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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51:11~19   네 끝이 왔도다!    2015. 4. 1

11 화살을 갈며 둥근 방패를 준비하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것 곧 그의 성전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것이라 12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수꾼을 세우며 복병을 매복시켜 방비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주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계획하시고 행하심이로다 13 많은 물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재물의 한계 곧 네 끝이 왔도다 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의 목숨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진실로 사람을 메뚜기 같이 네게 가득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향하여 환성을 높이리라 하시도다,,,,,,,,,,,,  19 야곱의 분깃은 그와 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을 지으신 분이요 이스라엘은 그의 소유인 지파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어제 오늘 봄비가 옵니다. 이 비가 살아있는 씨나 나무들에게는 생명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싹이 트고 움이 돋고 입과 꽃이 나옵니다. 그러나 죽은 씨나 나무들은 동일한 비가 더욱 썩음과 분해를 재촉하는 비가 됩니다. 이처럼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로 역사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의 향기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어떤 반응들이 나타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2:14~17절입니다.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바울사도가 똑 같은 복음을 전하였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나타납니다.  

예레미야 51장은 계속하여 바벨론의 심판을 말씀합니다. 바벨론의 심판은 심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은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심판의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심판으로 들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소식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바벨론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바벨론 정신을 이 역사 속에서 반드시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심고 건설하십니다(렘1:10). 그런데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무너뜨려져야 하는 그 일을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하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면 우리 안의 바벨론은 무너뜨려지게 됩니다. 

고린도 후서 10:4~6절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우리가 무너진다는 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생각과 이론들이 우리의 인식체계 속에서 무너질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실제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심판이 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자가 성도입니다. 그 무너짐의 가장 중요한 현상은 자아 또는 자존심이 무너집니다.  

어제 집사람과 함께 김천의 어느 시골교회에서 충현교회를 은퇴한 김성관 목사님의 십자가 목회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오래 전에 충현교회에서 십자가 컨퍼런스를 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습니다. 그 당시의 느낌은 큰 교회가 또 하나의 십자가 상품을 내어 놓았는가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약 2주 전에 충현교회에서 저에게 청년 연합회 말씀을 증거 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시골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고 부탁하느냐고 하면서 십자가의 모양은 있지만 십자가의 정신이 없는 교회가 많은 때에 청년들이 십자가의 말씀을 듣기 원한다면 기꺼이 응하겠다고 하였더니 담당하는 분과 책임 장로님이 지난주에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 할 수는 없고 그때에 김성관 목사님이 17년간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워낙 말이 많아서 홈페이지에 설교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옛날 동영상 설교 한편을 주어서 나중에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하나님의 영광인지를 증거 한 내용입니다. 

