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다니엘 9:1-7 다니엘의 기도 2010. 10. 20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 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다니엘의 기도가 19절까지입니다. 기도 후에 7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70이레에 대한 계시시를 또 받습니다. 우선 다니엘의 기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바벨론의 고관이 되어 메대 바사제국에 이르기 까지 고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움직이시는 분이 바벨론의 신이 아니라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1절을 봅니다. 다리오가 갈대아의 왕이 된 그 첫해에 다니엘이 책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책이란 예레미야의 예언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5:1-14절을 봅니다. “봉독” 11절에서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1-10절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냈지만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면 약속의 땅에서 살 것이라고 하여도 그들은 우상을 섬기며 경배하였기에 멸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보내어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포로기간이 70년일 것이라는 이 말씀을 다니엘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발을 지금 받는 것처럼 회개하는 것입니다. 1-19절까지 회개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기도하는 것이지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기도하면 자기의 소원만 아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에 이제 기도할 것만 남은 것입니다.

 

3-6절입니다.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가장 큰 슬픔을 표하는 모습입니다. 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는지 그리고 70년이라는 기간에 대하여 깨달았다는 것은 자기들과 자기들의 조상이 다 죄를 범하였기 때문임을 알기에 자복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역대하 36:21절입니다. “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안식일은 지켰지만 안식년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희년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종의 자유도, 땅의 쉼도 없었기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간 땅이 안식을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가 됩니다.

 

이제 70년 만에 그치리라는 것을 알고서 기도하는 것도 자신들이 범죄 하였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를 베푸시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포로로 잡혀온 것은 이미 범죄하고 패역하고 행악하고 반역하여 주의 규례와 법도를 떠났다고 합니다.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7절을 봅니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기에 하나님의 공의대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까? 우리가 수치를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고백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습니까? 이런 저런 변명을 들이대면서 수치를 면하여 하여 달라고만 기도하지 않습니까?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버림받았을 때에 사무엘에게 매달린 것은 자기가 백성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여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공의가 주께로 돌아가고 우리가 수치를 당함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8절을 봅니다.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끝에서 어떻게 간구합니까? ‘마는’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하지만 9절을 보시면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마는’이라는 말은 문맥상 넣은 말인데 다른 번역을 보면 9절을 이렇게 봅니다. “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용서하여 주셨으나, 우리는 하나님께 반역하였습니다.” 얼마나 자주 용서하셨는지를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또 반역하였다는 것입니다.

 

10-14절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저주가 임한 것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겠다고 맹세하여 언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12절을 보시면 주께서 이렇게 말씀대로 이루신 것은 온 천하에서 예루살렘과 같은 일이 없다고 합니다. 다른 신들은 우상이라서 이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재앙을 보고서도 죄악을 떠나고 진리를 깨달아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4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이 재앙을 내리셨다고 합니다.

 

15절을 봅니다. 지금까지 회개는 우리가 수치를 당하고 저주를 받음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15절에서 무엇을 의지하고 기도하는가 하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께 범죄하고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온 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진 일이며 그 언약대로 이루셨기에 하나님께서 명성을 얻으셨고 또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명성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가 자기 신을 배신하였다고 이렇게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사사시대에 나오미의 가족이 살기 위하여 모압으로 이민을 갔다가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을 위하여 며느리를 얻었는데 두 아들마저 죽고 과부만 세 명이 남았습니다. 이때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오면서 며느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기에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너희는 고향으로 가서 재혼하라고 합니다. 둘째 며느리는 돌아가는데 첫째 며느리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릅니다.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 되고 그 백성이 자기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방 여인 룻이 나오미를 치시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16-19절입니다. 주여 구하옵나니, 심판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고 또 주의 공의도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수치를 계속 당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러나 주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 자신을 위하여 용서 하여 달라고 합니다. 19절을 봅니다.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가 된다고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된 예루살렘이 이렇게 황폐화 되어 버리면 주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여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전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크신 긍휼을 의지하여 간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니 하나님의 응답이 임합니다. 20-27절에서 70이레에 대한 말씀이 주어집니다. 처음 기도의 시작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깨닫고 기도하였는데 구약에서 가장 난해하다는 70이레에 대한 응답이 주어진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과 다니엘의 기도대로 70년 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도 재건합니다만 그러나 70이레에 약속된 내용들은 언제 성취가 되느냐에 대하여 수많은 논란이 있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이 70이레에 대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입니다.

 

24절을 봅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70년 만에 돌아오는 것은 그림자로 보여주시는 것이며 참으로 주께로 돌아오는 것은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메시아가 오셔야 죄가 끝나고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고 환상과 예언이 응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구약의 환상과 예언이 응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니엘 2:31-36절을 봅니다. “봉독” 느부갓네살 왕이 꿈이 본 것을 다니엘이 알려주고 해석한 것입니다. 금, 은, 놋, 쇠, 쇠와 진흙으로 된 거대한 신상이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은 돌이 그 발을 쳐서 부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돌은 태산을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석이 36-45절까지입니다. 이 우상에 대하여 바벨론, 메대, 바사, 알렉산더 제국이 일어나고 그 뒤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70년의 기간과 연결하여 70이레까지 말씀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지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2천 년 전부터 다시 오실 그날까지 다 종말의 시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온 세상이 다 바벨론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정도가 아니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배척한 곳이기에 온 세상이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에서 18장에서 바벨론의 멸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백성아 그곳에서 나오라고 합니다. 온 세상이 다 바벨론인데 우리가 어디로 피하여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이 시대 다니엘의 기도입니다.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가증한 일들이 다 우리와 우리 조상의 범죄임을 인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한 것이 다 바벨론의 음녀가 주는 포도주에 취한 것입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자리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계속하여 바벨론의 영광입니다. 바벨론이 세상의 경제와 정치와 종교의 정점인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 G20 회의가 열린다고 집시법까지 개정하자고 하는 말들이 나옵니다. 이런 회의를 개최하니 국가의 격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단군 이래 가장 큰 행사라고 합니다. 저는 바벨론에 줄서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런 일들을 교계의 지도자들이 모여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만 바벨론이 아니라 교회도 바벨론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책을 두 권 샀습니다. 하나는 ‘바벨론에 사로잡힌 교회’인데 몇 마디만 소개합니다. “한국교회는 또 천민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을 정치적, 상업적 독점을 추구하는 계층화와 불로소득의 추구,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과시소비라고 정의한다면 한국교회 또한 대형교회 중심의 성장제일주의와 사제 주의적 계층형성, 사회와 다름없는 윤리적 타락상으로 인해 한국사회와 거의 구별됨이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교회가 바벨론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권은 미국사람의 책인데 ‘바벨탑에 갇힌 복음’입니다. 서평 한곳만 소개합니다. “부와 건강의 복음은 신자들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고, 또 누려야 하는 육체적 축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와는 다르다. 그들이 복음이 다른 이유는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의심스러운 교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번영신학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들도 거부한다. 그들은 십자가로 나아가지만 십자가를 지지는 않는다.” 이 두 책이 무엇을 말합니까? 지금 이 땅의 교회가 바벨론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기도는 오늘 우리의 기도여야 합니다. 우리가 범죄 하였나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맘몬을 섬겼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이 바벨론에서 돌이켜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