 돌이키지 아니하면 무서운 심판의 날이 임하는 것입니다. 두렵고 무서운 심판의 날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합니다. 2:1-11절을 봅니다. “봉독” 나팔을 불어 경고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무섭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에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이 구원의 날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날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의 날인 것입니다. 아모스 5:18-27절을 봅니다. “봉독” 사모하는 여호와의 날이 심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번제나 소제를 드려도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정의와 공의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여호와의 날 크고 두렵고 무서운 날을 말씀하시면서 요엘서는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요엘 2:14절을 봅니다. “봉독” 재앙으로 인하여 소제와 번제도 드리지 못하였는데 회개하고 돌아가면 소제와 번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간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주께서 받아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아가면 혹시 받아주시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이것이 회개한 자의 모습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왔으니 당연히 받아주어야 한다는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아들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자신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기에 아들의 자격이 없고 단지 종의 하나라도 여겨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잃어버린 아들을 아들로 맞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은 여호와 자기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요엘서 2:17절입니다. “봉독” 여호와의 이름이 조롱을 받지 않기 위하여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27절도 봅니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시며 다른 이가 없음을 알게 하십니다. 결국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한 것이지만 그로 인하여 자기 백성도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오라고 하시면서 회개하고 돌아오면 재앙을 없이하여 주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이 2:18-27절입니다. “봉독”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먹고 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소제와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적들이 물러가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오게 하심으로 들의 짐승들까지 기갈을 면하게 됩니다. 마당에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포도주와 기름이 넘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회개하고 돌아오면 부자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동안 먹을 것도 없었는데 이제 일용할 양식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을 자꾸만 부자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또 다른 탐욕을 일으키는 것이기에 회개조차 자기 탐심을 이루기 위하여 악용되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에 유일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개하고 돌아가는 것입니까? 15-16절입니다. “봉독” 남녀노소 막론하고 심지어 신혼부부가 첫날밤도 보내지도 않고 나와서 회개하며 기도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렀을 지라도 이제라도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 회개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13절을 보시면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합니다. 가장 큰 회개의 표가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재를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옷을 찢을 수는 있지만 마음을 어떻게 찢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막막해 집니다. 옷을 찢고 금식도 할 수 있습니다. 애통하며 부르짖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어떻게 찢는 것입니까? 28-31절입니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하나님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야 장래일과 꿈과 이상을 말하고 보게 될 것입니다. 장래 일과 꿈과 이상이란 여호와의 날에 대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란 심판과 구원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날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었습니다. 이날이 심판이 날이 된 것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에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온 세상에 다시 임하실 주님의 날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상관없이 다 주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4:29-31절입니다.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이 흔들린다는 것은 그동안 사람들이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것들의 다 흔들리고 무너져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임하기 전에 주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을 찢고 주께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요엘 선지자의 주의 날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날에 대한 것을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증거 합니다. 사도행전 2:14-21절입니다. “봉독” 성령이 임한 제자들을 보고서 사람들이 술에 취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의 예연대로 성령이 임하였다고 합니다. 말세에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줄 것의 성취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증거 한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자들 가운데 마음이 찔린 자들이 형제들아 어떻게 하여야겠느냐고 합니다. 그때 대답이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주 예수를 믿는 것이 바로 마음을 찢고 주께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가 주인이었습니다. 교회를 이렇게 오래 다녀도 우리의 주인이 여전히 우리 자신이라면 이제라도 마음을 찢고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금식하며 회개하며 세상을 사랑한 것을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고삼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당연히 기도해야 합니다. 눈앞에 닥친 수능보다 더 중요한 준비가 회개하고 마음을 찢고 주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기 전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 않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마음으로 부릅니까? 마음을 찢고 부르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주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한번 돌아봅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부르지는 않습니까? 나의 필요나 채우기 위하여 부르지는 않습니까? 오늘 새벽기도시간에 욥의 부르짖음을 보았습니다. 욥이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가난한 자들이 부르짖을 때에 그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이런 욥이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부르짖은 까마귀 새끼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문에 욥은 입을 닫고 회개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요엘서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이라도 주께로 돌아오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의 날이 곧 임합니다. 우리가 믿던 모든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그 무너져 내릴 것들이 지금 무너져 내리는 것에 대하여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고 기대한 것들이 영원하지 아니한 것들은 주의 날에 다 무너져 내립니다. 성도는 미리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인데 알지 못한다면 수시로 알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구원은 세상의 무너질 것들에서 구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구원의 실체가 우리 주 예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온 세상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 날을 사모하면서 지금이라도 마음을 찢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