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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설교] [동영상 설교]

에스겔 29:1~21 너를 대적하노라 2012. 7. 18

 

1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온 애굽으로 얼굴을 향하고 예언하라 3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4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너의 강의 고기가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너의 강들 가운데에서 끌어내고 5 너와 너의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으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었음이라 6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7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에스겔 29~32장까지 애굽과 애굽 왕의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동안 보았던 예루살렘의 주변 나라에 대한 심판의 말씀인 25~28장까지의 말씀과 양적으로 거의 대등합니다. 애굽의 나라가 강대국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양을 애굽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애굽은 온 세상을 대표하는 나라로 볼 수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온 세상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하여 상세하게 다루듯이 에스겔서에서 애굽의 심판은 온 세상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특징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애굽의 심판에 대한 전체의 개략을 먼저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로 시작되는 단락이 일곱 개입니다. 29:1~16절은 나일 강의 악어인 바로가 죽임을 당할 것과 나라가 약하여 질 것, 29:17~21절은 애굽은 느부갓네살의 보상이 될 것, 30:1~19 여호와의 날에 애굽이 심판을 당할 것, 30:20~26절은 느부갓네살이 바로의 팔을 꺾어 버릴 것, 31:1~18절은 거대한 나무로 비유되는 바로 왕이 찍어 버려짐, 32:1~16절은 애굽이라는 괴물의 멸망, 32:17~32절은 애굽과 그 군대가 스올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29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서 날짜의 기준은 에스겔 1:2절에서 본 대로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혀 온 기준으로 봅니다.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였는데 애굽의 바로 왕과 온 애굽으로 얼굴을 향하고 예언하라고 합니다. 그 예언의 첫 말씀은 3절에서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입니다. 애굽이 하나님의 대적이 된 이유는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만이며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의지가 되는 양 속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로 왕과 애굽에 대하여 심판합니다.

 

3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의 대적이 되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바로 왕의 교만입니다. 애굽은 나일 강의 범람으로 비옥한 토지가 형성되어 고대에 아주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지금도 세계 4대 불가사의에 속한다는 피라미드는 강력한 왕권과 국력이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건축물입니다. 이런 나라의 왕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의 강들 가운데 누운 큰 악어라고 합니다. 여기의 악어라는 말은 성경에서 다양하게 말합니다. 뱀, 용, 라합, 리워야단 등으로 말해지는 바다의 괴물로 표현합니다(욥41:1, 사47:1,51:9).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대항하는 흑암과 혼동의 세력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지금 그러하다는 말씀입니다.

 

3절 하 반절입니다.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왕이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이유입니다. 9절도 봅니다.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바로 왕은 나일 강의 한 마리 악어일 뿐입니다. 욥기 41장을 봅니다. “봉독” 악어(리워야단)를 아무도 다룰 수 없는 강력한 피조물로 말하면서 욥에게 네가 이런 악어를 잡거나 다룰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악어를 어떻게 다루십니까?

 

에스겔 29:4~6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너의 강의 고기가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너의 강들 가운데서 끌어내고 너와 너의 강의 모든 고기를 들어 던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지면에 떨어져서 다시는 거두거나 모으지 못할 것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었다고 합니다. 악어는 바로 왕이며 그에 딸린 고기들은 애굽 백성들입니다. 애굽이 이렇게 심판을 받는 것은 애굽의 교만인데 이 교만을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통하여 심판하십니다.

 

17~20절입니다. “봉독” 스물일곱째 해 첫째 달 초 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이 두로를 칠 때에 크게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머리털이 무지러지고 어깨가 벗어졌으나 그에 대한 대가는 변변찮았다고 합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바벨론 왕이 두로를 치기 위하여 13년을 수고하였다고 합니다. 두로가 섬에 위치하여 있으니 이를 공격하기 위하여 바다에 둑을 만들어가면서 싸워야 하는데 막상 공격하고 보니 성안의 보물들은 다른 곳으로 빼돌려버린 후라고 합니다. 그러니 두로 왕에게서 얻지 못한 수익을 애굽에서 얻도록 하신다고 합니다.

