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마태복음 6:9-13 아 멘 2011. 2. 9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님 가르치신 기도의 마지막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이 부분이 괄호로 되어 있습니다. 괄호로 되어 있는 부분은 어떤 사본에는 있는데 어떤 사본에는 없는 경우에 이렇게 표시합니다. 성경은 다 사본으로 내려온 것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을 외우기 위하여 찬송가 앞에 있는 것은 “대개”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왜 성경에 없는 ‘대개’라는 말을 넣었느냐고 묻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개라는 말은 부사로 쓰이면 “일의 큰 원칙으로 말하건대”라는 뜻입니다. 문장을 자연스럽게 연결한 것입니다. 일의 큰 원칙으로 말하는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는 송영입니다.

 

송영이란 찬송입니다. 김세윤교수의 주기도문 강해를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주기도문에 언제나 송영과 함께 드려졌다고 봅니다. 유대인의 모든 기도는 그 끝에 송영이 있다고 합니다. 교부 터툴리안의 논문에서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하여 주소서” 까지가 공적인 기도이고 그 뒤에는 각자의 개인적인 기도를 덧붙인다고 합니다. 고대 교회, 터툴리안이 속한 서방교회는 자기들의 특별한 청원을 한 후에 송영을 한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 교회전통에서는 회중이 “악한 자에게서 우리를 구출 하소서” 하는 것은 회중이 하고 사제가 송영을 하는 것으로 기도를 마찬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송영 없이 기도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예로 디모데 후서 4:17-18절을 봅니다.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하는 이 부분이 송영입니다. 그리고 아멘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주기도문의 전체를 마무리하면서 송영에 대한 아멘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늘은 땅의 개념을 초월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곳의 아버지이기에 이 아버지는 자기를 계시하여 주시지 않으면 결코 알 수가 없는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를 나타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14: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래도 제자들이 못 알아듣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심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로마서 8:15-17절입니다.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하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좋은데 고난이 옵니까? 이 세상의 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아버지라서 그렇습니다(요8:44). 여기서의 분리가 일어나기에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오늘 어떤 권사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어려움이 없이 왔는데 2011년이 들어서면서 너무 어려운 일들이 많이 터진다는 것입니다. 가정으로 직장으로 자녀로 문제가 연일 터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제가 죽 듣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시겠습니까? 그분이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을 묵상하도록 하였습니다. 성도의 환난은 지극히 가벼운 작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오히려 하늘의 중하고 영원한 소망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럴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만 부를 수 있어도 기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빠, 아버지이기에 자녀의 필요가 무엇인지 아십니다.

 

두 번째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시는 것이 자기 백성의 구원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도 송영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의 송영 뒤의 송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보아도 무관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아끼시고 자기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 결과가 에스겔 36장에서 나온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갔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이 더럽힌 이름을 아끼고 거룩하게 하셨기에 그들을 구원하여 내심으로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나라가 임하기를 청원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나라의 번영과 영원을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의 나라가 다 있습니다. 넓게는 국가이고 더 넓게는 인류이기도 합니다. 작게는 자기 가정도 자기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들로 가득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을 다 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기도를 할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이루어내시기 위한 기도임을 보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청원합니다. 이것을 두 번에 나누어 보았지만 이미 하늘에서는 아버지의 뜻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묵시적인 면에서는 이미 창세전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로 앞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한 내용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이 땅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예언하였고 이 역사가 성경의 예언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땅도 결국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단지 하루하루 먹고살 양식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을 예수님은 자신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과 시험에 들게 하지 말 것과 악에서 구하여 달라는 기도를 보았습니다. 시험과 악이란 우리가 죽는 날 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험을 이기고 악을 이길 수가 없기에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청원할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내시는데 기도는 왜 하라고 하십니까?

   

에스겔 36:36-38절입니다. “36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38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는 내용에서 본 그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모든 일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에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기도 안하면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아니지요! 이미 말씀하셨으니 이루어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기도해야만 여호와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기도시간이나 며칠 금식이나 눈물콧물 흘린 것이나 목이 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의 이름을 더럽혔지만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것을 더욱 깊게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송영부분을 이렇게도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청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찬양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도 주님이 이루어내실 일이지만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님의 기도를 주님이 이루어내신다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은 송영의 마무리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우리가 우리의 욕심을 잔뜩 청하여 놓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기만 하면 주신다고 하는 그런 예수님의 이름과 아멘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아멘하면 다 이루어주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런데 정욕을 위하여 잘못 구하면 응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정욕이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 안에 이미 내가 중심이 되어 있기에 탐심과 정욕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뜻과 정신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가 역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은 예수님이 이루십니다. 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아멘이란 믿음, 진리, 확신, 확고부동, 신뢰 등을 가르치는 어근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청원과 기도이기도 하지만 찬송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서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신명기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을 지어다고 하면 아멘으로 화답하고 불순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고 하면 역시 아멘으로 화답을 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의 선포에 다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신약에서는 아멘이 아예 예수님의 별명이 되십니다. 요한계시록 3:14절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이 아멘이시라고 합니다. 아멘이란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라는 말과 연결되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과 연결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든 언약을 다 완성하실 신실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송영 부분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분에서 항상 아멘이 나옵니다.

 

로마서 9:5절입니다.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로마서 11:36절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6:27절입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전 6:16절입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디모데후서 4:18절입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끝으로 아멘에 대하여 한 곳만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20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님 안에서 예가 된다는 말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도 예수님 안에서 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우리가 아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까? 천지창조를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내셨다는 이 말씀에 우리가 아멘! 하는 것이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