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마태복음 8:5-13 백부장의 간구 2011. 3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몇 주 전에 성경도구주의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도구주의로 사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백부장처럼 자기 하인을 사랑하여 예수님께 겸손하게 구하여 병을 고침받자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이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병 고침을 받은 그 하인도 죽었고, 지난주에 보았던 문둥병자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이런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심이 없고 단지 나의 문제해결만을 목적으로 하면 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예수님을 버리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 믿으면 부자 되고 병 고침을 받는다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자도 되었고, 병은 병원에서 고치는데 예수님을 찾을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다는 것은 잘 믿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찝찝하니 보험 드는 셈 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없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말씀은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종종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본문으로도 예수님이 증거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인의 병을 고침 받은 이 사람은 이방인 백부장입니다. 지난주에는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보면 문둥병자나 이방인이나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율법을 잘 지킨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자기들만 의롭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시고, 이방인을 간구를 들으시는 일을 통하여 유대인들을 고발하는 동시에 이방인의 구원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으로 들어가 봅니다. 5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십니다. 가버나움은 로마군의 수비대가 있는 곳입니다. 로마군의 수비대는 곳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버나움에 예수님께서 우연히 가셨겠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적이 다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행적들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루고 계시는 현장이 됩니다. 가버나움에 가셨는데 한 백부장이 나아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방인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를 하였겠습니까?

 

이 본문과 평행구절인 누가복음 7:1-10절을 봅니다. 마태복음은 백부장이 직접 예수님께 나아와서 간구하고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축약되어 있습니다만 누가복음은 좀 더 상세하게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평행구절이 됩니다. 마태는 산상수훈 뒤에 문둥병자와 이방인 백부장을 함께 기록하였는데 누가는 이방인만 기록하였습니다. 이방인이 어떻게 예수님께 간구하였는지를 봅니다.

 

마태복음에서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되어 있어도 상관이 없는 것은 백부장이 보낸 사람이 왔기에 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곧 백부장에게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이 백부장이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하였으면 예수님께 대한 자세가 어떠한지를 봅니다. 2-3절입니다. 백부장의 종이 병이 들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중풍 병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백부장의 가족도 아닌 종이 병이 들었는데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오지 않고 유대인의 장로를 보냅니다.

 

자신이 직접오지 않고 유대인의 장로를 보낸 것은 자신이 높은 사람이라서 한 것이 아니라 자기는 감히 예수님께 나아갈 자격도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모습입니다. 이 당시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순사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이가 울 때 순사 온다고 하면 뚝 그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순사란 경찰의 가장 낮은 계급입니다. 경찰의 가장 낮은 계급인 순사가 그 정도라면 로마시대의 백부장은 일제 강점기의 헌병대 대장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식민지의 한 청년에게 감히 나아올 수도 없어서 유대인의 장로들을 보낸 것입니다.

 

3-4절입니다. 이에 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합니다.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유대인의 회당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백부장의 집으로 향하여 가십니다. 5절을 봅니다. 그 백부장의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이르자 백부장이 그 소식을 듣고서 또 벗들을 보냅니다. 이들도 유대인들의 장로들로 보입니다. 이들이 와서 예수님께 백부장의 말을 대신 전합니다.

 

6-8절에서 백부장의 말을 들어봅시다. “봉독” 자기 집 근처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또 자신이 나아오지 않고 다른 벗을 보냅니다. 이들이 와서 전하는 말이 백부장이 직접 나오지 못한 것은 자기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장로를 대신 보냈다고 합니다. 이 백부장의 말은 이렇게 들립니다. 어떻게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를 집에 모실 수가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자신도 상관의 명령을 받아서 순종하고 자기 부하들도 자기의 말에 순종하는데 예수님이 주님이시니 말씀만 하시면 낫겠다고 합니다.

 

로마군대체계의 상명하복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가 되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여! 라고 합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로마의 황제가 주가 됩니다. 황제를 위하여 목숨도 초개같이 버리는 군대 백부장이 식민지의 한 보잘 것 없는 청년에게 주여! 라고 합니다. 백부장의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9절입니다.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 유대인들의 장로도 있었으며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누가복음에서는 10절만 나옵니다. 보냄을 받은 자들이 돌아 가보니 종이 이미 나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단지 예수님이 겸손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이 눈이 번쩍 뜨여져야 합니다. 유대인들을 알지 못하였는데 이방인이 알아보았다는 것은 유대인들을 눈이 감겼고 이방인이 눈이 뜨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마태복음을 다시 보아야합니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차이가 있는 것은 그 복음을 듣는 청중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8:11-13절입니다. 먼저 13절을 보시면 누가복음의 말씀대로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돌아가 보니 그 종이 이미 나아 있었습니다. 언제 나았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순간에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말씀대로만 세상이 돌아가게 되어 있고 결론 나게 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의 지진과 난리의 소문이 들려도 성도는 두렵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렇다면 증인이 되어야지요! 제가 아는 목사님이 세미나가 있다고 해서 꼭 한번 와 보라고 했습니다. 월요일 오후에 세 시간 강의를 듣고 왔습니다. 인터콥 선교회 대표인 최바울 선교사였는데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직접 가서 들어보았습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진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다 이루어지면 세상의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인데 이 말씀을 믿고 선포하고 그대로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세상의 결론을 모르고 삽니다. 그저 내 눈앞에 닥친 현실만 현실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사라질 것들이지만 예수님의 말씀만이 참된 현실이며 영원한 현실이 됩니다. 일본의 지진과 해일과 쓰나 미와 핵 원전의 폭발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그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들 각자의 삶과 꿈과 희망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목표와 방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대한 쓰나 미에 한 순간에 휩쓸려 갑니다. 자신의 생각과 목표가 그 쓰나 미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세상은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저는 감히 예수님께 나아갈 자격도 없습니다. 저의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말씀만 하시면 그 말씀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 이런 고백이 나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정말 원하십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십니까?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것을 찾으라는 말씀에 아멘이 되십니까?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는 살 것이요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말씀이 기쁨으로 받아들여지십니까?

 

11-12절을 봅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서 너희는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몰랐습니다. 자기들의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메시아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방인들이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예가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얼마나 교회를 오래 다녔습니까? 모태로부터 다녔고 삼대 사대 째 입니까? 그런데 과연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께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내가 주인이 되어서 예수님을 오라하고 가라고 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주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가 내가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나가 깨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겉 사람이 무너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겉 사람이란 타락한 아담의 본성입니다. 이 겉 사람이 날마다 깨어지고 속사람이 날마다 강건하여 져야 합니다. 속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마음과 생각과 삶의 방향과 목표를 장악하고 가시는가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을 주로 믿는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백부장처럼 간구하는 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여! 말씀만 하옵소서!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든 만사가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이 이스라엘에서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다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역사가 종결 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이 이방인들이 추구하는 것을 쫓아 달려간다면 교회가 이방의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런 백부장의 모습이 두 사람 더 나옵니다. 십자가의 처형을 집행한 로마의 백부장이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이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천사의 지시를 받아 베드로를 청합니다. 베드로가 왔을 때에 베드로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베드로가 일으키며 복음을 전하자 성령이 임하고 그 집안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느새 유대인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밤에 우리의 간구가 이 이방인 백부장의 간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께서 가라시면 가고 오라면 오겠습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이런 고백이 사람의 능력으로 안 되기에 오늘도 은혜의 선물로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