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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42:1~43:13    길을 묻다      2014. 11. 5

1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4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지난주에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한 혼돈의 시대를 보았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목사와 신부와 장성출신의 장로가 북한의 남침용 땅굴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땅굴이 전국에 바둑판처럼 연결되어 목포까지 뚫려 있다고 하는 영상을 어떤 분이 보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과 함께 어떤 기도한다는 목사는 12월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말도 합니다. 이런 영상을 카톡으로 보내면서 저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보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질문했습니다. 길을 물은 것이지요! 저의 답변은 이 세상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난리와 전쟁과 기근의 소식들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기도를 하였지만 그들의 갈망과는 달리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성전의 기구들은 바벨론의 노획물이 되었고 왕들로부터 수많은 사람들까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러한 때에 바벨론의 의하여 세워진 그다랴를 이스마엘이 죽입니다. 남은 백성을 암몬으로 끌고 가다가 요하난에 의하여 이스마엘은 암몬으로 도망가고 그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피난가려고 게롯김함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뜻을 묻습니다. 방금 함께 읽은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는 질문입니다. 

42:1~4절입니다. 애굽으로 가려다가 게롯김함에서 예레미야에게 물어 보는 이유는 요하난의 주장을 다른 군대 지휘관들에 의하여 저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요하난의 이름보다 군대 지휘관들이 먼저 거론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모두 예레미야에게 와서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작은 남은무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여주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기도하여 숨김없이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예레미야의 승낙에 기도요청을 한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봅니다. 

42:5~6절입니다.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예레미야기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오면 그 모든 말씀을 다 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모든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것을 여호와를 증인으로 세웁니다. 어느 정도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각오인지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예레미야에게 기도요청을 하면서 하는 말이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 막론하고 순종할 것이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만 보면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이 이제야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참 선지자인줄 알고 여호와께 물어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의 평안을 전한 자들이 거짓 선지자이미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증거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자지에게 물어보면서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면 자신들이 다 순종하겠다는 신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들이 이렇게 여호와의 뜻을 묻고 자기들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 순종하겠다고 하였지만 이미 그들의 마음에는 확정하고 있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애굽으로 피난 가는 것이 그들에게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품고 기도요청을 한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저에게도 무엇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무엇을 몰라서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질문은 자신이 좋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추인 받고 싶어 하는 질문들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한 청년이 다단계 일을 한다고 해서 말렸습니다. 그러자 안색이 변하면서 그 일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목사에게 물어보려고 했습니까? 자기 뜻을 인정받고 싶은 것입니다. 결국 고집하여 그 일을 하다가 빚 갚느라 몇 년을 고생했습니다. 

42:7~12절입니다. “7 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8 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과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부르고 9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이렇게 이르니라 10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12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십일 후에 응답이 왔는데 애굽으로 가지 말고 이 땅에 머물러 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을 아시기에 여호와의 말씀에 복종하기 않고 애굽으로 가면 어떻게 될지를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15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16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17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바벨론의 왕이 무서워 애굽으로 도망가면 그곳까지 바벨론의 칼을 보내실 뿐만 아니라 기근과 전염병까지 보내셔서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1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 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 19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20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2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 자들에게 애굽으로 피난 가지 말고 이 땅에 머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들은 애굽으로 가려고 고집할 것을 아시기에 애굽으로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말씀하십니다. 무서운 심판으로 그곳에서 다 죽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도를 요청할 때에 자기들에게 좋든지 아니 좋든지 간에 순종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절대로 순종하지 않을 것이면서도 이렇게 말한 것은 너희 마음을 속인 것이라고 20절에서 말씀합니다. 이들이 마음이 속았다는 것은 자기들의 마음을 자기들이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자들이 어떤 모습입니까?

