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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8:1~12 토기장이와 진흙 2014. 1. 29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7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11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12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또는 무엇이 인간인가? 이러한 질문과 답변은 인류가 생기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좁혀보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우선 우리의 환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중에 오늘 본문과 비슷한 내용을 몇 가지 보겠습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과 노래가 있습니다. 몸과 흙이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외국산 식품들이 밀려오기에 우리의 음식을 먹자는 홍보차원에서 유명해지기도 한 말입니다. 그리고 흙밥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흙에게 먹혔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로마서 1:20~23절입니다.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각자가 안다는 그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은 창세기 3장 이후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이후의 인간이란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인간은 자신이 흙임에도 불구하고 흙이 아니라고 고집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창세기 2: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기서 흙은 ‘아파르(עפר)’인데 땅의 티끌입니다. 땅의 티끌은 땅에서 나온 것입니다. 땅을 ‘아다마(אדמה)’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초의 사람 이름이 ‘아담(אדם)’입니다. 그런데 그냥 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자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3:19절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다마(אדמה)’에서 취함을 입었기에 ‘아파르(עפר)’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흙으로 돌아갈 때 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하기에 지금도 살아가는 것들이 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 마다 자기의 고통이 최고로 크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의 겪는 고통은 다 일정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고롭게 일하며 평생을 살아도 결국 돌아가는 것이 땅의 티끌로 돌아갑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예레미야 18:1~4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겠다고 하셔서 토기장이의 집으로 갔습니다. 토기장이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면 그것으로 자기의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도 진흙으로 그릇을 빚는 도공들이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5~6절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토기장이가 하는 것처럼 행하지 못하겠느냐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의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1:10절에서 예레미야의 사역의 내용임을 이미 보았습니다. 뽑고 부수고 멸하려고 하시지만 그들이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켜 주십니다. 요나서에 보면 니느웨성이 회개함으로 그 재앙이 돌이켜진 것을 보게 됩니다.


9~11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시는데 그들이 악한 것을 행하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으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하노니 각각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재앙을 미리 선포하시는 이유는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만 보면 돌이키고 돌이키지 않는 것이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 창세기 3장 이후의 인간들이기에 스스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땅에 들어붙어서 땅만 생각하게 됩니다.


12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토기장이의 집에 가서 진흙으로 그릇 만드는 것을 보게 하시고 이것을 실물예화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돌이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지 않을 것을 모르고 보내셨을까요? 이미 아시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돌이키지도 않을 자들에게 왜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입니까? 인간의 실상이 어떠함으로 보이시면서 이런 인간을 어떻게 주님께서 돌이키시는지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사야 29:15~16절입니다. “15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여호와 앞에 자기의 계획을 숨기려고 하는 자들을 향하여 진흙과 토기장이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지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지은 자에게 나를 짓지 않았다고 하거나 총명이 없다고 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45:9~12절입니다. “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질그릇이 깨어져서 조각 난 것 중의 하나와 같은 자가 감히 여호와를 향하여 대적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선악과를 따 먹을 때에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를 않은 부모에게도 왜 나를 낳았느냐고 항의하는 자들입니다. 예레미야도 욥도 자기의 생일을 저주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진흙덩어리들의 실상입니다. 땅의 티끌인 주제에 자기를 지으신 자를 향하여 이렇게 대적합니다.


이사야 64:5~9절입니다.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 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 말씀 앞에까지 본 내용은 진흙인 주제에 그것도 하나님을 거역하여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한 땅의 티끌의 실상이 어떠함을 본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본 이 말씀은 우리가 진흙이기에 용서하여 달라는 간구입니다. 우리의 범죄가 오래 되었기에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자문합니다. 우리를 다 부정한자 같고 우리의 의가 더러운 옷과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누구도 주를 찾는 자가 없기에 다 소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라고 합니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 너무 분노하지 마시고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자신이 땅의 먼지이며 티끌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18:27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의인 50명 있으면 용서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 혹시 5명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시게느냐는 간구를 하면서 자신이 티끌과 재라고 고백합니다. 재란 ‘에프르’이며 티끌은 앞에서 본 ‘아파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자신이 땅의 티끌이며 재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것은 오직 주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3:29절입니다.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사람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대라고 합니다. 여기서 티끌도 ‘아파르’입니다. 그러면 혹시 소망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땅에 입을 대면 다 소망이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땅의 티끌임을 아는 자는 은혜를 입은 자가 됩니다. 이런 자들은 소망이 있습니다.


욥기 42:5~6절입니다.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이 재산이 날아가고 가족이 죽어도 범죄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들이 와서 계속하여 공격하였을 때에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하나님과 변론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론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자기의 모든 말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고 합니다. 스스로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말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던 욥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함이 은혜입니다.


시편 103편 10~14절입니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주께서 긍휼을 베푸심은 우리가 먼지 땅의 티끌임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19~24절입니다.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토기장이와 진흙의 결론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우리가 땅의 티끌임을 알 것입니다. 이러 땅의 티끌들인 우리에게 주의 긍휼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십자가의 피로 구속하여 자기의 긍휼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사용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