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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8~21 뜻을 정하여 2015. 7. 1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다니엘하면 뜻을 정하여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다니엘에 대한 설고를 많이 들었습니다.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니엘이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한 것입니다. 왕이 먹는 음식과 포도주는 최상급의 음식들입니다. 그리고 왕이 주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채소와 물을 먹음으로 이방 나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살아감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설교하고 적용을 하면 다니엘서의 주인공이 다니엘이 됩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도와주는 역할만 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 적용을 하는 것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인본주의(人本主義)라는 것은 인간이 근본이요 뿌리요 기원이며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세상의 해석들이 다 인본주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본주의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근본이며 기원이며 근원일 뿐만 아니라 과정도 결론도 다 하나님의 주되심을 증거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11:36). 성경은 계시의 책입니다. 계시(啓示)란 인간이 알 수 없는 진리를 하나님이 보여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보지 않으면 언제나 사람이 중심이 되어버립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딤후 3:16) 성경을 사사로이 풀면 안 됩니다(벧후1:20). 그러므로 모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9절입니다.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이 두절만 보면 다니엘이 뜻을 정한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이렇게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오게 된 것을 보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율법의 정결규례를 생각하면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할 뜻을 세운 것은 다니엘의 율법지킴의 뜻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이 망하여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 내시는 일에는 부족함이 없음을 다니엘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미 율법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면 나라가 망하고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다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열왕기하 20:16~18절을 봅니다.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히스기야 왕이 병 고침을 받은 후에 바벨론에서 온 사절단에게 자신의 왕궁의 보물창고와 무기고까지 다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도 바벨론과 동맹을 맺을 정도의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보물들이 바벨론에 빼앗겨 갈 것이며 그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벨론에 왕족과 귀족들의 자녀들이 잡혀온 것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그 말씀의 성취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뜻을 세워서 바벨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다니엘에게 그러한 뜻을 넣어주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입니다(6:5, 8:21). 이러한 악한 생각과 계획들로 가득 찬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6:8). 그러므로 노아 시대나 다니엘 시대나 지금이나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은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이나 노아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기 위한 은혜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셈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한 민족을 이루어 출애굽 합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합니다. 결국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율법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모두가 멸망당하여 마땅함을 보여준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구약전체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그들의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증거가 9절입니다.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다고 합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한 것을 환관장이 안된다고 하면 포로로 잡혀간 주제에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환관장도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 일뿐입니다. 만약 자기의 관리 하에 있던 소년들의 몰골에 형편없어 지면 자신의 목도 날아갈 것을 염려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환관장이 어떻게 포로로 잡혀온 자들의 말을 들어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은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비록 예루살렘이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겉으로는 바벨론의 신이 강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바벨론도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채식과 물을 요구한 것이 대단한 일일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흔히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삭개오의 결단과 결심을 강조합니다. 세리장의 체면도 버리고 뽕나무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 세리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본문 10~16절입니다.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왕이 지정한 먹거리를 거절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 일은 이들을 관리하는 환관장의 위험한 일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다니엘이 10일간 테스트를 해 보라고 합니다. 10일간 테스트를 해 보고 나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라고 합니다. 사실 이런 청원도 단칼에 거부하면 끝이 납니다. 그런데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신 것입니다. 테스트 결과 왕의 진미를 먹는 다른 소년들 보다 채식을 한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좋아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줍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채식주의를 주장하거나 채식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거나 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하였다는 것은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내용처럼 하나님의 통치가 다니엘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뜻을 정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입니다. 이들이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를 거절하였다는 조건으로 놀라운 지혜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본문 17~21절입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18 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 19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21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17절의 말씀이 8~16절까지의 조건으로 인하여 주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조건으로 주셨다면 왕의 진미와 포도주만 거절한다고 하나님이 만족하실 수는 없습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왜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이방의 땅에서 나오는 것은 다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채소와 물도 바벨론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도 자세히 보았습니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17절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학문과 지식을 깨달은 것 역시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하나님이 만유의 주인 되심이 바벨론이라는 제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소년들보다 10배나 뛰어나다는 것은 수량적으로 계산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였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는 저와 여러분도 어려서부터 많은 뜻들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뜻대로 된 것이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루지 못한 뜻을 우리는 또 누구에게 강요합니까? 우리의 자녀들에게 강요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니엘처럼 뜻을 세워서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니엘처럼 아주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고 요셉처럼 총리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뜻과 비전과 꿈들이라는 것이 교회들 마다 가득합니다. 이러한 뜻과 비전이라는 것을 강요받는 자녀들은 도저히 자신이 왜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면서 부모와 사회와 교회가 요구하는 타인의 욕망들에 강제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뜻을 세우는 것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들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뜻을 세운 자들이 어떤 모습인지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2절입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1)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증인들이 히브리서 11장에 나옵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믿음의 사람 아벨은 가인에 의하여 돌로 맞아 죽었습니다. 두 번째 나오는 에녹은 다른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365세에 하늘로 취함을 입었습니다. 세 번째는 방주를 예비한 노아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바빴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외에 히브리서 11장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면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습니다. 이렇게 허다한 증인들이 증언한 분이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뜻을 정하셔서 사셨습니다. 자기의 뜻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예수님은 십자가로 다 이루어내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의 뜻은 그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죽음이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자리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이 자기 백성에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임한 자들은 뜻을 정하게 되는데 그 뜻이란 이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뜻을 정하여 살게 되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6:38~40절입니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구원이란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내신 아들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아들이 다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5~10절입니다.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요한복음이나 히브리서나 다른 모든 성경도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어내십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의 영을 받은 사도들이나 성도들을 그 길로 가게 됩니다. 나의 뜻이 무너지고 아버지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뜻을 세우고 가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야 되는 일이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내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죽는다는 말은 자기 금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전적 무능한 자이며 전적인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만 믿는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서 2:12~18절입니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화의 근거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어떤 소원을 가지고 일하시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이루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소원을 자기 백성에게 넣어 주시고 그 뜻을 이루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그 소원은 어그러진 세대에 빛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 빛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말씀 곧 복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믿음의 제물이 된 성도들 위에 부어지는 제물이 되는 것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것이 세상의 보암직한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우리가 뜻을 정하는 것들을 분별하며 오직 주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일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곧 자기죽음입니다. 이 뜻이 우리 안에도 정하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