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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1:23~30 씨 뿌릴 날 2014. 6. 25


2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24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살리니 25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26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오늘이 6월 25일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난 지 64년 되는 날입니다. 사진이나 기록들을 통하여 보는 6.25전쟁은 그야말로 처참하였습니다. 폭격으로 인하여 파괴된 도시, 피난행렬, 고아들의 사진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그 날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흔적들은 옛날 사진이나 자료들 속에 들어있고 지금의 청소년들은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모르는 자들이 4명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전쟁이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적인 해석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한 총리지명자가 결국 사퇴하였습니다. 총리 지명자의 이러한 말에 한국에서 일반인들도 알만한 목사와 교수들이 지지한다는 광고를 신문에 내기도 하였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처럼 일대일 대응을 해서 해석해도 될까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도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역사도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일까요? 물론 큰 그림으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처럼 일대일 대응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에서 벗어날 나라가 없지만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처럼 언약에 따라 처리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7:26~31절입니다.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바울사도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전도한 내용입니다. 이들은 온갖 신전을 만들어 심을 섬기며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신전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종교성이 많은 자들에게 바울사도는 하나님은 사람의 손에 지은 전에 계시지 않으시고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라고 하면서 이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온 땅에 살게 하시며 그 연대와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각양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나라들과 사람들을 간과(看過)하셨습니다. 간과하셨다는 말씀은 허물을 묻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무지하였기에 눈감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묵인하신 상태에서는 어떻게 나라들마다 살아간 것입니까? 갈라디아서의 6:7절의 말씀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방식이 적용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들을 거둡니다. 썩어질 것들을 힘과 폭력으로 많이 거둔 자들은 번성하여 보이지만 그로 인하여 부패하여 무너지기도 합니다. 이러함에도 하나님은 햇빛과 비를 악인과 선인에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 있게 하셨으나 이들이 찾은 하나님은 결국 우상이었습니다.


로마서 1:18~25절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러한 상태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류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이나 짐승의 형상으로 만들어 섬긴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두신 모습입니다. 로마서 1장과 사도행전 17장의 말씀과 갈라디아서 6장의 말씀을 연결하여 보면 이스라엘 외에 다른 나라들이 어떤 상태로 살아가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각 나라들이 지금도 피조물을 조물주 보다 더 경배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이대로 내 버려두신 것이 심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다 회개의 증거를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7:30~31절을 다시 봅니다.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는 간과하셨다고 합니다. 그 알지 못하는 시대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신 이후에는 이스라엘과 이방의 나라들이 상관없이 다 회개하라는 증거를 주셨습니다. 그 증거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라와 인종의 구분이 아니라 단 하나의 기준만 제시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이냐 예수 그리스도 밖이냐는 기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제 혈통과 육정의 나라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개념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이기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회개한 자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아래 있습니다. 이러한 심판의 기준이 하나님의 약속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한 계시가 구약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씨를 뿌리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31:23~26절을 봅니다. 이 내용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돌아온 자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에서 다시 이 말을 쓰게 된다고 합니다. 전에 쓰던 말이지만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여 그 성읍과 성소가 파괴되었으니 사용하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실 때에 다시 하는 말이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의로운 처소와 거룩한 산이란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이곳이 왜 의로운 처소와 거룩한 산이 되는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복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우상을 섬김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 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처소나 거룩한 산이 아니라 우상으로 가득한 곳에 되어버림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라는 몽둥이를 사용하셔서 이들을 다 부수어버립니다. 다 부수어 버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70년의 때가 되어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살 것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가 버린 땅은 황폐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돌이켜 주심으로 농부도 목축하는 자도 함께 거하는 것을 그림처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계시를 꿈으로 받고 나니 예레미야가 잠이 달았다고 합니다. 잠이 달았더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계시가 회복의 내용이기에 달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회복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는 것으로 먼저 이루어내십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에 그것으로 잠이 달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다 이루어지지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주신 계시의 궁극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성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잠은 어떻습니까? 잠자리가 뒤숭숭하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잠이 달지 않는 이유는 쓸데없는 세상의 염려들 때문입니다. 이번 달 구역 교안 중에 세상의 염려는 사망을 이루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회개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새 언약이 완성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이렇게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잘 잡니다. 베드로는 내일 사형 받는다는 것을 알고 감옥에 갇혔는데도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울 정도로 잘 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확정되었습니다. 묵시로서 완료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미완성에서 오는 피곤한 심령이 상쾌하게 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이 만족하게 됩니다. 이러한 계시로 인하여 잠이 달았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3:17~19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새롭다는 말이 전에 번역에서는 유쾌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서만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예언한 상쾌하게 되는 그 날입니다.


