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1:31~34   새 언약      2014. 7. 2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약에서 언약의 정점으로 볼 수 있는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외우는 방법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주일 날 6월 29일이라서 외울 수 있도록 말씀드린 것 기억나십니까? 요한복음 6:29절에서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새 언약인데 새 언약의 내용이 이미 구약에서 증거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외우는 방법은 3.1절을 생각하면 됩니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만세를 불렀습니다. 종교에서 해방되는 구절이라고 생각하시고 예레미야 31:31절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본문 31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반드시 이루실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루실 일은 날이 이르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는다고 하십니다. 새 언약을 맺는 다는 것은 옛 언약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이란 모세 언약을 말합니다. 모세 언약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언약을 받은 사람들이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이 피로 언약을 체결하였지만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피로 언약을 세운지 40일도 안되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기들을 인도할 신이라고 경배한 자들입니다. 이로 인하여 첫 돌 판이 모세에 의하여 깨어집니다. 만약 깨어지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다 죽어야 마땅합니다. 언약의 돌 판이 깨어진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만들게 하시고 그 돌 판은 언약궤 안에 담아 속죄소라는 뚜껑으로 덮어두라고 하셨습니다. 법이 속죄소로 덮어 지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 법 앞에 설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32절입니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어 그들의 손을 잡고 이끌어 내었는데도 그들이 언약을 깨뜨렸다고 합니다. 몸은 애굽에서 끌려 나왔지만 그들의 마음은 애굽에서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천사의 손에 끌려 나오다가 뒤를 돌아본 까닭에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처와 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율법으로는 어느 인간도 의에 이를 수가 없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을 맺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모세 언약 이전에 아브라함 언약이 먼저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언약입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대사회는 가장의 신앙이 가족 모두의 신앙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브람도 그런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워갑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내시는 자기 약속에 전능한 하나님임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자식이 없었던 아브람에게 자식을 주신다고 하실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됩니다. 이 믿음으로 아브람은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았지만 다시 자기 혈육의 능력으로 낳은 자식이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할례를 행한 후에 낳은 이삭이 약속의 자녀라고 하셨습니다. 이 내용의 결론을 신약에서 봅니다. 
 
갈라디아서 4:21~26절입니다.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이미 아브람에게서 두 언약을 말씀합니다. 아브람의 혈과 육으로 생산할 수 있는 이스마엘이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 하갈이며 지금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바울사도 당시의 예루살렘이 바로 옛 언약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란 아브람의 혈과 육이 부인되도록 할례를 행하고 사라는 폐경 이후에 태어나는 자식이 언약의 자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언약은 옛 언약과 달리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으로 태어나는 자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자녀는 없는데서 있게 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언약을 일방적은 은혜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 언약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스마엘을 통하여 율법이 무엇인지도 보여준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8~14절입니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모세 언약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는 이방인도 포함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3:15~22절입니다.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아브라함 언약과 모세 언약을 잘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의 언약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하시기 위하여 모세 율법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주신 것은 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역할을 율법이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더욱 신실하게 되도록 하는 기능입니다. 그 기능이 모든 사람을 죄 아래에 가두어버립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무엇을 얻습니까?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본문 33절입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신다고 합니다. 모세 언약은 돌 판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에 기록하신다고 합니다. 마음에 기록한다고 하는 것은 새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새 마음을 주시는 것은 주의 성령으로 됩니다. 이러한 새 언약을 이루실 날에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새 언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이러한 언약의 목표는 동일합니다. 그런데 옛 언약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구약전체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약 성경에서 새 언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 되는 길은 새 언약으로만 됩니다. 

에스겔 36:24-28절입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힐 대로 더럽혔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인도하여 내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시는 일입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시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그래서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십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새 언약 하에서는 그 죄를 사하여주시고 다시는 기어조차 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옛 언약 하에서는 여호와를 알라고 계속하여 말해야합니다. 율법이 주어졌기에 법을 상기시키면서 여호와를 알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낫게 하여 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으로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호세아 6장은 잘 보여줍니다. 

호세아 6:1~11절입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 강도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왜 새 언약으로만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께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구약성경 전체가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13:23절을 다시 봅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새 언약을 예언한 것은 옛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상이 이러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율법지킴이나 의로운 행위로도 하나님의 생명에 이를 수가 없음을 보이면서 새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이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이 되는 것이며 그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조차 하지 아니하십니다. 이 새 언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누가복음 22:19~20절입니다. “19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떡을 주시면서 자신의 몸이라고 하십니다. 또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옛 언약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의 구속을 예수님은 자기 살과 피로서 이루어내십니다. 피는 곧 생명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생명으로 언약을 맺으시는 것이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한 새 언약을 맺을 날에 대한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로 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3~26절입니다.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바울사도는 최후의 만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주의 계시로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입니다. 이것을 주님 오실 날까지 전하는 자가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고린도후서 3:6~18절입니다.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12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지금도 모세의 수건이 벗겨지지 않으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성경을 율법의 조문으로 보기에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죄의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수건들이 그리스도 즉 새 언약으로 들어가야 벗겨집니다.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새 언약은 새 영으로 새 마음이 됨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그 의의 선물을 자기 백성에게 들고 오신 분이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으며 주의 영으로 인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히브리서 8:7~13절입니다.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예레미야서의 새 언약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그 완성이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9:11~15절입니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창조 속에 사람의 손으로 지은 장막은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성소에는 짐승의 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피로서 단번에 영원히 속죄를 하신 것이 바로 새 언약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로 천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심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히브리서 12:22~29절입니다.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새 언약의 결론입니다. 모세의 경고를 거역한 자들도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의 피를 거역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세가 옛 언약을 받을 때에 땅이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또 한 번이라고 하신 이유는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원히 존재하도록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모든 것들이 다 변동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언약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은 변동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아니할 나라를 받았기에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새 언약의 백성들이라면 세상에 사는 동안 많이 흔들릴 것입니다. 영원하지 못한 것들을 흔들어 무너뜨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흔들어버림으로 흔들리지 아니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 없습니다. 다 변동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들은 이 역사 속에서의 삶의 과정이란 흔들리는 것을 붙들지 않고 영원한 것을 붙들게 하시는 기간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흔들릴 때에 불안 해 하지 마시고 새 언약의 완성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