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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14~15 영원히 있을 것 2019. 1. 16

 

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전도서의 시작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헛된 세상에서 헛되지 않고 영원히 있을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찾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그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행한 것을 영원히 있게 하려고 한 것이 바벨탑이며 인간의 역사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 창조인데 이 창조를 멸하신다는 말씀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멸하시는 것도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그 멸하심도 하나님의 행하심이기에 영원한 멸하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든 심판이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만이 영원한 것이며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일에 인간이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것입니다.

 

몇 주일 전에 마가복음 4:26~34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자고 깨고 하는 중에라는 제목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밭에 씨를 뿌렸는데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자라서 추수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자고 깨고 하는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에 있어서 인간은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 아멘이 되면 그 사람의 마음에 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면 된다고 합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고 합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모든 일을 하라고 합니다. 물론 세상의 일들이야 심은 대로 거두는 원칙이기에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성과가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썩을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것을 말해야 합니다. 썩지 아니할 것을 심고 거두는 것은 사람이 할 수가 없고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6:6~7). 성령이 임한 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영원할 것이며 그 일에 사람이 보태거나 뺄 것이 없다는 말씀에 아멘이 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14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하나님의 모든 일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 결과까지 이미 다 아시고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신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일에 인간이 왈가왈부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 일하심에 우리가 무엇을 보태고 빼고 할 것이 없다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경외는 잠언서와 전도서의 결론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알면 그를 경외합니다.

 

본문 15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지금 있는 것 이미 있던 것이고,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신 일을 되풀이하신다.” 하나님께서 반복하여 일하신다는 뜻보다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것이 이미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장래의 일이라고 하여도 이미 그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시공을 창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만이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영원함을 믿지 않고 자기 일의 영원함을 추구합니다.

 

에스겔 28:2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두로 왕의 영광과 그 심판에 대한 내용이 에스겔 26~28장에 나옵니다. 두로 왕이 무역으로 부자가 되고 견고한 성을 건설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나는 신이라고 합니다. 피조물 주제에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 따 먹음으로 하나님이 되려고 한 속성들이 두로 왕에게 나타나기에 심판을 행하신 것입니다.

 

에스겔 29:3절입니다.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에스겔 29~32장까지 이집트의 바로 왕에 대한 심판의 내용입니다. 바로 왕이 나일 강이 자기의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바로 왕이 심판을 당합니다. 바로 왕을 악어로 비유하며 갈고리로 걸어서 사막에 던져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집트를 의지하던 다른 나라들도 그 악어의 비늘에 붙어 있는 물고기처럼 함께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도구는 바벨론입니다.

 

다니엘 4:29~32절입니다. “29 열두 달이 지난 후에 2)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두로 왕의 말이 나는 신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바로 왕은 자신이 나일 강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자기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교만한 왕들을 치기 위하여 하나님은 바벨론을 강하게 하셔서 이들을 망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바벨론이 세계의 제국이 되어 강하게 됩니다. 이러한 느부갓네살 왕이 두 번이나 꿈을 꾸고 그 꿈을 해석해 준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오늘 말씀은 두 번째 꿈입니다. 다니엘이 겸손하게 행하라고 경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왕이 바벨론 왕궁 지붕 위에서 이 큰 바벨론은 내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였기에 나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는 그 말을 다 말하기도 전에 짐승이 되어서 쫓겨나 일곱 때를 지내야 했습니다.

 

다니엘 4:34~37절입니다. “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36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두로 왕과 이집트의 바로 왕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하여 오늘 본문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보태거나 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만한 인간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들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만한 권력이 없어서 그렇게는 못하지만 그래도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작은 권력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확대시키고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교만들을 무너뜨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왕의 고백을 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합니다.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일하심에 보태거나 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벨론 왕이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이 짐승에서 사람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일에 대하여 몇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5:13절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일을 이루어내심이 출애굽입니다. 출애굽하여 이들은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 거룩한 처소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이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5:17~18절입니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주께서 출애굽 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 심으신 이유는 주의 처소를 삼기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고생한 애굽에서 나와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을 영원히 하나님의 처소를 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이 처소를 삼으시면 그 처소도 영원한 것이 됩니다. 이것이 영원히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90:1~2절입니다.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출애굽기 15장이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가 찬양한 내용입니다. 시편 90편 표제어를 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에서 유일한 모세의 시편인데 출애굽기 15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한 처소를 삼기 위하여 출애굽 시키셨다면 그렇게 출애굽이 된 자들의 고백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된다고 고백합니다. 그에 비하여 인생은 티끌이며 풀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들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20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구약의 출애굽이나 성막이나 성전을 통하여 계시하시는 내용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루실 영원한 처소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처소는 사람의 손으로 세울 수도 없고 허물 수도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시듯이 예수님은 그 십자가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에게 자신을 주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셔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이러한 일들만이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의 창조는 이 영원한 것을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4:16~18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보이는 겉 사람은 낡아지고 약하고 죽어갑니다. 이것이 너무 슬픈 사람은 속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속사람이 있는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영원한 영광을 바라봅니다.

 

디모데후서 1:9~10절입니다.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이 복음을 전하면 고난을 받는다고 합니다(8). 그러나 구원을 받은 자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된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나타났고 이것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영원한 내용입니다.

 

유다서 24~25절입니다.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땅의 먼지와 같고 안개 같은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을 담으시는 일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내십니다. 이렇게 하셔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 담긴 자들은 찬송합니다.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까지 있을 것이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