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9-13 악에서 구하소서! 2011. 2. 2

 (오늘 녹화,녹음하지 못하였습니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마지막 단락입니다. 그 다음 괄호안의 내용은 기도를 마치고 하나님께 대한 송영입니다. 오늘은 악에서 구하여 달라는 내용을 보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악이라고 할 때에 무엇을 악 이라고 합니까? 국가의 예를 들면 국민이 세금을 내서 공무원에게 월급을 주고 군대를 조직하게 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무원이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군대가 정권을 잡기 위하여 동족을 학살하는 것을 악이라고 합니다.

 

 

소말리아 해적이 우리나라의 상선을 탈취하여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악이기에 우리나라 군대가 응징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악이 제거가 됩니까? 사살당한 8명의 가족들은 한국에 대하여 이를 갈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복수를 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러다가 정말 다시 위해를 가하고 테러를 하면 다시 응징을 합니다. 복수혈전입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가 상대를 악이라고 합니다. 빈 라덴과 그를 따라는 자들은 미국을 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전쟁은 성전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테러하는 그들을 악이라고 하여 제거하려고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절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전부 상대적입니다. 이미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손들이기에 선과 악의 규정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둡니다. 선악과의 유혹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이었기에 이 유혹이 각 사람에게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선과 악의 기준을 자신의 이익에 결부시키는 것입니다. 때로 자기희생의 이타적인 행동이 나온다고 하여도 그것은 더 큰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자기 가치의 실현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악이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7:7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도 믿지도 아니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까지 다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거룩한 종교적인 행위조차 다 악하다고 하셨기에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세상의 행사들을 전부 다 악하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악한 것도 있지만 다 악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선한 일을 장려하고 격려하면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선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것이 선한 것이라고 목숨을 바치는 가치들이 사람들마다 있습니다. 국가의 선, 회사의 선, 교회의 선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이라는 기준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이기에 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행사들을 악하다고 하시자 자타가 인정하는 죄인들은 자기들이 악하며 죄인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거룩하다고 여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악으로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행위를 악이라고 고발하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죽여 버렸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죽인 그 세력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악한 자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사탄, 마귀, 참소하는 자, 옛 뱀, 용으로 표현되는 배후세력이 있습니다. 악한 자를 이미 죄인 된 인간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악이란 이미 권세로 인간 위에 장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3-8절입니다. “봉독”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살인사건입니다. 살인이니 이것을 우리는 악으로 봅니다. 그러나 살인이 일어나는 것을 통하여 악이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가인과 아벨이 각자의 소산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이때에 제사에 대한 법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이미 범죄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상태이기에 하나님께서 죄인의 것을 받아주시지 않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아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단절된 인간을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용서이며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의 회복을 보고 안색이 변하고 결국 죽여 버린 것이 악입니다.

 

 

물론 아벨의 제사를 히브리서에는 믿음의 제사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4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이 믿음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 하셨다고 합니다. 아벨의 제사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다고 합니다. 율법에서도 기름이란 따로 태워드리는 제물이 됩니다. 이 기름이 그리스도와 연결이 됩니다. 예수님은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히12:24).

 

 

그러므로 악이란 하나님께서 희생의 제사를 통하여 받아주시는 그 회복의 길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입니다. 아벨의 피 보다 더 나은 예수님의 피로 일방적으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에 대한 분노가 악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노를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네가 선을 행한다면 왜 안색이 변하겠느냐고 하십니다. 여기서 선이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받아주시는 것에 대한 인정입니다. 그런데 왜 내 것은 안 받아주고 동생의 것만 받아주느냐에 대한 분노가 죄입니다. 이런 죄가 가인에게 도사리고 있기에 이 죄를 다스리라고 하지만 결코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악의 모습입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악이 무엇인지를 시편 2:1-3절에서 봅니다.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이방 나라들이 분노합니다.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며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연락하며 통일되는 힘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그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이 행하고 있는 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들을 심판하십니까? 4-12절입니다. “봉독” 하늘에 계신 이가 비웃으십니다. 가소로운 짓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을 시온에 세우십니다.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분이 온 세상을 다스릴 왕이십니다. 철장의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지 아니하면 말할 것입니다. 그의 진노가 급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바로 그의 아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다는 말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이 분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그 땅의 임금이 헤롯이었습니다. 이 헤롯은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 왕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난 가셨다가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상이 어떻게 악한지를 드러내시자 악의 세력들이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종교권력과 로마의 정치권력이 합세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몰랐던 것은 그들의 힘으로 예수님을 죽이면 악이 승리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배후인 사탄도 몰랐습니다.

 

 

베드로는 이들과 반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죽으면 실패하는 줄 알았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셔서 제대로 된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비로소 자신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시기를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시면서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유대교의 종교권력과 세상의 권력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을 말리려 합니다. 그런데 둘 다 십자가의 의미를 모릅니다. 한 쪽은 십자가에 죽이면 그들이 성공하는 줄 알고 한 쪽은 십자가에서 죽어버리면 실패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 비밀은 천사들도 몰랐고 사탄도 몰랐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가신 길입니다(요10:18). 유대교와 로마의 권력이 십자가 사건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죽기 까지 순종하시기 위하여 가신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인간의 악이 무엇인지 다 드러납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서 죽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3일 만에 다시 살리십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십니다. 전에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인도를 받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이제는 성령이 임한 자들은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선이며 이 복음을 방해하는 것과 대적하는 것이 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악은 더욱 분명하여 졌습니다. 다른 것이 악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이며 악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까지는 이 세상에 여전히 악이 있습니다. 악이 더 이상 예수님의 권세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이 십자가의 사건으로 뱀의 머리가 깨어지는 사건입니다. 이제는 악의 진영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사탄과 귀신과 그의 졸개들을 다 영원한 지옥에 던지시기까지 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악이란 복음이 증거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도 미혹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성도라면 악의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알아야 하며 그 악의 세력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어떻게 승리하셨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7:15절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면서 당장 제자들을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기도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 얻을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항하여 악한 자도 역사를 합니다. 그 악한 자의 역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납니까? 이 세상의 신이 복음과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고후4:4). 믿는 자라도 집어 삼키려고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벧전5:8).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데살로니가 후서 3:1-3절입니다. “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악에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8절에서도 근신하고 깨어있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악에서 구하여 달라는 기도를 하게 하시고 이런 기도를 통하여 무엇이 악인지 알게 되고 어떻게 악에서 구하여 지는지 알게 됩니다.

 

 

요한일서 5:18-21절입니다. “봉독” 19절을 보시면 온 세상이 악한 자에게 처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날마다 악에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께로 난 자이며 범죄 하지 않습니다. 이 범죄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말하지요! 그리고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도록 지키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요한복음 17:15절에서 보았던 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8:34). 또한 성령님도 성도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롬8:26-27). 그러므로 로마서 8:31-38절의 말씀은 성도가 어떤 형편에 있을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여주소서! 이 세상이 악한 자에 처한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발 딛고 사는 한 항상 깨어 기도하여야 할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