43:1~3절입니다. “1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신 이 모든 말씀을 말하기를 마치니 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3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을 전한 예레미야를 거짓말 한다고 하면서 바룩이 너를 부추겨 우리를 갈대아인에게 넘기려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예레미아를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속아있기 때문입니다. 42:20절에서 너희 마음을 속였다고 합니다. 너희 마음을 속인 것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자신의 마음이 속는 줄을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물을 때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자신들은 어떤 말씀이라도 반드시 순종할 것이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에 싫은 답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로 돌려버리는 것이 그들의 마음이 속은 것입니다. 이들의 행동이 어떻게 나옵니까? 

43:4~5절입니다. “4 이에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과 모든 백성이 유다 땅에 살라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이 유다의 남은 자 곧 쫓겨났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유다 땅에 살려 하여 돌아온 자 6 곧 남자와 여자와 유아와 왕의 딸들과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맡겨 둔 모든 사람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거느리고 7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함이러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답을 얻는 결과가 이러합니다. 이것이 스스로 속고 있는 모습입니다. 결국 예레미야도 이들에 의하여 함께 애굽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애굽에 가면 바벨론의 위협을 피할 수가 있습니까? 

42:13~14절을 다시 봅니다.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애굽에 가면 전쟁도 보이지 않고 나팔소리도 들리지 않고 양식의 궁핍함도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피하여 가면 그 길이 이미 망하는 길입니다. 

그 이유를 신명기 17:16절에서 봅니다.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이스라엘에 임금을 세우려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로 세워야 하며 임금은 병마와 아내와 은금을 많이 두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세상 왕의 힘은 이것으로 가늠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세상의 힘을 보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주는 자여야 합니다. 그래서 병마를 얻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합니다. 애굽에서 빠져나왔기에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는 세상이나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길은 죽는 것처럼 보이고 세상의 힘을 가져야 사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속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3:8~13절입니다. “8 다바네스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유다 사람의 눈 앞에서 네 손으로 큰 돌 여러 개를 가져다가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의 궁전 대문의 벽돌로 쌓은 축대에 진흙으로 1)감추라 10 그리고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종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불러오리니 그가 그의 왕좌를 내가 감추게 한 이 돌들 위에 놓고 또 그 화려한 큰 장막을 그 위에 치리라 11 그가 와서 애굽 땅을 치고 죽일 자는 죽이고 사로잡을 자는 사로잡고 칼로 칠자는 칼로 칠 것이라 12 내가 애굽 신들의 신당들을 불지르리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불사르며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요 목자가 그의 몸에 옷을 두름 같이 애굽 땅을 자기 몸에 두르고 평안히 그 곳을 떠날 것이며 13 그가 또 애굽 땅 벧세메스의 석상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신당들을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요하난이 남은 자들을 이끌어 애굽까지 피난 왔습니다. 애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예레미야가 큰 돌 여러 개를 가져다가 바로 왕의 궁전 대문의 벽돌로 쌓은 축대에 진흙으로 감추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 감추게 한 이 돌들 위에 그의 왕좌를 놓고 그 화려하고 큰 장막을 칠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와서 애굽을 마음껏 유린 하며 그들의 신상들을 깨뜨리고 불사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고 애굽에게 피난가서 살려고 하였기에 그 애굽을 하나님께서 심판해 버리십니다. 이 말씀대로 바벨론이 애굽까지 쳐들어가서 승리하게 됩니다. 

