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말라기 1:6-10 성전 문을 닫을 자 2010. 11. 17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성경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10절을 봅니다. 내 제단에서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하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전 문을 닫아 버리면 제사와 기도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사와 기도는 다 속죄의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문이 닫혀 진다는 것은 더 이상 속죄의 길이 없게 됩니다. 속죄의 길이 없다면 남은 것은 심판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에게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을 가득하게 채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에게 제사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였으니 혼합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은 언약의 저주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성전이 파괴되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러면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제사와 기도가 회복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형식적인 제사만 하는 수 없이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린 것입니다. 12-14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다고 하면서 경멸이 여길 것이라고 합니다.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 치며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기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6절입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이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여야 하고 또 백성들로 하여금 경외하도록 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전하여야 합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명한 것들을 어기면 대속의 제사를 드리고 대속의 기도를 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가 내 이름을 멸시하였다고 하니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느냐고 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모르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모르는지 아들은 그 아버지를 알고,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는데 하나님이 아버지인데도 공경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인데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그 증거는 더러운 떡을 제단에 드립니다. 제단에 드리는 떡은 처음 익은 곡식가루로 만들어야 하며 매주 드리는 것은 더운 것을 드리고 식은 것은 물려내서 제사장들이 먹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먹다 남은 것을 드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 정도로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이 여긴 것입니다.

 

제물은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하는데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바칩니다. 이런 것들은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고 합니다. 이 정도로 여호와의 단을 경멸이 여기는 자들인 제사장들이었습니다. 9절을 봅니다. 이런데도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면 내가 너희 중에 하나인들 받겠느냐고 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이미 그들이 여호와의 단을 더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포로 이전이나 이후나 같습니다.

 

이사야 1:11-15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이러므로 15절에서 기도를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7:1-11절입니다. “봉독” 자주 본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에 엄연히 서 있는 성전으로 제사하러 오는 자들을 향하여 이곳이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까? 평소의 삶은 도둑질 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고, 바알에게 분향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전에 나아와서는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헛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다시 이런 짓들을 하러가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잘못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오늘도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곳을 향하여 도둑의 소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도 교회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 예레미야가 이렇게 경고를 하여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성전을 향하여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회개하고 기도하고 돌아와도 인간은 달라지지가 않습니다. 70년 동안 제사도 드리지 못하고 성전에서 기도도 하지 못하였다면 이제 정신을 차려서 재건된 성전에서 제대로 제사와 기도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전이 재건이 되었을 당시에 어느 정도는 감격이 있었겠지만 곧 지루하고 귀찮은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제물도 쓰레기 같은 것을 드린 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한 것이 제사장들이 들을 책망이라면 여호와의 것을 도둑질 했다는 것은 백성들이 들을 책망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가 나의 것을 도둑질 하였다고 하니 우리가 언제 도둑질 하였느냐고 합니다. 그 도둑질이란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그러니 성전이 있어도 제물이 없어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이방인과의 혼인문제도 있었고,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악을 행하는 자를 여호와께서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총체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하고 더럽히고 괴롭히면서도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봅시다.

 

3:1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가 이러함에도 그들이 주의 날을 기다리고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날이란 여호와께서 주의 사자를 보내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언약의 사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날로 알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이렇게 엉터리처럼 살면서도 주님의 날이 임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물론 주의 날을 기다리지도 않지만 말로는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삶은 전혀 주의 날을 기다리지 않고 주의 이름을 멸시하고 주를 괴롭게 하고 주의 것을 도둑질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구한 주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됩니다. 3:5절입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점치는 자, 간음 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품꾼의 삯을 억울하게 하는 자,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 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나온 목록들이 다 주의 날을 기다리는 자세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홀로 살아남으려고 하는 모습들입니다. 말라기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됩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날이 오히려 구원의 날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3:2-4절입니다. 언약의 사자가 임하면 아무도 능히 그 앞에 설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언약의 사자가 정결하게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이 불순물을 제거하고 더러운 것을 정결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되고 예루살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여호와께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여호와의 날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진 것입니까?

 

마가복음 11:15-18절입니다.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ㄱ)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ㄴ)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사 56:7렘 7:11)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이사야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과 평행구절인 요한복은 2:19-22절입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말라기서에서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다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건물로 된 성전의 문을 닫으신 정도가 아니라 아예 허물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제는 제물을 드리거나 기도를 하는 곳이 지정된 공간의 성전이라는 곳은 없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맞이할 수가 없었던 것이 구약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의 날을 기다린다면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한 사람들이 정작 성전이 되시고 제물이 되시고 기도가 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언약의 사자가 오시기 전에 구약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주의 날을 기다리는 자들이 주의 날이 임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말라기 4:5-6절입니다.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주의 날을 사모하며 기다린다는 것은 헛된 제물을 바치고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로 그 땅을 친다고 합니다.

 

이렇게 돌이키는 일을 여호와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와야 메시아가 오는 것으로 유대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10-14, 17:10-13절을 보시면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가 세례요한임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자가 그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이 외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주의 날을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는 왜 그리 성전이 많은지 모릅니다. 다른 곳에 가면 안 됩니다. 오직 자기들이 세운 어마어마한 성전에만 와야 하고, 그곳에만 제물을 바쳐야 하고, 그곳에서만 기도하여야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닫아버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헐어버린 건물들을 성전이라고 붙들고 있으면서 예수님 다시 오시면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더욱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는 탐욕에 사로잡힌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돌이켜 달라고 간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