 

두로 왕이 심판 받는 것은 역시 교만입니다. 에스겔 28:1~9절을 봅니다. “봉독” 2주전에 보았습니다만 다시 보는 이유는 우리가 다 두로 왕과 바로 왕과 같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생각하는 소원대로 이루어졌다면 다들 두로 왕과 바로 왕과 같은 자리에 있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나는 신이라 이 모든 것을 내가 만들었다고 하고 있을 사람들입니다. 아주 작은 일을 성취하여도 우리는 이것은 내가 만들었다고 내 것이라고 합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으면서도 자신의 신 됨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들입니다. 그 이유는 선악과를 따 먹을 때에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이 이미 들어있는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독한 아이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신은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라고 합니다. 나는 아무공로 없으니 거저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은 죽어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짜 신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겠습니까? 두로 왕과 바로 왕 같은 경우는 자신들이 신이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심을 알리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기 백성은 지난주에도 심판을 통한 구원에서 보았습니다만 날마다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신이 아님을 확인당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신으로서 살고 싶은데 매사가 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럴 때에 자신이 신이 아님을 확인 당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애가 3:26~33절을 봅니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예레미아야 슬피 노래한 내용입니다. 소망은 땅의 티끌에 입을 대라고 합니다. 자신이 땅의 티끌임을 아는 자에게 구원의 소망이 있습니다.

 

에스겔 29:6~7절입니다.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고 합니다. 갈대는 지팡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애굽을 지팡이로 여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팡이는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지팡이가 되어야 합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여 위골된 환도 뼈로 인하여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아야 했습니다. 환도 뼈가 위골된 것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살려야 한다는 야곱의 신되고자 함을 하나님께서 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절름발이가 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의 의지가 되는 지팡이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강대국, 자신들이 430년이나 살던 애굽을 지팡이로 여긴 것입니다. 그런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10가지 재앙을 쏟아 부으시고 홍해를 건너 출애굽 하였건만 틈만 나면 애굽을 의지하였기에 이스라엘은 본래부터 애굽을 의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갈대는 지팡이가 될 수 없기에 의지하기 위하여 손으로 잡으면 갈대가 부러져서 모든 어깨를 찢고 그들의 허리가 흔들리게 되는 연약한 갈대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에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지에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애굽이 바벨론을 이기면 자신들이 해방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평소에 애굽은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의지는 되지 않았습니다. 약한 나라가 강대국과 동맹을 맺을 때에 강대국이 자기나라의 유익이 되는 선에서 약한 나라를 돕습니다. 만약 약한 나라를 돕다가 자기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언제든지 동맹을 깨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36:6~7절입니다. “6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때 산헤립의 군대장관인 랍사게가 한 말입니다. 히스기야가 항복을 하지 않으니 애굽 왕 바로를 믿고서 항복하지 않는다면 헛일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상한 갈대지팡이 일 뿐이라고 합니다. 성한 갈대도 지팡이가 되지 못하는데 상한 갈대라면 더욱 의지가 되지 못합니다. 이때 히스기야와 이사야는 갈대지팡이를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를 모독한 앗수르의 군대 18만 5천명은 다 시체가 되고 왕이 혼자 도망가서 그들의 신에 경배하다가 아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적이 된 애굽은 그들의 교만과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었기에 심판을 당한 것입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지도 못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는 것처럼 정책적으로 후원을 약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쪽의 세력이 앗수르와 바벨론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 정말 이스라엘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과 동맹을 맺는 것은 과연 우리를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중국이나 러시아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일까요?

 

에스겔 29:8~15절입니다. “봉독”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십니다. 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게 하심으로 이렇게 하시는 분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애굽은 강의 상류와 하류에 이르기까지 사막이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애굽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나일 강의 혜택으로 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자기가 강을 만들었기에 자기 것이라고 하였기에 이런 심판을 당합니다. 그런데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고 40년 동안 심판하시고 조금 회복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아주 미약한 나라가 되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16절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애굽의 심판은 그들의 교만에도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심판하시고 미약한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애굽은 미약한 나라들 중에 하나입니다. 나일 강 유역 외에는 거의 사막입니다. 강수량이 카이로 남부에 일 년에 2~5미리 정도인데 이것도 몇 년에 가끔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갑니까?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약속, 그 약속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다른 것을 의지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일에는 나의 자랑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나는 그를 죽인 죄인 중의 괴수로 드러나고 오직 그의 대속의 공로만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기에 자신의 신 됨의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자리에 있지 않다면 하나님의 대적의 자리에 있습니다. 어느 자리에 있는지 말씀으로 확인하시고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우리가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