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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5:25~31 저울에 달려보셨나요? 2015. 8. 19

 

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30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31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복음은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내신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 다 이루심을 자기 백성에게 성령으로 부어주십니다. 그러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의가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세상이 이미 심판을 받았음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 이러한 복음을 전하면 대부분의 반응이 그러면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적용거리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체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말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적용을 하게 되면 법이 됩니다. 적용을 법으로 하면 잘 지킨 나와 잘못 지킨 나 사이의 간격을 저울질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저울질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보시면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자신을 저울질 해 보고 다른 사람을 저울질 해보는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은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저울질 당하는 순간에 저울질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돌아서면 다시 자신과 타인을 저울질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저울질은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저울질을 합니다. 하나님만이 하셔야 할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을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악과 따 먹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모든 세상만사를 자기중심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살펴본 내용입니다. 느부갓네살 왕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성전의 금은 그릇으로 벨사살 왕이 술을 마시다가 왕궁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을 쓴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체험하고 조서까지 내렸습니다. 벨사살은 세상 최고의 지혜 자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왕자입니다. 왕궁의 중요한 일들을 배운 사람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일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성전의 그릇으로 술을 마시다가 그가 헤아림을 받고 저울에 달려지니 너무 가벼워 끝내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 밤에 벨사살이 죽고 바벨론은 메대 바사의 나라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 자신에게 적용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보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본 시편 62:9~11절입니다. ,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지난주에 이 말씀을 우리가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한 주간을 사시면서 자신의 인생이 정말 이러함을 실감하셨습니까? 내가 입김보다 가벼운 사람임을 인정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저울에 달면 입김보다 가볍습니다. 이 말씀이 정말로 우리에게 적용이 됩니까? 어떤 사람이 나의 말을 무시하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나는 입김보다 가벼운 존재라고 인정이 된다면 나의 말이 무시당하여도 그냥 통과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절대로 입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가 영원하고 든든한 신이라고 여기고 삽니다. 그래서 나의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을 다 나의 적으로 돌리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흙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흙이란 땅의 티끌입니다. 그러한 땅의 티끌에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가면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선악과 이후에 인간의 마음과 생각이 항상 악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한 것이 어떤 상태입니까?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든지, 사업을 하든지 종교생활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갑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이런 인생 자체가 속임수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마귀에게 속은 것인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떠나 버립니다. 그러자 인간은 육체가 됩니다. 육체가 되었다는 말은 생명과 차단되어 생존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생존이란 단지 생물학적인 생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존심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들도 자기 생존본능과 함께 그 사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 사회에서 서로가 자신의 신 됨을 주장하면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적당하게 서로 타협하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전에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섬나라에서 막부들끼리 서로 싸우면 결국 다 죽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유명한 스승이 화()사상을 전한 것입니다. 그 결과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 일이 지금의 친절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 눌러놓은 인간의 본성이 2차 대전을 통하여 여실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는 알 수가 없기에 서로 속고 삽니다.

 

자기 자신이 이렇게 속고 살고 있지만 자신이 속는 줄을 모릅니다. 속는 줄 모르는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자기 자신이 입김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후 하고 나오는 입김처럼 가벼운 인생들이 마치 영원한 것처럼 착각하고 포악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포악하게 탈취하여 재산을 늘려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그 행하신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오늘 입김 같은 우리 인생이 과연 무엇을 의지하면서 살아갑니까? 무엇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믿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날이 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정하신 그 죽음 앞에 서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 말씀대로 이루어내십니다. 그런데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심판을 받는다고 하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정죄함이 없다고 하면서 왜 심판을 받느냐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말은 영원한 정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서나 필요한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전혀 필요가 없기에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은 이 역사 속에서 다 털어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이 역사 속에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러한 고난이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선교를 가서 순교를 한다든지 하는 그런 고난은 폼이라도 납니다. 그런데 성도의 고난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우리의 일상에서 늘 나타나는 일들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기주제를 모르고 설치는 인간인지를 하나님께서 저울질을 하십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저울질을 당하고 심판을 받는 것은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금이라는 이 시간에 늘 저울에 달려지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 우리가 추구하는 내용들이 무엇입니까?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나 자신입니까?

 

어제 화요일 오후에 북면의 한 식당에서 창원 동읍의 조모 목사라는 사람이 경찰에 불구속 입건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식당에서 조목사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뒤에 차를 주차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식사하고 나온 사람이 차를 빼달라고 하였는데 10분이나 있다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차를 빼면서 사과한마디 없이 차를 빼더랍니다. 그래서 기본은 지키고 살자고 말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목사라는 사람이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맥가이버 칼로 그 사람의 옆구리를 찌른 것입니다. 경찰에 잡혀서 하는 말이 기본도 안 되었다는 말에 너무 화가 나서 그렇게 했다고 하더랍니다. 조사 후 검찰에 송치한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뉴스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이런 일들이 대단한 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일로 일어납니다. 이런 문제로 사람을 죽이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조 목사라는 사람을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잘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 사람은 행동을 한 것이고 우리는 행동을 안 한 것뿐입니다. 우리의 일생생활 속에서 나의 뜻대로 안 되는 일에 화가 나지 않습니까? 스마트 폰이 스마트 하지 못할 때 비싼 전화기도 바닥에 던져 박살을 냅니다. 인터넷이 느리면 화가 납니다. 차가 막히면 자신도 차 몰고 나와 놓고서는 차가 너무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노로 가득할 때에 조금만 누가 건드리면 폭발을 합니다. 목사 장로가 모인 총회 장소에서도 가스총을 빼듭니다.

