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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 설교]

 

마태복음 8:1-4 나병환자의 간구 2011. 3. 2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1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라고 되어있습니다. 산상수훈을 마치고 내려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을 말씀하시고 내려오시는 길에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또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록된 사건은 나병환자가 간구하여 고침을 받은 사건만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단지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간구하여 깨끗함을 받았다는 것만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계시란 감추어진 것을 알려주신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감추어져 있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45:15-17절입니다. “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17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숨어계시는 이유는 인간이 죄를 범하여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라고 하든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다 우상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1:18-25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하지만 어리석게 되어서 썩어지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상을 금지하였습니다. 십계명에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온갖 우상숭배에 물들었습니다. 심지어 모세의 놋 뱀과 성전과 언약궤조차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이런 우상숭배는 결국 탐심에서 나옵니다. 근원적인 탐심은 선악과를 따 먹을 때에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고 한 탐심이기에 자신이 신이 되고 싶어서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들이 기도를 하는 것은 어떤 기도가 나오겠습니까? 자기에게 힘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려고 하는 기도가 과연 나옵니까? 때로는 금식을 하고 철야를 하면서 요즈음 봄이라고 많은 교회들이 특별 새벽기도회를 합니다. 그런 기도회가 과연 자기를 부인하는 기도입니까?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잠을 줄이면서 새벽에 정성을 바쳤으니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게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인간의 행위가 무엇인지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이미 기도를 많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가 있고 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무엇인지도 보았습니다. 이 산상수훈을 마치고 최초로 기록된 사건이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구약에서는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신들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이 들면 선지자들에게 부탁합니다.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기도하거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직접 간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신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와서 구하는데 2절을 보시면 절하며 나아와서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나병환자는 사람들 앞에 나아오면 안 됩니다. 전염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격리조치는 부정하게 하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와 접촉이 되면 다른 사람도 부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격리시킵니다. 오래전에 나온 벤허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로마군에 잡혀가서 노를 젓는 노예로 있다가 배가 파선될 때에 군 사령관을 구하여 줌으로 그 사람의 양자가 되어 권세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와 누이가 벤허를 알고서도 나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것도 있지만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3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부정한 자에게 접촉을 하면 부정하지 않은 자가 부정함을 입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부정함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손을 대시면서 내가 원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으로 나병환자는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제사장에게 가서 깨끗하게 되었음을 보이고 예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왜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는 소문이 들리면 사람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왕으로 옹립할 것이기에 십자가 지기 전 까지는 숨기시게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기 전이기에 율법을 다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8:16-17절입니다.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율법만이 아니라 선지자의 말씀도 다 이루시기 위함임을 보여주시기 위한 치료입니다.

 

그러므로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고를 담당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많은데 왜 다 기록이 되지 않았습니까? 요한복음 21:25절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다고 합니다. 요한복음만이 아니라 다른 복음서의 기자도 성령으로 기록한 말씀이기에 자기 임의대로 편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계시란 기록된 계시를 말씀합니다. 만약 지금 예수님 당시의 다른 기록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계시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나병환자의 간구를 통하여 깨끗함을 받았다는 것은 단지 병이 고침을 받았다는 것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부정한 자는 성전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마을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자들이 깨끗함을 입었다는 말은 성전에도 나갈 수가 있고 가정으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그의 부정함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른 성전을 찾을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죄와 부정함과 허물을 담당하신 분이심을 보여주셨기에 예수님 안에서 어떤 죄악과 부정함과 더러움도 거룩함과 깨끗함을 얻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0-31절입니다.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18절부터 보시면 십자가에 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고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지혜롭게 보입니다. 그래서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잘난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아무도 자기 육체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며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오면 병을 고침을 받는다는 말씀으로만 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여 병이 고침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물론 은혜로 고침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고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고침을 받은 자는 간증으로 나오니 알려지지만 고침을 받지 않은 자는 묻히게 됩니다. 그러면 수많은 기도원이나 교회나 은사주의자들이 병을 고친다고 하는데 고침을 받은 자가 많습니까? 고침을 받지 못한 자가 많겠습니까? 정확한 통계를 내어보지 않았지만 후자가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종말의 시대에 무엇이 참된 표적이며 기적입니까? 자기 죄를 알고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얻는 것보다 더한 기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무리 병이 고침을 받아도 그 사람도 죽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질병이 무엇입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이런 죄악에서 고침을 받고 죄 사함을 받아서 영원한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평생을 나사로처럼 살아도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지난 주 오후에 보았던 시편 94편12-13절을 봅니다. “12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주께로부터 징벌을 받고 주의 법으로 교훈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악인은 환난도 없습니다. 시편 73편에 보시면 악인이 늘 평안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고 죽을 때에 고통도 없습니다. 그런데 복이 있다는 사람이 징벌을 받는 이유는 영원한 환난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무엇을 담당하셨는지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나병환자, 전에 번역에서는 문둥병자라고 합니다. 장애인 협회에서는 한센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귀에 익숙한 대로 문둥병이라고 합시다. 문둥병자는 성경에서 무엇을 해도 부정합니다. 접촉을 하는 것이 다 부정합니다. 문둥병자가 성전에 와도, 예물을 드려도, 기도를 해도, 금식을 해도, 선행을 해도 다 부정합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 문둥병자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문둥병자였습니까?

 

이사야 6장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자신이 입술이 부정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환상이 웃시야 왕이 죽든 해입니다. 웃시야 왕은 교만하여 자신이 성전에서 분향을 하려다가 문둥병이 발하여 별궁에 거한 왕입니다. 바로 그 왕이 죽든 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서 자신의 부정함을 고백합니다. 입술을 가렸다는 말은 문둥병자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입술을 가리고 자신이 부정하다고 외쳐야 합니다. 그런 문둥병자가 선지자 자신임을 알았기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제단 숯불에 입술이 지져지면서 내가 깨끗함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 제단에 거룩한 희생 제물로 희생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깨끗함을 입는 것을 문둥병자의 부정함을 예수님께서 직접 손을 대시며 그 부정함을 담당하신 것이 이 사건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어떻게 생각하며 살았습니까? 기도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하였습니다. 은밀하게 하여야 할 금식조차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하였습니다. 구제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하였습니다. 선행도 보이기 위한 선행이었습니다. 이들의 모든 행위들이 문둥병자의 부정함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고발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을 통하여 자신들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이 다 문둥병자였음이 드러나는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어보면 자신이 흉측한 문둥병자로 드러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가 외상이 아물고 나서 붕대를 풀어 거울을 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거울을 깨뜨려 버린다고 합니다.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견딜 수가 없어서 거울을 깨뜨리듯이 예수님을 죽여 버립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단장하고 나섭니다. 성전의 제사와 구제와 기도와 금식으로 단장을 합니다.

 

오늘날은 주일성수와 십일조와 전도와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단장하여 나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는 문둥병자처럼 부정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구하여야 할 참된 간구가 무엇이겠습니까? 지난주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여긴 모든 것들이 다 부정한 것임이 드러납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이 문둥병자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