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마태복음 6:9-13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2011. 1. 26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진리관이 무엇입니까? 자기 존재의 정당성입니다. 내가 있다는 것에서 출발을 합니다. 내가 없으면 가정이든 교회든 국가든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진리의 중심을 자기 자신에게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가정, 교회, 회사, 국가는 무조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위치에 이르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삽니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생각과 삶의 태도가 이미 유혹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5절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하와를 유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사탄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하나님처럼 될 줄 알고 금지하였다고 합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서 아담과 함께 따 먹었습니다. 최초의 유혹이 하나님처럼 되는 유혹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아담의 후손은 다 이 유혹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유혹을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다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자기 좋은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자기 좋은 대로 행하시면 그것이 선입니다. 그런데 유혹에 넘어간 우리가 자기 좋은 대로 행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선이라고 해도 이미 선악과를 따 먹은 죄인이기에 악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선과 악이라는 구조 속에 빠져있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가장 선한 것이라는 것을 다 모아서 누가 보아도 감동할만한 하고 희생적이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입니다. 선악과 이후의 인간의 모습이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온 세상에 죄악이 관영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살펴볼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은 시험에 들게 하지 않도록 청원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시험을 누가합니까?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시험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시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험을 유혹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시험이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기 위한 시험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은 유혹이 아니라 테스트요 훈련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유혹을 합니다. 이런 시험과 유혹에 대하여 구분하고 있는 내용을 봅니다.

 

야고보서 1:12-15절입니다. “봉독” 여기서 시험이라고 되어 있는 단어를 공동번역에서 유혹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혹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이 끌려 미혹이 된 것입니다. 처음사람 아담과 하와가 미혹이 된 것도 자기 욕심에 끌려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 들어가게 된 것이 다 우리의 욕심에 이끌려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든 아담의 특징입니다.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12절을 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고 시련을 견디어 낸 자에게 주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시험에서 참고 견디고 이긴 자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데 도대체 누가 시험을 이길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날마다 유혹에 넘어갑니다. 얼마나 많은 유혹들이 들이닥치는지 설교도 잘하고 싶고, 교회도 더 키우고 싶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은 유혹들이 날마다 일어납니다. 이런 유혹을 이기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 금욕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2:20-23절입니다.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인간의 금욕적인 행위들이 지혜 있게 보이지만 그러나 오직 육체를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습니다. 몸을 괴롭게 하기 위하여 철야기도를 하고, 금식을 하고, 자기 몸을 채찍으로 때려도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야고보서 1:16-18절을 봅니다.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속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우리의 금욕적인 행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 최고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뜻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허물과 죄로 죽어있기에 죄와 유혹에 빠져 사는 것이 재미가 있지 여기에서 나오기를 본성적으로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셔야 합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셔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어내십니다. 그 길은 유혹을 받으시고 유혹을 이겨내시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들 그 어떤 누구도 이겨내지 못한 시험을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유혹을 이겨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셔서 40일 금식 후에 유혹을 받으십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이 받는 세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물세례를 받으심으로 죄 아래 들어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죄 아래 오셔서 죄를 이기십니다.

 

마태복음 4:1-11절입니다. “봉독”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십니다. 사십일을 금식하신 후에 시험하는 자가 왔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합니다. 이 유혹을 거부하기 힘들도록 무슨 조건을 다는 것입니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돌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시면서 마귀를 물리칩니다.

 

오늘 우리에게 오는 시험도 이런 시험입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그렇게 가난하게 사는 것이 게 무슨 꼴이냐고 합니다. 성도 가운데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보고서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부자 되고 건강하고 세상에서 성공한다고 합니다. 이런 가짜 복음이 한국에 가득합니다. 잘못된 미국제 번영신학이 수입되어 그것에 현혹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은 현 정부가 추구하는 방식이며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을 마치 성경의 진리인양 증거 하고 있는 것은 이미 우리가 유혹 안에 들어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두 번째는 마귀가 시편 91:11-12절을 인용하면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마귀도 말씀을 사용하여 유혹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약속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약속이 있기에 이 약속을 믿고 구하면 그대로 된다고 합니다. 그 약속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도 안하고 그저 내 욕망에 끼워 맞추어 성경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신명기 6:16절 말씀을 가지고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처음 유혹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을 들고 나오거나 성경에서 자기 유리한 구절을 끌고 와서 자기에게 적용시키는 것을 하나님을 시험한다고 하십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었을 때에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라고 합니다.

 

민수기 14:22-23절입니다.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영광과 출애굽과 광야의 이적을 보고서도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유혹을 예수님은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됨을 조건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성경을 인용하여 유혹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세 번째 유혹은 천하만국의 영광입니다. 마귀에게 절하면 세상의 영광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세상의 영광과 부귀를 가진 것을 보십시오! 삼성 회장, 현대 회장, 엘지 회장이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한국 최고의 재벌들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의 영광과 권세를 준다고 말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자들의 말을 듣고 따라가는 자들이 또한 얼마나 많은지 우리 주변을 보면 다 드러납니다. 사람들에게 마귀에게 절하여야 그런 것이 주어진다고 하면 기겁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보고 그렇게 말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혹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유혹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있습니다.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한 계속하여 오는 유혹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고 좋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자고 하지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유혹은 예수님의 십자가에까지 따라 붙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마귀가 유혹한 그 유혹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마태복음 27:39-43절입니다. “봉독”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른 하나님의 아들 됨의 표적과 증거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짖음에도 하나님은 외면하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저주 받아 죽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합니다. 이것이 유혹자를 이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험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끊임없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경에 있는 이런 말씀들이 이루어지게 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약속은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시고 그 결과로 자기 백성에게 선물을 주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기에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히2:18).

 

히브리서 4:14-16절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시험을 이기셨고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