 

그런데 칼과 총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말입니다. 우리의 혀가 지옥의 불길이라고 합니다. 모든 짐승들도 길들여지지만 이 혀는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말만 말씀에 비추어 봐도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해석을 하고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씀을 들어도 자기에게 적용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우리 자신의 언행(言行)과 심사(心事)가 말씀의 저울에 달리게 됩니다. 그러면 회개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 이런 저울질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사야 2:5~9절입니다. “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7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8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9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야곱 족속을 불러서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고 합니다. 여호와 빛에 비추어지면 자신들이 주께로부터 버림받은 이유를 알게 됩니다. 동방 풍속이 가득하고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언약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그 땅에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마필과 병거가 무수하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상도 가득합니다. 이러한 우상이란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합니다. 우상이란 내 마음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기를 원하는 탐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분으로 섬기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우상이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 천한 자도 귀한자도 굴복합니다. 선지자는 이러한 자들을 용서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날이 여호와의 날입니다.

 

10~21절입니다. “10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11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13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14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 오른 작은 언덕과 15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과 16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18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20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21 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여호와의 날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심판의 날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마음에 나오는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에는 모든 높고 견고한 것들을 다 무너뜨리십니다. 우리가 평소에 좋다고 하는 것들이 다 높고 견고한 것들입니다. 회사든 국가든 교회든 사람들의 소망은 더 높이 더 넓게 더 빨리를 요구합니다. 스포츠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인생들이 평생토록 쌓아온 것이라는 것이 다 자기를 위한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모든 인생들이 이런 것을 인생의 성공인양 달려가는 것입니까? 자신이 속고 있는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22절입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인생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생이라는 말은 아담입니다. 모든 인생들이 다 아담 안에 있습니다. 아담에게 하나님은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그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니 사람이 되었습니다. 땅의 티끌에 하나님의 호흡이 있어야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호흡이 떠나버리면 사람은 수에 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생들은 자신이 살았다고 생각하기에 온갖 헛된 것들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인생이 추구하는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릴 것들입니다. 무너져 내릴 것들이 무엇인지 그 목록을 봅니다.

 

이사야 3:1~3절입니다. “1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 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3 오십 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정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생들이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다를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자리에 우리 자신을 넣어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의지하는 것이나 우리가 의지하는 것이 같습니다. 모든 양식, 모든 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 종교꾼들, 지도자들, 귀인들, 모사들, 정교한 장인들 능란한 요술자들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의 모든 인생들이 의지하는 것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이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려고 이러한 것들을 무너뜨리십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리시는 일이 저울에 달리는 일이 됩니다. 양식과 물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양식과 물을 의지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저울에 달아보십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양식과 물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양식과 물만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을 의지하게 됩니다. 물과 양식 뒤에 나오는 목록들이 사람의 능력들입니다.

 

이사야 3:13~15절입니다. “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판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을 탈취하고 짓밟은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이러한 백성의 고관들의 부인의 행태를 봅니다.

 

이사야 3:16~4:1절입니다. “봉독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사치하는 모습을 그들의 장신구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발목 고리, 머리의 망사, 반달 장식, 귀 고리, 팔목 고리, 얼굴 가리개, 화관, 발목 사슬, , 향합, 호신부, 반지, 코 고리, 예복, 겉옷, 목도리, 손 주머니, 혼 거울, 세마포 옷, 머리 수건, 너울로 치장한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으로 인하여 썩는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입니다. 장정과 용사가 칼과 전란에 망하고 시온은 황폐하여 땅에 앉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심판의 날에 남자들이 많이 죽었기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에게 매달리게 됩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납니다.

 

이사야 4:2~6절입니다. “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하나님의 심판에서 남은 자는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에 의하여 그 더러움이 씻긴 자들입니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보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진 자들입니다.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달아서 무너뜨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남은 자들이면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말씀으로 자신이 헤아림을 당하고 말씀으로 저울질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자신이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임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은 수에 칠 가치도 없는 자임을 알고 땅의 티끌이며 지렁이며 구더기 같은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자신이 저울질을 당하지 않으면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준다는 행위들을 믿게 됩니다. 나 여기에 있고 신은 저기에 있으니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하여 신에게 정성을 바치는 행위를 믿으면 그것이 우상숭배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주의 성령에 의하여 말씀에 비침을 받으면 자신의 실상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에 비침을 받은 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하면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에 의하여 씻김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비침을 받아서 나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어 우리의 마음의 생각이 벌거벗은 듯이 드러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말씀 앞에서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처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하든지,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든지, 자기 자신이 전적인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한번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생에 자신의 죄인 됨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알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의 저울에 달려집니다. 말씀의 저울에 달려질 때에 회개가 나오는지 자기주장과 정당성이 나오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요나의 경우를 보고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나서 4:1~4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성이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게 되자 요나는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도 대충하고 니느웨 성이 망하도록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싫어서 도망갔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이 은혜와 자비의 대상임을 모르는 분노입니다. 이러한 요나를 하나님께서 저울질 하십니다.

 

5~11절입니다.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 하였고 재배도 아니 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자신이 심지도 기르지도 아니한 박 넝쿨 하나로 인하여 성내는 요나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성내는 것이 옳으냐고 하십니다. 그러자 요나는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네가 지금 성내는 그것이 옳으냐고 말입니다. 죽어도 옳다고 하는 자가 우리들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야 자신이 입김보다 가벼운 자이며 땅의 티끌이며 안개와 같은 자라고 고백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만 나는 전적으로 없음이며 예수님만이 나의 전부라는 고백이 나오도록 하나님께서 날마다 말씀으로 성실하게 자기 백성을 저울질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