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7:1~10   스스로 속이는 말     2014. 9. 10

6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여호야김 왕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대로 칼로 잘라서 불에 태워버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왕으로 있는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한다는 말씀이 얼마나 싫었으면 말씀을 잘라 불에 태우는 일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여호야김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대로 잘라 이리 저리 갔다 붙여서 내가복음을 만들고 있는 우리가 여호야김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자유 게시판에 ‘이단의 종류들 (마 24:1-5, 요일 4:1-6, 유 1:12-13) - 교리(가르침)별로 본 이단종류 19가지’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 글에 제가 댓글을 하나 달았습니다. 이런 이단에 속하지 않은 나는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그 사람이 바로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숙제라고 하였는데 지금 답을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19가지 이단의 특징은 한마디로 자기 사랑이라는 욕심입니다. 그 자기 사랑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쓰거나 보는 자들이 나는 이런 이단에 속하지 않았기에 정통이며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나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해석한 것이기에 이단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스스로 속이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자들입니다. 

예레미야 37:1~2절입니다. “1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2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말씀이 주어진 시대적 배경은 다시 시드기야 왕 때입니다. 시드기야 왕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왕과 그 신하와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다의 멸망직전의 왕들이 어떤 모습인지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요시야 왕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하여 대대적인 개혁을 한 왕입니다. 요시야가 죽자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지만 삼 개월 만에 애굽의 바로 느고가 폐위시켜 애굽으로 잡아가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우면서 그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쳐버립니다. 여호야김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됩니다. 이때 바벨론의 세력이 강하여져서 애굽이 유다 땅 까지 제어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여호야긴 때에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자 여호야긴 왕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항복합니다. 이로 인하여 왕과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고 성전의 기구와 보물들도 바벨론에 옮겨집니다.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 왕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고 그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다가 결국 바벨론에 사로잡혀가고 예루살렘성이 파괴됩니다(왕하23~25장). 오늘 본문의 시드기야가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본문 3~5절입니다. “3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4 그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시드기야 왕이 측근 몇 사람을 예레미야에게 보내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합니다. 시드기야가 우리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판단에 따라 살면서 위기상황에 기도하여 달라는 모습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라 불태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요청 할 때에 예레미야는 옥에 갇히지 않고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이때의 상황은 바로의 군대가 유다를 돕기 위하여 애굽에서 올라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갈대아인들 곧 바벨론 군대가 잠시 예루살렘의 포위를 풀고 그들을 막기 위하여 갔습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은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6~10절입니다. “6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시드기야에게 전하여 집니다. 너희를 돕기 위하여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시드기야 왕이라면 이런 응답을 받았을 때에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인생의 위기가 와서 목사에게 기도를 요청하였는데 목사가 하는 말이 당신은 반드시 망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에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아마 마음속에 이런 마음이 들 것입니다. 목사가 무언가 잘못 말한 것일 거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실 리가 없어! 이 기회로 말미암아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거야! 이런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마음까지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9절을 보시면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갈대아인이 물러가는 것이 가장 절실한 소원입니다. 그래서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는 마음이 그들 마음에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부추기는 자들이 거짓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늘 평안을 준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그들이 떠난다고 하고 또 거짓 선지자들이 그렇게 말하여도 그들이 떠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가 갈대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중심으로 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을 때에 이것을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에 넘어간 자들의 본능적인 마음입니다. 나는 망해야 마땅해! 포로로 잡혀가야 마땅해! 이것을 정말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다 스스로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틀렸다고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아주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있는데도 성경의 원래 뜻이 그런 뜻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아는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의 귀에 좋게 하는 말로 왜곡시켜주면 사람들이 환호를 합니다. 

예레미야 6:10~15절을 봅니다. “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11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12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스스로 속여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기위하여 다시 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욕으로 여깁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을 좋게 하지 않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위안을 삼는데 이러한 일을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합니다. 그들이 거짓된 종교 행위를 하면서 그들의 정성과 제물을 받고서 신이 복을 줄 것이라는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평간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를 못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이 시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예레미야 14:11~16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13 이에 내가 말하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 하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이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금식을 하며 부르짖고 번제와 소제를 드려도 받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이러한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자들을 향하여 복을 빌어준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특징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합니다.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예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속여서 말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듣고 말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 속여서 말하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런 거짓 선지자는 자신이 속인다는 생각을 꿈에도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듣는 자도 자신들이 스스로 속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열왕기상 22장을 보시면 북 이스라엘의 왕이 아합이며 남 유다의 왕은 여호사밧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아람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이때 남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 아합왕에게 갔습니다. 아합왕이 여호사밧에게 함께 싸우자고 합니다. 여호사밧이 좋다고 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 물어보자고 합니다. 아합이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자신이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울 것인지 말 것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사백 명이 전부 한 목소리로 전쟁하면 이긴다고 합니다. 이 선지자들의 무리 중에 시드기야는 오늘 본문 시드기야 왕과 이름이 같습니다. 이 사람은 철로 뿔을 만들어 이것들로 아람사람을 진멸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 왕이 무언가 미심쩍어서 다른 선지자가 없느냐고 묻습니다. 아합이 말하기를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한 사람 있기는 하지만 자기에게 흉한 말만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그 사람을 불러서 물어보자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부르기 위하여 사람을 보냈는데 심부름을 간 사람이 미가야 선지자에게 모든 선지자들이 다 왕의 승리를 말하였으니 당신도 그렇게 말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미가야는 여호와의 말씀만 전할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미가야는 이들이 다 거짓말 하는 영이 임하여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치면서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서 어떻게 너에게 말하더냐고 합니다. 여기에 미가야는 네가 골방에 들어가 숨는 날에 그 심판을 볼 것이라고 전합니다. 결국 미가야의 말대로 됩니다.   

