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전도서 3:16~17 심판의 때 2019. 1. 23

 

16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7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오늘 본문 16~17절을 봅니다. 재판하는 곳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심판 할 것이며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심판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당에서 조금만 가면 법원이 있고 검찰청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 종종 현수막이 붙거나 피켓 팅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판을 바르게 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의를 행하여야 할 곳이 법원입니다. 그러나 정의롭게 재판하여야 할 재판정에도 악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도 대법원장을 지낸 사람이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최고의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대법원에서도 정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하시는 말씀에 아멘이 되십니까?(3:11) 내가 직접적인 불의를 당하지 않았다면 아멘 할 수 있을지라도 내가 불의를 당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무엇을 잘 못했다고 나를 이렇게 억울하게 하시느냐고 원망할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복을 받기는커녕 온갖 어려움만 가득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하신다면 과연 아멘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름답고 아니고도 하나님의 때나 시각이 아니라 나의 때와 나의 시각으로 결정합니다. 내가 원하는 합격, 취업, 승진, 결혼, 행복들이 이루어지면 저절로 아름답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지 않는 불합격, 백수, 좌천, 이혼, 불행들이 닥치면 세상이 모두 어두워 보입니다. 더구나 남들보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닌데 이런 어려움이 닥치면 불평을 합니다. 더더구나 교회도 다니면서 교회에서 복 받는다고 하는 일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도 바쳤는데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악하게 사는 사람이 만사형통하게 보일 때에 어떤 마음이 듭니까?

 

시편 37:1~11절입니다.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1)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2)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이 말씀을 종종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대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악인이 사라지기는커녕 악인은 더욱 득세하고 그래도 바르게 살아보려고 하는 나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의가 정오의 빛 같이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잠잠히 참고 기다렸는데 악인은 더욱 형통합니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면 의인이 땅을 차지하고 악인은 찾아보려고 하여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에 이 시편을 기록하였는데 아직도 이 세상은 악인이 형통합니다.

 

이어지는 12~16절입니다. “12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13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14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15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악인들은 악을 행하다가 자신의 양심을 찌르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심판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양심이 화인을 맞았는지 양심의 가책도 없이 소득만 풍부하여 집니다. 이런 세상에서 의롭게 산 결과로 적은 소유가 된 것을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겠습니까? 아내가 환영할까요?

 

17~20절입니다. “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18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19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20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악인은 결국 망하고 의인은 하나님께서 붙드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세상은 악인이 심판을 받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들도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부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악인을 심판하시는데도 이 역사 속에서 악인의 형통함이 계속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버려두심의 심판입니다.

 

21~40절입니다. 봉독 문자대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악인을 반드시 재판하시고 의인을 돌보셔서 그 기업을 영원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계속하여 악을 추구하여도 형통하고 벌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 속에서도 심판을 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의 왕이나 백성들이 악을 행할 때에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심판을 통하여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심판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오히려 형통한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의심이 생기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

 

시편 731~14절입니다.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1)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2)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아삽의 시편인데 시편 기자는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서 하였습니다.

 

15절입니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악인의 형통함이 잠간이고 바로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았다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공의대로 심판하심을 의심 하지 않았을 텐데 악인이 심판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대대로 형통하고 죽을 때에 고통도 없이 죽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자신은 손을 씻어서 깨끗하게 살려고 하였는데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을 마음으로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16~22절입니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하나님께서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시는데 그것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으로 원망 하였지만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우매 무지한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23~28절입니다.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에 대하여 이제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형통하게 하시는 것도 의인이 고난을 받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주변에 불의가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묵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말씀을 따라서 불의한 것은 불의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을 하나님께서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알고 무엇이 복인지 고백합니다. 하늘과 땅에서 사모할 분이 주님이시기에 주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형통할 때나 고난을 받을 때가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는 것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알고 있어도 나에게 현실적인 고난들이 닥치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내가 남보다 악하게 산 것도 아닌데 불치병에 걸리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그럴 때에도 이 말씀이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십니까?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은 현실의 문제가 척척 해결되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저는 어려서 내가 잘하면 복을 받고 내가 잘못 하면 벌을 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내가 무엇을 잘 못해서 그런 줄 알고 죄를 찾아가면서 회개하였습니다. 물론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니 지옥이 무서워서 죄를 안 지으려고 했지만 지옥의 두려움보다 죄가 더 매력적인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죄가 권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심판은 내가 받아도 마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선악 판단을 중심으로 심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깁니다. 그러니 왜 하나님이 빨리 저 악한 자들은 심판하여 주지 않느냐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박국 2:1~4절입니다.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1)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선지자의 고민도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이었습니다. 악인이 형통하니 의롭게 살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율법이 해이하여 진다고 하나님께 항의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답 좀 해 보시라고 따졌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정한 때가 있다고 합니다. 묵시는 정한 때가 있는데 그 종말이 속히 이루어지겠고 결코 거짓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믿지 못하는 자가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것이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살라고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이 신약에서 어떻게 인용되는지를 보겠습니다.

 

로마서 1:16~17절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박국 선지자의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인용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알기 전에는 복음을 믿는 자들을 다 잡아 죽이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살인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핍박하는 예수님을 만나고서 복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율법의 의를 붙들고 있을 때에는 복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핍박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복음에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가 있어야 천국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의 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여기고 있을 때에 복음을 핍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제 자신이 심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이 구원과 심판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8절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5)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5)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여기서 심판이라는 단어의 각주를 보면 정죄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정죄를 받지 않지만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 곧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않으면 그것이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은 십자가로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때가 있는데 그 심판의 때도 십자가로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세례요한의 선포이며 예수님의 선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신 후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선포보다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원을 받는 것이며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이 심판인 것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고후5:21). 

 

사도행전 17:30~31절입니다.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십자가 전에는 간과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십자가와 부활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십자가로 확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심판이 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1:15~17절입니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하는 바울이 심판을 받아 마땅한데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구원이란 죄인을 부르러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합니다.

 

베드로후서 3:12~18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2)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3)”

 

주의 재림이 언제 일어나느냐고 하면서 재림이 없다고 조롱하는 자들을 향하여 베드로사도가 바울사도를 언급하면서 같은 말을 합니다.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합니다. 이미 십자가로 심판과 구원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이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십자가로 확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참으시는 이유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심판의 때이며 동시에 구원의 날입니다. 그래서 초림부터 재림까지 전체를 종말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고 큰 나팔 소리가 나며 세상을 심판하여도 겁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이 역사 속에서 십자가에 함께 죽은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