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3:1~13   크고 은밀한 일    2014. 7. 30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붙들고 얼마나 많이 부르짖었습니까? 교회 다니며 기도 열심히 한다는 사람들치고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냥 기도하면 안 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라고 하면서 성경구절 외우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77과 333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말씀과 오늘 본문 예레미야 33장 3절의 말씀으로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시는 분이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줄 것이라고 하면서 기도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식의 해석과 적용이라면 사람들이 좋아할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것을 가장 알고 싶으십니까? 번영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도시계획이 어디에 이루어지는지 도로가 어느 지역으로 통과하는지 기도하면 알려준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간증들도 그런 식의 간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개인적인 어떤 일들을 무당이 알려주듯이 말하기도 하고 종말의 프로그램이 어떠한지를 알려주어서 사람들을 자기의 종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증거 하는 크고 은밀한 일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충분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원하는 크고 비밀한 일들을 따로 정하여 놓고 기도해서 알아내려고 하는 자들은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여도 자기 욕망에 이끌려 헛된 것을 보고 믿게 됩니다. 그러면 과연 크고 은밀한 일이 무엇입니까?

33:1절을 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습니다. 왜 갇혀 있습니까?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지금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바벨론의 군대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적들이 멸망하거나 아니면 포위라도 풀고 자기들의 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기에 시위대 뜰에 가두어버린 것입니다.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임합니다.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첫 번째 임한 말씀은 기업 무를 권리를 행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데 사촌의 밭을 사서 공개적으로 매매증서를 만들어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이켜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였습니다. 

33:2~3절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전히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중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합니다. 표준 새 번역으로 다시 보겠습니다. “2 땅을 지으신 주, 그것을 빚어서 제자리에 세우신 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이름이 '주'이신 분께서 말씀하셨다. 3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 여기서는 땅을 지으신 주님으로 번역합니다. 땅만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다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그 마음의 뜻대로 시작하시고 이루시고 마감하시는 자기 약속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시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신다고 하십니다. 그 크고 은밀한 일이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1:17~23절입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서 설교시간에 이 본문을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이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나의 현재 상태가 더욱 확장 발전되는 일을  꿈꾸며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향하여 여호와께서 부르짖으라고 하시면서 크고 은밀한 일을 알려주신다는 내용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사도가 기도한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을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였는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70년이 지나서 돌이켜 주신다는 이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뜻을 누가 알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이 시대에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망하는 길이며 자기 죽음의 길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나라가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간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따라 새롭게 만들어 내시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신약의 백성들도 동일하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리에서 분리시켜 내십니다. 이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이루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에 붙들린 자들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인하여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바울사도가 기도한 내용들이 우리의 삶의 내용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당시의 사람들이나 오늘 지금 우리들이나 간에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이러한 내용들이 싫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에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여도 결코 믿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안의 백성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겠습니다. 

33:4~5절입니다.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 싸우려 하였으나....”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성벽가까이 흙으로 대를 쌓아올립니다. 그러자 성안의 사람들은 성읍의 가옥과 왕궁을 헐어서 성벽을 더 높이고 있습니다. 자기의 집과 왕궁까지 헐어서 바벨론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합니다. 이것 이상의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이 여호와를 버린 인간의 실상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집과 내가 사는 나라를 지켜주어야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그런 당연한 생각을 다 무너뜨리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며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것을 누가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이 땅의 교회의 현실도 예레미야 시대와 같습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이런 교회와는 상관이 없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가옥도 우리나라도 지켜주신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비례하여 우리의 집도 나라도 부강하여 진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은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이 진리 관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의 가치관들이 무너져야 하는데 교회를 다닐수록 이런 가치관들이 더욱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을 알려주시는데 그 내용은 바로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자기 집안이 망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무너지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처음에 받은 사역의 내용이 계속하여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1:10절의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무너뜨린 후에 세우며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뽑히고 파괴되고 파멸되고 무너져야 할 것들을 끌어안고 있으면서 이런 것들을 더욱 견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자기의 집과 왕궁조차 무너뜨려서 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이 성읍을 무너뜨리셔야 합니다. 