이런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이 오늘날 어떻게 일어나고 있습니까? 긍정적인 말을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기도든 전도든 교회 부흥이든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밀고 나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온갖 성경구절을 이곳에서 조금 저곳에서 조금 오려붙여서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전합니다. 이것이 기복적인 것으로 말하는 순 복음 쪽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래도 보수적이라는 장로교단도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다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긍정적인 말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모든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다 긍정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금식과 번제와 소제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고 평안을 주신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참된 선지자들은 얼마나 부정적인 사람들입니까? 인간의 모든 종교적인 행위들을 책망하면서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떤 사람들이 많습니까? 전자가 절대 다수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다 본성적으로 자신이 잘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잘 된다는 말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통하는 잘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참 잘 되었다는 내용들 속에 다 들어가는 것들입니다. 합격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승진을 하고, 집을 사고, 교회당을 멋지게 건축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일들을 다 잘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 안에 가득하기에 이런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봅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 무언가 하나님께 잘못하여 벌을 받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본능들이 우리 안에 가득하기에 스스로 속여서 말하는 것을 자기 자신이 구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속지 않는 모습이 어떤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7:29~31절입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고 기쁜 자들은 기쁘기 않은 자 같이 하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형적들은 다 지나가는 것에 이런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속지 않고 사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는다는 자들도 얼마나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지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진리로 자유 한다는 말은 죄와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곳에서 해방시켜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곳으로 옮겨진 것을 진리로 자유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리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이제는 내 마음대로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서 자신은 복음을 알아서 자유 한다고 합니다. 이것도 자기가 스스로 속아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이러한 실상이 드러나야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스스로 속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성경 몇 곳을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1~5절입니다.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자유라고 하면서 마땅히 져야할 자기 짐도 지지 않으면서 자신은 이미 된 줄로 생각하는 자들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 일을 살피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을지라도 남에게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6~10절입니다.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지난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이것은 세상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어야 거두는 법칙입니다. 자신은 교회 다닌다고 열심히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농사가 다른 사람보다 잘 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입니다. 다락방에서 주로 말하는 내용이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내 일을 해 주신다고 합니다. 주업은 전도이고 사업은 부업이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 곧 자기의 혈과 육으로 심을 수 있는 것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은 그것이 세상의 사업이든 종교적인 열정으로 종교적인 분야에서 성공을 하든지 간에 그런 것들은 다 썩어질 것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교묘하게 혼합하여 자신의 혈과 육으로 심은 결과로 세상의 영광도 얻고 썩지 아니할 영원한 것도 거둔다고 하는 말이 바로 스스로 속고 있으며 이런 말에 환호하는 자들도 스스로 속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합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할 유업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우리의 혈과 육의 노력이 아니라 주의 성령으로 되는 일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인 줄 압니다.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이 혈과 육으로 하는 것인지 영으로 하는 것인지 알게 됩니다. 혈과 육으로 하는 것은 반드시 자기 공로와 자기 자랑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심는 자는 자신이 전적인 죄인임을 알기에 오직 주의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는지 아닌지는 자기 안에서 자기 자랑이 나오는지 오직 감사가 나오는지 점검해 보시면 됩니다. 

끝으로 요한일서 1:1~4절입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태초의 생명을 보고 듣고 만진 자들이 증언합니다. 이 생명을 전함으로 사도들과 사귐이 있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이어지는 5~10절입니다.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태초의 생명의 말씀을 빛이라고 합니다. 이 빛과 사귐을 가지면 우리의 더러움이 다 드러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며 진리가 우리 속에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구원파가 왜 진리가 없는지를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과의 사귐이 깊을수록 더욱 죄인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시기에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게 깨끗하게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며 또한 그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오래 다닐수록, 종교적인 열정이 많을수록, 복음에 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얼마든지 우리는 스스로 속을 수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스스로 속을 수 있는 자임을 아시고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에서도 스스로 속이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생명이며 빛이신 이 말씀이 우리에게 비추어짐으로 우리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를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수록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아 주님만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