어제 약 두 시간 동안 말씀을 들었습니다. 은퇴 후에 두 세 사람이라도 복음을 듣기 원하는 곳에 자비량으로 사모님과 섬기는 한 권사님과 함께 전국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단락이야기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세상의 영광과 힘을 가지는 것으로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금융회사에서 아주 돈을 잘 벌고 있을 때에 주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는데 호텔에서 자신이 자신을 바닥에 눕혀놓고 마구 발로 밟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발로 밝히는 자신이 화를 내는지 참고 있는지 본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가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란 이제 당신은 끝났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본문 11~12절입니다. “봉독”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하시기 위하여 메대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십니다. 메대 나라가 곧 페르시아에 병합이 됨으로 매대 바사를 함께 말하여도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왕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부추겨서 일하신다는 말씀은 세상 만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다스리심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의 말씀대로 그의 성전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손에 들린 몽둥이 주제에 성전을 파괴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된 줄 아는 교만함으로 인하여 멸망하는 것을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을 멸하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심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계획과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다는 언약의 내용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많은 물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재물의 한계 곧 네 끝이 왔도다” 바벨론의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하여 재물이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네 재물의 한계 곧 네 끝이 왔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내용이 이러 것입니다. 환경이 좋고 그래서 재물이 많아지는 것을 복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끝이 왔다고 합니다. 전에 번역에서는 이렇습니다. “많은 물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여 네 탐남의 한정, 네 결국이 이르렀도다 ” 네 탐남의 한정, 곧 자신의 탐남(貪婪)의 한정이 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내 목숨의 끝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이 끝이 얼마나 확실한지 14절을 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의 목숨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진실로 사람을 메뚜기 같이 네게 가득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향하여 환성을 높이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목숨을 두고 맹세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맹세를 하시든 아니하시든 말씀하시면 그 말씀 자체가 이미 창조이며 존재이며 완성입니다. 또한 파멸을 명하셨다면 역시 그 말씀자체가 완성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안에 살고 있으니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시간관으로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상으로 나중에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나중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보고 기뻐하였으며(요8:56)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다고(마22:45) 하는 말씀을 유대인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이 받든지 아니하든지 간에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두고 맹세하신다고 하시는 말씀은 이미 너는 끝이 났다는 말씀을 아주 강조하고 확정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남의 이야기로 들으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리는 자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탐심은 끝이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처럼 되고자 선악과를 따 먹은 후손이기에 그 탐심의 한계가 없는 줄 착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자족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근원적인 죄의 모습입니다. 피조물 주제에 자신이 한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마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따 먹었기에 나오는 증세입니다.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줄 압니다. 그래서 누가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온 세상을 다 불태워 없애버릴 정도로 분노합니다. 다만 이렇게 할 능력이 없어서 그냥 씩씩 대고만 있을 뿐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온 세상을 다 심판하였을 자들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제 네 탐남의 한계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끝이 왔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변합니다. 우리가 영원하리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다 변합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것 한 가지가 우리의 탐심입니다. 이 탐심이 우상숭배라는 죄인 줄을 알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탐심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끝이 왔도다! 아무도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실제로 이 세상에서 끝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돈을 믿고 사는 사람은 돈의 끝도 보게 하시고 자신의 육체의 능력을 믿고 사는 자는 죽을병에 걸리게 하셔서라도 그 끝을 보게 하십니다. 네 끝이 왔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끝을 내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끝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싸우다가 나는 너와 끝이라고 하면서 돌아섭니다. 인간관계이든, 교회의 관계이든,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조차 스스로 끝내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끝을 내셔야 하시는데 자신이 스스로 끝을 내려고 하는 이것도 또 다른 모습으로 스스로 신이 되어있는 증거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스스로 끝을 낼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끝을 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슨 대화를 하거니 일을 할 때에 꼭 자기 자신이 최종 마무리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자신의 뜻으로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묻습니다. 주님의 뜻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부인은 자아의 죽음입니다. 스스로 손에 창을 들고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그 자존심의 죽음입니다. 이 일을 우리가 이루어낼 수가 없기에 전능하신 주님께서 자기 능력으로 이루어 내십니다. 

본문 15~16절입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의 능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16 그가 목소리를 내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치게 하시며 그의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여호와께서 그의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의 명철로 하늘들을 펴신 것입니다. 그가 목소리를 내시면 하늘에 많은 물이 생깁니다. 비, 구름, 번개, 바람 이런 것들은 결코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이라면 잠잠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생들은 모든 피조물보다 더 부패한 마음이라서 하나님을 조작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보다 능력이 많은 신을 부리고 싶어서 온갖 종교적인 헌신이라는 것을 합니다. 이것이 우상 숭배라는 것입니다. 

본문 17~19절입니다. “17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가 만든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18 그것들은 헛된 것이요 조롱거리이니 징벌하시는 때에 멸망할 것이나”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탐심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탐심을 채우려고 하는 그 마음이 이미 우상숭배이기에 어떠한 종교적인 행위로 신에게 정성을 바친다고 한 들 이것이 우상숭배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어리석고 무식한 모습입니다. 바벨론이 온갖 우상숭배를 한 그 끝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도 우상숭배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됩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야곱의 분깃은 그와 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을 지으신 분이요 이스라엘은 그의 소유인 지파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바벨론을 향하여 네 끝이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야곱의 분깃을 그와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왜 야곱의 분깃은 바벨론의 멸망과 같지 않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분깃은 그들의 탐심입니다. 그들의 탐심의 끝이 오면 이제 그들은 영원한 심판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분깃은 세상이라는 바벨론이 끝이 되는 그 자리에서 오히려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의 소유인 지파입니다.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결국 만군의 여호와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자기 백성은 그 끝을 이 역사 속에서 맛보게 하시고 이 역사의 영원한 끝에서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이 많습니다. 

