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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1:5~8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2019. 11. 20

 

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7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8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아가서 1:1~4절을 두 번에 나누어 보았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라는 구체적인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 이야기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얼마나 급격한지 여인이 그 사랑에 빠지게 되니 남자에게 입을 맞추어달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남자는 입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침실로 인도한 것입니다. 이 내용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보았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할 때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새로운 살길이 열린 것은(10:20)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 그 십자가에 있음을 보여줍니다(5:8).

 

본문 5절입니다. 예루살렘 딸들을 부르면서 자신이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고 합니다. 자신의 피부가 검지만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게달의 장막과 솔로몬의 휘장과 대비합니다. 게달의 장막은 아랍민족의 유목민 텐트인데 염소 털로 짠 장막이기에 검은 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휘장도 겉은 검은색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의 휘장은 겉은 그래도 안은 화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검은색이라도 게달의 장막과 솔로몬의 장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기에 술람미 여인은 비록 자신이 겉으로 보기에 검지만 아름답다고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의 성안에 사는 여인들은 피부가 성 밖에서 포도원을 돌보는 술람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희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또한 성안에 사는 여인들은 솔로몬의 여러 왕비들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늘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될 외모이지만 술람미는 그런 자들에게 하나도 꿀리지 않고 비록 검지만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이 사랑이 있기에 게달의 장막과 같은 지라도 아름답다고 하는 겁니다.

 

성 안에 사는 자들과 성 밖에 사는 자들에 대하여 20년 전에 창세기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경건한 셋 계열의 후손들인 반면 사람의 딸들이란 가인의 후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인은 도시문명을 건설합니다(4:16~24). 그러나 셋 계열은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4:26). 셋 계열의 아들들이 도시 문명인 가인 계열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그들과 결혼하니 이것이 죄악이 가득한 모습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영광에 취함과 같습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비록 자신이 검지만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그 깊은 사랑 때문입니다.

 

민수기 12:1절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모세의 아내 미리암이 죽고 나서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합니다. 구스 여인은 피부색이 검은 여인입니다. 그러니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모세의 형 아론이 우리가 어떤 가문인데 그런 구스 여인을 취하느냐고 비방을 한 것입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모세는 너희와 다르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이방인 구스 여인과 결혼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보여주는 계시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아론과 미리암은 자기들의 조건에 마땅찮다고 하다가 미리암이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어린 양의 피로 구속을 받아 나온 주제에 자기들이 무언가 나은 것이 있다고 한 것이 저주 받을 짓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다시 봅니다. 술람미가 예루살렘 여인들을 부릅니다. 너희가 나를 검다고 조롱하지만 그러나 비록 내가 검지만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왕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신이 게달의 장막같이 검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흔히 콩깍지가 씌었다고 합니다. 사랑은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죄인들은 이런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지만 곧 환상이 깨어지면서 다툼이 시작됩니다. 이럴 때에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일시적이며 얄팍한지 아시고 예수님의 사랑을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6절입니다.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왜 흘겨보는 것입니까? 그들이 보기에 왕에게 사랑받을 조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왕이 그를 가장 은밀하고 깊은 곳으로 이끌어 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온갖 시샘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거무스름하게 된 것은 우리의 오라비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나의 포도원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6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내가 검다고, 내가 햇볕에 그을렸다고, 나를 깔보지 말아라. 오빠들 성화에 못 이겨서, 나의 포도원은 버려 둔 채, 오빠들의 포도원들을 돌보느라고 이렇게 된 것이다.” 어떤 해석은 자기 포도원을 자기 몸과 얼굴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번역을 보면 자기의 포도원을 제대로 돌보수도 없을 만큼 오빠들의 성화에 의하여 오빠의 포도원까지 돌보느라고 자기를 가꿀 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가 왕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 7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나에게 말하여 주세요. 임은 어디에서 양 떼를 치고 있습니까? 대낮에는 어디에서 양 떼를 쉬게 합니까? 양 떼를 치는 임의 동무들을 따라다니며, 임이 있는 곳을 물으며 헤매란 말입니까?” 5~7절이 여인의 노래입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이 조롱을 하지만 이 여인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랑을 받고 사랑에 빠진 격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임에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임이 어디서 양떼를 치고 있는지 어디에서 양떼를 쉬게 하는지 알려달라고 합니다. 알려주지 않으면 헤맨다고 합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피난살이를 갑니다. 그런데 어디서 라헬을 만납니까? 우물가에서 만납니다. 이 우물은 양떼들이 물을 마시는 곳입니다. 여러 목자가 모이면 우물에 덮여있는 돌을 들어내고 물을 마시고는 도로 덮어둡니다. 모래바람에 막히면 안 되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만나듯이 이 여인은 사랑하는 임을 목자로 말하면서 양 떼를 치는 곳과 양떼를 쉬게 하는 곳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사랑하는 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도 같은 번역을 봅니다. 여인들 가운데서도 빼어나게 아리따운 여인아, 네가 정말 모르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가거라. 양치기들이 장막을 친 곳이 나오거든, 그 곁에서 너의 어린 염소 떼를 치며 기다려 보아라.” 새 번역과 공동번역은 이 내용을 친구들 또는 합창단으로 각주를 붙이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독창에 화답을 합창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술람미 여인을 여인들 가운데서도 빼어나게 아리따운 여인이라고 합니다. 그 사랑하는 임을 찾으려면 양 떼의 발자취를 찾아가라고 합니다. 그 곁에서 너의 어린 염소 떼를 치면서 기다려 보라고 합니다.

