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마태복음 7:7-11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2011. 2. 23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성경 도구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도구들이 필요합니다. 밥을 하려고 해도 밥솥이 있어야 하고 불이 있어야 하고 부엌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다가 밥그릇과 주걱과 숟가락과 젓가락 반찬과 밥상이 다 필요합니다. 이런 도구들은 다 내가 살아가는 일에 유용하고 편리하기에 돈을 주고서라도 마련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을 이런 도구의 하나로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성경을 도구로 사용하고 싶은 가장 강렬한 욕망이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목사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목사는 늘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 하는데 설교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성경을 얼마든지 자기 목적에 맞게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개척하였을 때에 끌어들일 수 있는 성경구절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배당을 지을 때에 필요한 성경구절들이 곳곳에 늘려있습니다. 앞뒤 자르고 필요한 본문을 문자대로 인용하여 설교를 합니다. 심방을 가면 교인들이 좋아하는 구절로 전합니다. 저도 이런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성경이 증거 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는지를 염두에 두고서 준비합니다.

 

수요일 저녁에 기도라는 주제로 창세기부터 설교를 한지 1년 3개월째입니다. 횟수로 60번이 넘게 기도에 관하여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에 대하여 보는 이유는 우리가 평소에 기도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조상으로 물려받은 본성이 있습니다. 그 본성이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입니다. 지극한 정성을 바치면 하늘도 감동하여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입니다. 이런 본성이 있는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주 좋은 본문이 됩니다. 구하면 주실 것이고,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모아서 어떻게 설교를 하는지 오늘 새벽기도 마치고 가면서 들은 설교를 예로 들겠습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의 설교입니다. 은퇴하였는데도 계속 은퇴목사의 설교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라고 합니다. 사람의 말은 힘이 있다고 하면서 안 된다고 하지 말고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고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경을 곳곳에서 인용하면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선포를 하고, 안 되면 천 번이라도 계속 말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인도 지금 병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왜 병이 들었습니까? 기도하는데 왜 구제역은 왔으며, 기도하는데 왜 남북은 이렇게 대치되어 있으며, 기도하는데 왜 이렇게 물가는 오르며, 기도하는데 왜 한국교회는 이렇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까?

 

이제 본문을 봅니다. 7-8절입니다. 7절에서 약속을 하십니다. 구하면 주실 것이고, 찾으면 찾아낼 것이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8절에서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며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고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을 사람의 예로 들어서 말씀합니다.

 

9-10절입니다. 너희 중에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자가 있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자가 있느냐고 하십니다. 아이가 떡과 돌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배고플 때 보리개떡을 먹어본 아이가 떡과 비슷한 돌멩이를 보고서 떡인 줄 알고 돌을 달라고 하면 아버지가 주지 않습니다. 생선과 뱀을 구별 못하는 아이가 길쭉한 생선을 먹어보고 맛있으니 뱀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생선인줄 알고 달라고 하면 주겠습니까? 뱀을 집으려고 하면 손을 때려서라도 잡지 못하게 하여야 아버지이지요!

 

11절을 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는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떡과 돌을 구별 못하고, 생선과 뱀을 구별 못하고, 알과 전갈을 구별하지 못하기에 잘못 된 것을 구하면 구하는 것을 주지 않고 때로 손을 떨쳐서라도 나쁜 것을 잡지 못하게 하고 좋은 것을 줍니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선하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이 좋은 것을 자기가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아버지가 좋은 것을 자식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좋은 것은 사탕인데 자꾸만 사탕을 달라고 하면 이빨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아버지는 사탕대신 칫솔과 치약을 손에 들려서 강제라도 이빨을 닦게 만듭니다. 아이는 입이 맵다고 울지만 아버지는 좋은 것을 주었다고 기분이 흐뭇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다.  한 백억 주면 십억은 헌금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90억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죄짓는 일에 빠릅니다. 그러니 10억을 헌금한다는 것도 90억 얻기 위한 술수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을 주신다는 이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1:13절입니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 좋은 것이 성령입니다. 사복음서에서 같은 내용이 나올 때에 이런 본문을 평행본문 또는 평행구절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은 주로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 독자를 염두에 둡니다. 그래서 좋은 것이라고 하면 하나님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육적인 유대인들은 하늘에서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는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고 아직도 현세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지만 성령이 임한 자들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염두에 둔 복음서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면 자기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좋은 것이 바로 성령이라고 명시를 합니다. 그러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신 그 내용이 바로 성령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로 앞의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청기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강청하면 주신다는 본문으로 사용하지만 사실은 바로 앞의 주님 가르치신 기도와 성령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주님께서 이루어내시면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하는 것을 구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 아버지 편에서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 좋은 것이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구하는 사람들이 흔히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고 능력을 행하고 이런 쪽에만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령을 구하고 성령의 은사를 구하지만 그렇게 성령의 사역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성경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처럼 성령을 도구로 사용하게 됩니다. 성령이 사람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안에 감춘 하나님의 은혜의 비밀들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내가 구한 것은 다른 것을 구하였는데 하나님의 자녀라면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아버지 편에서 좋은 것을 주시기에 성령을 주십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성경을 통하여 확인을 합니다. 요한복음 3:5-8절입니다. “봉독”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물이란 세례를 뜻하는데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입니다(롬6:1-14). 이것이 성령으로 거듭남입니다.

 

요한복음 7:37-39절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증거 한 바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고 하신 말씀인데 이것은 그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두 욕구가 싸우게 됩니다. 육체의 욕구는 아직도 세상에 대하여 목마르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이미 완성이 된 예수님을 증거 하기에 만족하다고 합니다. 성도는 이 둘 사이에 끼어있지만 그러나 성령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영이시기에 완성을 보장합니다.

 

요한복음 14: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5:2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성령은 진리의 성령입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증거 한 바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선포입니다.

 

요한복음 16:7-15절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가시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떠나가셔야 보혜사가 오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그냥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그 다 이루심을 하늘로 가셔서 보혜사를 보내주십니다. 보혜사가 바로 진리의 성령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무엇을 하시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실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이 성령이며 성령이 임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성령이 세상을 책망하시는데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죄에 대하여 책망함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함이 죄라고 합니다. 세상이 전혀 알 수 없는 죄에 대한 책망입니다. 선악의 체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는 말은 그야말로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기에 믿지를 않고 오히려 이런 복음을 전하는 자를 핍박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곳 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연합하여 방해하고 핍박하는 것을 사도행전에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믿는 자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구원받기로 작정 된 자들이기에 성령이 임하여 믿게 됩니다.

 

의에 대한 책망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셨기에 다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의에 대한 책망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모든 인구가 온 힘을 합하여 진선미를 만들어낸다고 하여도 그것이 단 하나의 의도 생산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미 죄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의라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주시는 분을 배척하는 일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온갖 종교적인 선행이나 금욕들이 육체를 좇는 일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스스로 의에 이를 수가 없다는 책망입니다.

 

심판에 대하여는 이 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임하지 아니한 자들은 이 세상의 심판을 두려워합니다. 세상에서 실패하면 안 된다고 죽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노력하는 삶이 오히려 일평생에 죽음의 종노릇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 이 세상의 임금의 세력 안에 사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세상의 상태를 책망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알게 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구하여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것이 아버지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무엇을 증거 고린도전서 2:1-16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의 증거, 즉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것은 전도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자들에게 지혜를 말하는데 이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지혜인데 그것을 세상은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는데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알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셔서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그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주어지기에 성령이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밝히 보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