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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1~8 날 때와 죽을 때 2018. 12. 5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국가부도의 날' 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1997년도에 IMF(국제통화기금)라는 생소한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온 국민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위기가 올 것을 미리 알고 막으려고 하는 자가 있었는가 하면 그 위기를 미리 알고 이익을 챙기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영화의 내용으로 소개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위기, 국가적인 위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온 세상은 때를 알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경제원리로 때를 찾기도 하지만 점집을 찾기도 하고 종교인들은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을 찾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를 찾는 것은 원화소복(遠禍召福)이 목적입니다.

 

오늘본문 1절을 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누구나 합니다. 저도 많이들은 이야기인데 사람들은 일생에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면서 그 때를 잘 잡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에 답답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주팔자를 보고 운명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도 다 그 때를 알고 잡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그런 때를 알아보려고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들에게 기도 받으려고 합니다. 점치는 사람이나 기도하는 사람의 말이 우연하게 맞아지면 그때부터 그 사람의 종이 됩니다. 그래서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때를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전도서 3:11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때라는 것은 사람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일어나는 모든 것은 다 주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11:36). 그러므로 사람으로서는 측량할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전도서 3:14절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임을 전도자는 알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때를 알려고 하는 것은 여호와 경외가 아니라 자기 생존의 때를 확실하게 잡아서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신에게 의존하거나 빌지 않는 멋진 인생을 살겠다는 것이 때를 찾는 것입니다.

 

전도서 7:13~14절입니다. “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사람은 형통한 때를 좋아합니다. 곤고한 날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여 두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이 장래 일을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장래 일을 미리 안다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여호와를 경외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때는 나를 중심한 때가 아니라 주님의 때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이라고 보지 않고 일반적인 사람의 교훈으로 본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물을 관찰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물을 관찰하다 보니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봅니다. 달의 변화를 봅니다. 사계절을 파악합니다. 농부는 언제 씨를 뿌리고 거두어야 할지를 때를 따라서 알게 됩니다. 바닷가의 사람들은 물때를 압니다. 생존에 관한 것들의 때를 알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관찰하여 보니 사람이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는 것도 알게 됩니다. 잠언의 때를 이런 식으로 보면 쉽습니다. 그러면 인생살이도 다 때가 있는 거야 하면서 좀 달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통하여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 해야 합니까?

 

다시 본문 2절을 봅니다. 태어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어나는 것은 나의 뜻대로 안 됩니다. 태어나보니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난 것입니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났다면 행복한 삶이 주어졌다면 별 불만이 없겠는데 가장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죽는 것은 내 뜻대로 해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합니다. 이런 자들만이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한 철학자들이나 불굴의 의지로 자기의 뜻을 이룬 자들도 때가 자기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편해 합니다.

 

어느 분도 복음을 들으면 하나님의 주권을 너무 강조하여 싫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살이에서 죽고 사는 일 외에는 사람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그렇게 성취하면서 살아온 분입니다. 오늘 본문처럼 날 때와 죽는 때야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뜻을 세우고 이루어 내어야 하는데 복음은 무력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갈라디아서 6장을 말씀드립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이 세상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생존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여야 생존의 것을 더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이 아니기에 썩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성령이 임하여야 되기에 우리가 심고 거둘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심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심는 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거두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 2절입니다. 사람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태어난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지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가 있다고 여기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나의 운명이 보이지도 않는 신에 의하여 정하여져 있다면 그것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한 철학자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결정하는 일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는 것은 이미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의 죽음일 뿐입니다. 자신의 살고 죽음이 자신에게 달린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반항하기 위하여 스스로 죽은 것은 죄로 인하여 죽은 자의 죽음일 뿐입니다. 날 때와 죽으실 때를 아시는 분이 유일하게 계십니다.

 

빌립보서 2:6~7절입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1)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2)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3)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비워 스스로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입니다. 자신이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 오실 것을 아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으로(3:15) 처녀에게서(7:14) 한 아기로(9:6) 오실 것이 구약에 예언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4:4절입니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때가 되었다는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 역사 속에서 이루실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약의 시대가 다 이 때를 위하여 예비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그 역사의 때를 예언하였습니다. 거대한 신상과 네 짐승의 환상을 통하여 바벨론, 메대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을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제국의 흥망성쇠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로마시대에 그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 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십자가로 속량하셔서 아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날 때와 죽으실 때를 아시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공생애 기간에 그의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6:1~5절입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유월절에는 예수님을 죽이지 말자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많기에 민란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명절이 끝나고 조용해지면 그 때 죽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때를 이들이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이는 자들은 죽을 때를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시는 분이 그 날을 정하신 것입니다. 그 날이 유월절입니다.

 

왜 유월절 이어야 합니까? 구약의 성취이며 새 언약의 백성들을 만들어 내시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국가가 출발하는 것이 출애굽입니다.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언약하신 대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출애굽의 가장 정점은 유월절 밤입니다. 애굽 전역에 아홉 가지 재앙이 쏟아진 후에 마지막 한 가지 재앙이 장자의 죽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자의 집에는 죽음의 천사가 넘어간다는 약속을 모세를 통하여 받았습니다. 그 말씀대로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장자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않은 집은 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갈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실 것을 아실뿐만 아니라 죽으실 때도 아시고 그 십자가의 길로 유월절에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심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과 죽으심의 때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대로 일어난 일입니다.

 

요한복음 10:11~18절입니다.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날 때와 죽으실 때와 죽으시는 이유를 분명히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 일을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그 영을 우리에게 넘겨주시면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면 오늘 본문의 2절이 거저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의 때를 아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음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압니다. 그러나 그 태어남과 죽음의 때를 사람들이 안다는 것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사자성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태어남과 죽으심을 알 뿐 아니라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살아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마태복음 16:21절입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마태복음에서만 두 번이나 더 말씀하십니다(17:23, 20:19).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복음이란 성경대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고전15:3).

 

그러므로 복음이란 날 때와 죽으실 때와 다시 살아나실 때를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내신 예수님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입니다(2:5,6). 이러한 자들은 세상의 태어남과 죽음에 대하여 단지 일반 사람들이 아는 그런 태어남과 죽음으로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재림을 생각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자들이 날 때와 죽을 때를 진정으로 아는 자들입니다. 생사의 비밀을 알고 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