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방송도중 시스템 다운되어 설교가 둘로 나누어 졌습니다 이해바랍니다]

[음성 설교1]  설교 처음 1분30초정도 소리가 나지않습니다 


[음성 설교2] 



에스겔 6:1-14 여호와인줄 알리라 2011. 12. 21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언덕과 시내와 골짜기를 향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4 너희 제단들이 황폐하고 분향제단들이 깨뜨려질 것이며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5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해골을 너희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6 내가 너희가 거주하는 모든 성읍이 사막이 되게 하며 산당을 황폐하게 하리니 이는 너희 제단이 깨어지고 황폐하며 너희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너희 분향제단들이 찍히며 너희가 만든 것이 폐하여지며 7 또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14 내가 내 손을 그들의 위에 펴서 그가 사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 황량하고 황폐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에스겔 선지자가 무언의 상징적인 행위를 보여주고 나서 그 행위들의 의미를 말로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1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는 말씀이 임하여야 전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임하지 않으면 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았는데도 전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들의 마음에 상상하는 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내용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들도 계시를 받았다고 하지만 거짓말 하는 영에 의하여 받게 되면 그들 자신이 속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역대하 18장에서 시드기야와 미가야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주의하여야 하는 것은 무엇을 보았다거나 들었다거나 나에게 말씀이 임하였다는 것은 다 엉터리로 보아야 합니다. 성령은 반드시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증거 하시는 것이지 기록된 말씀 외에 다른 것을 추가하거나 빼거나 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성경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것이지 성경과 상관이 없는 것을 전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인데도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서 온갖 표적과 기적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은 듣지도 말고 붙잡지도 말아야 합니다. 과연 말씀이 어떠한지를 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참된 선지자들은 자기에게 임한 말씀을 전하는데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1-3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스라엘 산들을 향하여 예언합니다.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언덕과 시내와 골짜기를 향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라고 합니다. 아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산과 언덕과 골짜기를 칼로 치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산들의 문제가 아니라 산당들을 치신다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유가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그런 우상의 전들이 산당입니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산당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습니다만 성전이 세워지고서는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안에 산당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런 산당들은 우리의 시골마을에 서낭당처럼 마을마다 있었습니다. 커다란 나무, 커다란 바위, 샘물이 나는 골짜기 마다 정성을 빌던 우리나라의 모습과 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사야 57:5절입니다.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예레미야 11:13절입니다.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의 제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도다” 이스라엘 온 땅에 우상이 가득합니다. 이런 우상숭배에 얼마나 열심인지 길이 멀어 피곤하여도 헛되다고 하지 않고 달려갑니다. 온갖 좋은 것을 다 갖다 바칩니다. 심지어 자기 자식까지 우상의 제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산들과 언덕과 골짜기에 대하여 전하는 말씀은 산당들을 향하여 심판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산당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산당의 파괴만이 아니라 그 산당을 만들고 산당에서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며 그들에게 복을 빌던 모든 자들도 그 산당의 파괴와 함께 죽임을 당하는 것이 4-7절까지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봅니다. “봉독” 산당의 파괴와 함께 이스라엘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해골을 제단 사방에 흩어버리시고 성읍이 사막이 되며 죽임을 당하고 엎드러지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심판하심을 통하여 무엇을 알리고자 하십니까?

 

7절입니다.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렇게 심판을 하십니다. 이런 심판의 근거는 레위기 26장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언약의 저주가 임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배반하였고 그 배반한 결과로 심판을 받게 하시는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렇게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모든 우상은 헛것이며 살아계신 참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에서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65회나 나옵니다. 심판을 통하여서 여호와를 알게 하시고 구원을 통하여서도 알게 하십니다.

 

8-10절입니다. “8 그러나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질 때에 내가 너희 중에서 칼을 피하여 이방인들 중에 살아남은 자가 있게 할지라 9 너희 중에서 살아남은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들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 10 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 처절한 심판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가 있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살아남은 자가 사로 잡혀서 이방인들 중에 있게 하시는 것도 그렇게 하신 분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살아남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첫째, 기억하는 것입니다. 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여호와를 근심하게 한 것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구약의 선지서를 보면 이러한 이스라엘의 음란한 모습은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고 이방나라들과 언약을 맺으며, 진멸하여 없애라고 한 온갖 우상들과 연합하는 것을 보고 음란한 행위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신들의 가증한 모습과 음란한 모습을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나라가 망하고 온갖 산당들이 무너지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오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한탄하게 합니다. 한탄한다는 말은 역겨워한다는 뜻입니다. 자신들의 음란한 행위를 기억하면서 한탄하고 역겨워하게 하십니다. 그 모든 가증한 일을 우리가 행하였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셋째로, 알게 하십니다. 오늘 설교제목처럼 이렇게 하신 분이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남은 자를 통하여 자신들의 죄를 기억하게 하고 그 죄로 인하여 한탄하게 하고 여호와를 알게 하시는 자들은 언제나 소수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에스겔 선지자는 전하여야 합니다.

 

11-14절입니다. “봉독”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하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 전하여야 할 말씀은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므로 마침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망하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진노입니다. 이런 진노로 인하여 4-7절에서 말씀한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 죽임당한 시체들이 평소에 그렇게 좋다고 열심히 사모하며 달려간 온갖 우상숭배의 제단들에 내팽개쳐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심도 여호와인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국가적으로 언약을 맺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나라가 온통 우상숭배를 하여도 이스라엘 국가처럼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라면 우상숭배를 하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시겠습니까? 온갖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을 징계하십니다. 우상을 계속하여 따라가지 못하도록 막아내십니다. 이것을 환난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환난은 성도에게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가 아닌 자는 우상을 섬겨도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땅의 산당들이 무엇입니까? 마을마다 있는 산당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야 처음부터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산당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이 땅에 수많은 교회들이 모여서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우상들을 섬기면서 구한 것을 구하고 있다면 우리가 교회당을 만들고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이것이 이스라엘의 산당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여 우상숭배를 하다가 심판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가 어떤지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서 애굽에서 자기들을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들을 위한 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철저하게 심판하심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데 심판을 통하여서도 알게 하시고 남은 자를 통하여서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든지 구원을 받든지 사람이 목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심이 목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바로 아는 것이 이스라엘이 사는 길입니다.

 

호세아 4: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합니다. 그 지식이란 호세아 4:1-2절에서 이렇게 증거 합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만 가득한 이스라엘입니다. 이런 모습이 교회는 아닙니까?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만 있다면 이것이 산당입니다.

 

호세아 6:1-3절입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이것이 이스라엘이 사는 길입니다. 계속하여 6절을 보시면 여호와는 제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애를 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여호와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종교적인 형식만 붙들었습니다.

 

그 결과를 마태복음 9:9-13절을 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니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느냐는 힐난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13절입니다.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아십니까?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마치 여호와의 증인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뜻이 예수님을 통하여 죄인을 부르시는 것을 통하여 여호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여호와도 모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절을 보시면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이 모든 성경이 구약입니다. 여호와인줄 알게 하신다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17:1-3절입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영원한 생명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니면 썩어지고 불타 없어질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에 관심이 있습니까? 잠시 보이다 사라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며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