33:5절입니다.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자신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왕궁과 가옥까지 헐어서 바벨론을 대적하려고 성읍을 더 높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미 앞에서 예루살렘 성과 그 성전에서 어떤 우상숭배가 가득한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성읍은 심판을 받아야합니다. 이러한 철저한 심판을 받고나서 다시 자기 백성을 만들어 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입니다. 
 
33:6~9절입니다. “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하나님의 일하심이란 인간의 행위들이 죄악으로 부정되고 난 자리에 하나님의 일하심만 오롯이 담기는 방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일이란 우상 숭배 뿐이었습니다. 우상숭배란 탐심입니다. 하나님도 자기를 지켜주고 자기의 가정과 자기의 나라를 지켜 주어야 한다는 생각들을 다 뽑아버리는 것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입니다. 완전한 절망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은 치료하시고 낫게 하시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며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우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그들의 모든 죄악을 사하심으로 세계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며 그들에게 베푸신 모든 복을 인하여 열방이 두려워하며 떨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33:10~11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정도로 망한 성읍에 다시 즐거움과 기쁨과 신랑과 신부의 소리가 나며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찬송하는 소리가 다시 들리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33:12~13절입니다. “1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이곳과 그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가 살 곳이 있으리니 그의 양 떼를 눕게 할 것이라 13 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서 양 떼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황폐하여 사람도 짐승도 없는 곳을 다시 회복시켜서 목자가 살 곳이 되게 하며 그의 양 떼를 눕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크고 은밀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은밀한 일을 히브리어 문자대로 번역하면 ‘사람이 알 수 없는 큰 것들과 접근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너무 커서 접근할 수 없기에 사람으로 결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이러한 일은 사람들이 볼 때는 완전히 망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나라가 망하는데 조용히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가옥과 왕궁마저 헐어서 대적을 막아내는 것이 자기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의 모습일 텐데 오히려 바벨론을 대항하지 말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크고 은밀한 일이라고 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일은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가십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이런 내용들을 문자대로 성취가 된다고 보면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이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문자대로 믿는 유대인들이 지금 팔레스타인 땅에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나라가 미국이며 미국의 눈치를 보는 대한민국도 이런 일에 대하여 분명한 언급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이런 일에 있어서 분명하게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세대주의적인 해석이 많기 때문입니다. 문자대로 다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런 선지자의 말을 통하여 문자대로 성취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이러한 예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통하여 성취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온전한 성취가 아니라 그림자의 역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신약으로 말하면 이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약속의 성취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마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일로 인하여 자기 백성을 돌이키시는 일을 하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들어가는 길이 자기부인의 길이며 멸망의 길로 보이지만 이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새 사람이 만들어내시는 것을 영적인 이스라엘 또는 교회라고 합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을 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지혜나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십자가의 미련함입니다. 

마태복음 11:25~27절입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그 때란 바로 앞의 사건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많이 행하신 마을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보고 말씀하십니다(20~24). 이 사건 바로 앞의 말씀을 봅니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2)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사람들은 세례요한의 사역도 예수님의 사역도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이기에 알아보지를 못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오직 그 비밀한 지혜는 지혜의 아들들로 인하여 옳다 얻습니다. 그 행한 일 앞의 각주를 보면 그 자녀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만이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 13:10~17절입니다.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십자가의 도입니다. 

고린도전서 1:18~24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이 무엇인지 그 결론이 이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이 세상에서 저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임을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란 세상이 결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크고 비밀하며 은밀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유일하게 아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십자가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십자가의 도를 말하기는 하지만 그 십자가의 도를 가지고 다시 이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역시 교회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란 세상이 볼 때 어리석고 미련하여 돌아 서버리는 일이 날마다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듣고 남은 자들이 어떤 모습인지 이어지는 25~31절을 봅니다.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이 나타난 사람은 결코 자기의 육체를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똑똑해 지고 싶고 세상의 자랑이 되고 싶은 자들은 십자가의 도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복음 안다는 자신을 치장하고 싶은 자들도 머물 수가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이 나타난 자들은 자신이 행한 일이 죄 뿐임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 이들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지혜이며 의로움이며 거룩함이며 구원함이 된다고 믿어지는 자들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들을 복음으로 더욱 풍성히 알고 믿고 누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에베소서 3:8~11절입니다.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에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도란 이 놀라운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들을 더욱 풍성하게 알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