에스겔 29:1~16절입니다. “1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온 애굽으로 얼굴을 향하고 예언하라 3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4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너의 강의 고기가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너의 강들 가운데에서 끌어내고 5 너와 너의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으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었음이라 6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7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칼이 네게 임하게 하여 네게서 사람과 짐승을 끊은즉 9 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10 그러므로 내가 너와 네 강들을 쳐서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 황폐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리니 11 그 가운데로 사람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며 짐승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고 거주하는 사람이 없이 사십 년이 지날지라 12 내가 애굽 땅을 황폐한 나라들 같이 황폐하게 하며 애굽 성읍도 사막이 된 나라들의 성읍 같이 사십 년 동안 황폐하게 하고 애굽 사람들은 각국 가운데로 흩으며 여러 민족 가운데로 헤치리라 1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십 년 끝에 내가 만민 중에 흩은 애굽 사람을 다시 모아 내되 14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켜 바드로스 땅 곧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에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15 나라 가운데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나라들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나라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 16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선지자가 애굽의 멸망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애굽이 스스로 신이 되어 있는 모습을 압축하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바로 왕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일강을 내 것이라고 하면서 내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만을 꺾어버리는 것이 하나님 심판입니다. 바로 왕을 한 마리의 악어로 보시고 그를 갈고리에 꿰어 그를 사막에 던져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바벨론에 의하여 침략을 받고 40년 만에 겨우 회복이 되지만 아주 미약한 나라가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 교만함입니다. 또 하나는 다시는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지 못하도록 미약한 나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면 그런 것들을 다 무너뜨려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이 눈에 보이는 세상도 다 불살라 버리실 것입니다. 더 이상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묻습니다. 어디로 가야 옳은 길인지 묻습니다. 그런데 그 옳다는 가치판단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에 둡니다. 그러므로 길을 묻는 자들에게 답해줄 말은 살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할 일입니다. 모두가 살려고 길을 묻지 죽기 위하여 길을 묻는 자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살려고 길을 묻는 것이 바로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그런데 속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을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만 길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길은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기에 우리의 길은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는 살려고 하는 자가 보면 죽음의 형틀입니다. 그러나 주의 은혜를 입은 자는 그 죽음의 길이 생명의 길임을 압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의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우주의 중심만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존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선악과의 유혹에 넘어갈 때에 이미 들어온 생각입니다. 이 유혹을 옛 뱀 곧 마귀 사단이라고 하는 유혹자가 속여 버렸습니다. 이 유혹에 넘어간 자들은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이 존재하여야 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과 이 모든 것을 만든 신조차도 자신을 위하여 있어야 진리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우리의 모습을 잠시만 살펴보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설교시작부분에 대한민국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에 우리가 왜 관심을 가집니까? 내가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의 내전과 그들의 상황을 아십니까? 평균 수명 35세이며 인구대비 난민이 가장 많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먹으며 흙바닥에서 새우잠을 자야 합니다. 내전으로 인하여 35만 명이 죽었으며 그 전쟁으로 손발이 절단된 자들이 인구대비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지금은 내전이 어느 정도 종식이 되었지만 내전이 일어난 이유는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년 소녀가 총을 들도 동족을 스스럼없이 죽이는 일이 일어난 곳입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습니다만 우리는 다이아몬드에 관심이 있지만 그들의 내전이나 비참함은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세계 도처에 즐비하여도 우리는 나를 중심으로 모든 이해관계를 측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존재와 자기 생존과 자기 행복만이 절대 진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종교이든 신이든 간에 나를 위하여 존재하여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신에게 정성을 바치고 기도를 하는 것도 결국 내가 원하는 나의 뜻을 이루어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절대 진리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스스로 속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살아있어야 나의 가정도 나의 회사도 내가 다니는 교회도 대한민국 예수님도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다. 내가 없다면 이 모든 것들이 아무른 의미가 없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다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교회를 다니고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지금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 기도요청을 하였을 때에 자기들의 뜻과 다르게 나오자 예레미야가 거짓말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자기들의 마음이 속고 있음에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일상에 늘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점을 치기 위하여 점집에 왜 갑니까? 자기가 원하는 길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에 모인 자들은 목사에게 왜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인데 이런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앞날에 대하여 묻는 것은 무당에게 길을 묻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절대 진리로 간주하고서 길을 묻는 것을 결국 자아 숭배로 결론 내려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도 다 이러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자신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중심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우주만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예수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임을 알게 됩니다. 

성도는 길을 묻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미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님을 알고 믿는 자들이 성도이기에 성도는 길을 묻는 자가 아니라 그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세상이 보면 마치 죽음의 길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죽음의 세상에서 십자가가 생명의 길임을 보여주는 곳이 교회이며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을 살리기 위한 도모는 죽는 길임을 알게 하시고 날마다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길을 묻는 자들에 대한 주님의 답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