 

아가서의 이 내용들을 교부들의 주석을 보면 여러 가지 비유적으로 주석을 합니다. 주된 주석은 교회와 그리스도와 관계로 말합니다. 그래서 술람미가 비록 검지만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다윗이 간음하고 살인한 후에 나온 고백의 시로 되어 있는 시편 51편을 인용합니다. 다윗이 모태로부터 죄악 가운에 출생하였다고 하지만 우슬초로 씻어서 눈보다 희게 하여 달라고 하는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51:5,7). 이런 내용을 술람미의 고백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비록 죄로 더러워졌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정하게 된 신부의 노래로 본 것입니다.

 

저도 얼마든지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한 내용을 주의 종을 함부로 대하면 나병이 든다고 협박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자격 없는 이방인을 의롭다고 하는 지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술람미 여인이 검다고 조롱하는 것은 아론과 미리암이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모세를 조롱한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7:36~39절입니다.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3)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3)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람미를 흘겨보는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40~50절입니다.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4)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4)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3)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아가서의 사랑이야기도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들이 세상이 볼 때에 어떤 모습으로 보여 질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아주 부러워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를 좋아하십니까? 우리는 백발백중 후자입니다. 그래서 늘 기도하는 것도 헌신 충성 봉사하는 것도 내가 세상에서 잘 난 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세가 바로 예루살렘 안의 여인들과 같은 모습이며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이며 아론과 미리암과 같은 모습입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술람미를 검다고 조롱하고, 아론과 미리암이 구스 여인을 취하였다고 모세를 비난하고, 바리새인들이 용서 받은 여인을 죄인 취급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사랑하는 임을 만나려면 양 떼를 따라가라고 합니다. 양떼를 따라가면 목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참 목자입니다(10:10,11). 그런데 이 참 목자를 따르는 자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양들만 따라갑니다. 이 양들은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간 그 길입니다. 이들은 가인의 후손과 같이 도시 문명을 건설하는 자들이 아니라 셋의 후손들처럼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면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갔습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이 길로 갔습니다(12:1).

 

고린도전서 1:21~25절입니다.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어지는 26~31절을 봅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술람미 여인, 예루살렘 여인들이 흘겨보는 검은 여인입니다. 구스 여인, 아론과 미리암이 마땅찮게 여긴 여인입니다.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였습니다. 라합은 기생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밧세바의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를 받은 여인은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죄 많은 여인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그 사랑을 받고 나니 사람들의 조롱과 수군거림이 들리지 않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구원받은 자들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자랑거리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혹 그런 자랑거리가 있었던 자들을 그 자랑거리들이 오히려 간음을 하고 살인을 하고 예수 믿는 자를 죽이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자랑거리들이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타난 그 사랑을 받는 자들은 세상의 시각과 전혀 반대입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이 됨을 아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여도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긴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