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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1:35~40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2014. 7. 9


3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36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8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은 하나넬 망대로부터 모퉁이 문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 측량줄이 곧게 가렙 언덕 밑에 이르고 고아로 돌아 40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모든 고지 곧 동쪽 마문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


지난주에 새 언약에 대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새 언약이 주어졌다는 것은 옛 언약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옛 언약을 지킬 능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없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옛 언약이라는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음을 알고 주셨다는 말이 됩니다. 왜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음을 아시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만들어 내시는 일은 인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홀로 이루어 내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 언약이 주어지기 430년 전에 아브라함 언약을 먼저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일방적인 은혜 언약입니다.


그러면 옛 언약이라고 말하는 율법을 주신 이유는 왜 인간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 언약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약속하신 분이 오시기까지 있는 것이며 율법의 기능은 모든 사람을 죄 아래에 가두어 두는 역할입니다. 이렇게 가두어 두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을 지난주에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다는 말은 인간의 자존심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싫은지 율법을 받은 자들이 그 약속하신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 정도로 인간은 자기 행위에 가치를 둡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 행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합니다. 그래서 동일한 시간을 일해도 2014년 기준으로 시급이 5210원인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시급이 6250만원으로 책정된 사람이 있습니다. 황제 노역으로 소문난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만이 아닙니다. 공산주의도 사람을 차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차별에는 사람의 행위를 가치로 매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자신이 전적으로 무능력한 자이기에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산다고 하면 누구나 배척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어 아예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오직 긍휼로 구원하여 내시기 위함이라는 이 복음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 안에서도 다시 차별이 일어납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 얻고 행함으로 상을 받자는 이야기는 식상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복음 안다는 사람들 안에서 누가 복음을 더 많이 더 잘 아는 가로 경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행위대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언약대로만 일하십니다.


새 언약의 내용을 다시 봅니다. 예레미야 31:33~34절입니다.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옛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뜨렸기에 새 언약을 맺으신다고 합니다. 새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의 언약을 마음에 기록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내시는데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알라고 하지 않아도 되며 악행을 사하시고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내용인데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내셨습니다.


히브리서 10:10~18절입니다.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새 언약의 완성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단번에 거룩함을 얻고 다시는 죄를 위하여 우리가 다른 제사를 드릴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마음에 기록이 되었기에 우리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완성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어떤 행위를 자기의 죄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갑니다. 이러한 자들은 주의 은혜의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거룩한 피만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10:28~29절입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 말씀이 새 언약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긴다면 이것이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심판의 기준은 오직 새 언약입니다. 유월절 밤에 어린 양의 피 아래 있다면 죽음의 천사가 넘어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어떤 정죄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관되게 언약으로 일해오신 최종 결론입니다.


이러한 언약은 이미 영원 전에 창세전에 언약하신 내용입니다. 영원 전에 창세전에 언약하신 내용이기에 당연히 사람과 언약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의 창조보다 하나님의 언약이 먼저입니다. 물론 창세전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 이루실 새 언약을 목표로 진행이 됩니다. 이것을 성경은 계시로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영화로우신 분이셨습니다(요17:5). 이러한 영광을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긴 자들로 보게 하시기 위하여 구원하십니다(요17:4).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란 우리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것입니다(엡1:4).


디모데후서 1:8~12절입니다.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사도가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인데 왜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 복음에는 인간의 자존심을 세워줄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전하면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복음이란 현재의 나를 더 멋있게 만들어주는 소식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복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아서 구원받는다는 소식이기에 정말로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음 보다 다른 복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은 이미 영원 전에 약속된 것입니다. 영원 전이기에 결코 우리의 뜻이나 행위가 아닙니다.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으로 고난을 받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가 약속하신 것을 끝까지 능히 지키신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31:35~36절을 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해를 낮의 빛으로 주시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시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를 소리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 모습을 말합니다. 그 창조의 법이 창조이래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낮과 밤이 변함없이 계속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법칙입니다. 이러한 창조의 질서가 폐하여진다면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에서 이런 약속을 주십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갈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게 이루어 내신다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37절입니다. 사람이 하늘을 측량할 수가 없고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가 없습니다. 낮과 밤의 질서를 인간이 어떻게 할 수가 없듯이 하늘과 땅을 사람이 그 근원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불가능한 일들을 조건으로 제시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약속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내신다는 자기 약속의 신실함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비유적인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언약에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인 율법을 폐하시고 새 언약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창세전에 언약한 그 새 언약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지 옛 언약을 주셨다가 사람들이 지키지 못하기에 차후대비책으로 새 언약을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38~40절입니다. 날이 이르면 예루살렘 성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성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건축될 때에 시체와 재의 골짜기까지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 된다고 합니다. 시체와 재의 골짜기란 힌놈의 골짜기로 예레미야 7장에서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사르던 곳입니다. 이러한 곳조차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성으로 거룩한 곳이 되며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영원히 거룩한 곳이 된다고 하십니다.


지금 나라가 망하여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성전이 파괴되며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이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 언약을 말씀하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실 것을 하늘과 땅의 창조 질서를 들어서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내시는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70년 만에 돌아오게 하시고 성전을 재건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재건된 성전과 성벽들은 예전의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학개 2:1~9절입니다. “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1)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는 자들은 지금도 이렇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조금 있으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와 만국을 진동시키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만국의 보배가 이르게 되고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의 성취를 메시아가 오시면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세계의 보배가 예루살렘으로 몰려들 것으로 보았습니다. 다른 예언서에도 그런 말씀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8-9절을 봅니다.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평강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약속이 과연 어떻게 성취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본문을 해석하기를 메시아가 오시면 온 세상의 영광과 보물이 다 예루살렘으로 올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의 영광과 보배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건물로 된 성전이 그렇게 될 것으로 믿고 기다렸기에 헤롯이 보수하고 증축한 성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시고 자신이 3일 만에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신 주님은 참으로 초라하신 분입니다. 학개서를 문자대로 보면 나중의 성전은 만국의 보배가 될 것이며 그 영광이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성전임을 누가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고린도후서 4:3-7절을 봅니다. “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보배와 영광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이 세상 신이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비추어 주셔야만 참된 보배를 알게 됩니다. 그 보배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학개서 2:7절에 각주가 있습니다. 각주를 보면 ‘사모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만국이 사모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학개서 2:5절에서 나의 언약한 말과 영이 함께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나 간에 한 가지를 말씀합니다. 그 한가지란 모든 언약의 완성이 새 언약이며 이 새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신 결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의지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다 이루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 언약의 완성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보는 자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질그릇에 담게 된 자들입니다. 질그릇을 자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 안의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들이 언약의 백성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