고린도전서 11:32절입니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 교회가 주의 만찬을 하면서 잘 못하였기에 바울사도가 책망합니다. 이때는 오늘날 기념하는 성만찬과 달리 식사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먼저 먹고 마셔서 배부르고 취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난하여 늦게 일하고 온 사람들은 먹을 것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만약 배가 고프면 집에서 먹고 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심으로 인하여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잠자는 자가 적지 않다고 하면서 방금 읽은 이 말씀을 합니다.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판단과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처음부터 끝을 말씀하셨습니다. 천지 만물의 창조는 그 끝을 보여주시기 위한 창조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창조가 완성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은 지금 보지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요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옛 하늘과 옛 땅이 끝이 있는 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끝은 아는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들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지만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잔치 집에 가는 것입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왜 지혜로운 것입니까? 전도서 7:2절입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사람의 끝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종말이 된 이 땅에서 어리석은 자로 살아가는 자들이 어떤 모습인지 디모데후서 3:1~4절을 봅니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자기 사랑 돈 사랑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합니다. 

5~9절입니다.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돌아서야 할 자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적인 유혹이 아니라 자기 욕심을 따라 성경을 배우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욕심에 끌려서 성경을 배우면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자기 긍정을 위한 성경공부, 자기를 사랑하기 위하여 돈을 사랑하고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하고 있으면서 이러한 자신의 행태들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온갖 복음이나 자유라는 말로 끌어 쓰는 자들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아신다면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10~16절입니다. “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말씀을 듣고 본다는 것은 결국 말씀으로 우리가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의 책망을 받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박해를 받습니다. 그런데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지고 속인다고 합니다. 이들이 교회 밖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복음이니 자유니 하면서 자신의 악함을 합리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속는 길입니다. 자신의 성질머리 하나 죽이지 않으면서 인간은 죄인이라서 다 그런 거라고 하면서 자기의 분노를 합리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사는 것이 바로 자신이 속는 줄도 모르고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고 책망을 받고 의로 교육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 각자에게 적용해 봅시다. 자기 자신에게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에 나는 끝이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성의 사람들은 이 말을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오늘 이 성이 불에 타 없어진다는 말을 들은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늘에서 불이 유황불이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미 끝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쾌락을 따라 사는 그 소돔과 고모라 성을 불사름으로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시는 것입니까? 

유다서 1:6~7절입니다.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소돔과 고모라가 영원한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다고 합니다. 네 끝이 왔도다! 네 종말이 이르렀도다! 이 말씀이 들려집니까? 이 말씀을 들리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으면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처럼 살게 됩니다. 내 영혼아 평안히 먹고 즐기자고 할 때에 주님은 네 영혼을 오늘 밤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이 쌓아둔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본문 13절을 다시 봅니다. “많은 물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재물의 한계 곧 네 끝이 왔도다” 말세에 재물을 쌓으면 그것이 어떻게 되는지 야고보서 5:1~5절입니다.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세상은 심판받을 이 모습을 세상은 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세상은 그렇게 말해도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않아야 할 교회가 저주와 재앙을 쌓고 있는 것을 복이라고 빌어준다면 이런 곳은 결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날마다 비전과 꿈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끝이 났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 물가에 위치하여 재물을 많이 쌓았던 그 탐남의 끝이 왔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해야 바벨론의 정신이 붙들려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이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바벨론의 심판과 함께 영원한 심판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이 말씀이 들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야곱의 분깃은 세상의 유업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언약하신 그 영원한 기업을 주시기 위하여 야곱을 부수어 이스라엘로 만들어 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영원한 불에 탈 이 바벨론과 함께 정죄당하지 않도록 지금도 이끌어 내시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벨론에서 끌려 나오는 자들은 네 끝이 왔다는 말씀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소식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 속에서 야곱의 분깃을 받은 자들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