예레미야 31:27~30절입니다. 앞 단락에서는 여호와께서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씨를 뿌린다고 하십니다.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과 유다의 집에 뿌릴 날이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감으로 사람의 씨도 짐승도 씨가 말라버린 정도로 황폐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씨를 뿌릴 날이 이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씨의 이야기는 이미 아담과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구체적으로 네 씨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씨란 갈라디아서 3:1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유다 백성을 바벨론으로 흩으시는 것도 씨 뿌리는 과정입니다.


시편 126편입니다.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우리는 기존의 ‘나’ ‘있음을 절대 진리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존의 ’나‘를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새롭게 심고 건설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는 말씀은 기존의 것들을 먼저 뽑아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26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기쁨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그 결론부분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고 합니다. 예레미야서 24장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봉독”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을 극히 좋은 무화과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그와 반대로 예루살렘에 남아 있거나 애굽으로 피난 가는 자들은 극히 나쁜 무화과라고합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이 울면서 가지만 이들이 기쁨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까? 기존의 ‘나’를 철거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당하는 모든 불행이나 고난을 자기의 죄로 보지 않고 조상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존의 ‘나’를 뿌리 뽑고 무너뜨리고 전복 시키며 멸망시키고 괴롭게 하십니다. 예레미야 1:10절에서 예레미야의 사역이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며 무너뜨린 후에 건설하며 세운다는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언제나 ‘나’ 있음을 절대 진리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런 상태에서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우리는 남의 탓을 합니다. 조상과 환경과 이웃과 가족을 탓합니다. 결국 이러한 원망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이런 자들의 진리관은 언제나 자신을 확대시키며 견고하게 하는 것을 진리로 여깁니다. 자신의 무너짐을 악으로 여깁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들이 다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기 백성들은 이러한 모습들을 뽑아내시기 위하여 환난을 주십니다. 이것이 우는 일입니다.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씨를 뿌리기 위하여 밭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아픔이지만 하나님의 씨를 뿌리는 일이기에 결국은 기쁨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돌아올 때에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이 이가 시다하는 말을 하지 않고 돌아온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주께로 돌아오는 자들의 모습은 자기들이 의롭다고 여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아니라 자타가 죄인으로 인정하는 세리와 창기들이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이들은 자기의 의라는 것들이 다 뽑혀 나간 자들입니다. 이것이 씨를 뿌리고 거두시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4:34~38절입니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미 씨가 뿌려졌고 그 씨를 거둘 때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씨 뿌릴 때가 온다고 하셨는데 이미 씨를 뿌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초림이 이미 추수하는 종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완성은 추수이기도 하지만 이방나라에 복음의 씨를 뿌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씨를 뿌리는 것과 물주는 것과 거두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이 끝나면 이 역사도 끝이 납니다.


마가복은 4:26~29절입니다.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나님의 나라를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씨를 뿌리고 밤낮 자고 깨도 하는 중에 씨가 자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면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듯이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사람은 싹이 나고 이삭이 나오고 충실한 곡식이 나오면 추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도 썩어질 씨가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벧전1:23). 이러한 씨 뿌림이 이미 2천 년 전부터 씨를 뿌리고 동시에 거두고 있는 종말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