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0:1~41:18    혼돈의 시대     2014. 10. 29

1 일곱째 달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로서 왕의 장관인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있던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의 왕이 그 땅을 위임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 있던 모든 유다 사람과 거기에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4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내일 모레가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무엇이 생각납니까? 종교개혁기념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잘못된 종교에 대한 95개의 반박문을 성당에 붙이면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중세 혼돈의 시대에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이라는 기치로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오늘 우리가 개신교단이라는 곳에 속하여 있습니다. 왜 은혜와 믿음과 성경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중세천년동안 종교가 권력화 되어 은혜와 믿음과 성경이 다 왜곡되고 혼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을 한지 497년이 된 지금 개혁교회도 다시 개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개혁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개신교도 역시 권력화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개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개혁을 외쳐도 언제나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칠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혼돈스러운 시대가 와도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많은 양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한 혼돈의 시대이기에 여러 사람들의 여러 가지 추구하는 방향들이 나옵니다. 중심인물로 그다랴와 이스마엘과 요하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앞부분에서 잠시 등장하지만 전체 내용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다랴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다랴는 또 다른 인간적인 힘으로 유다를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그다랴를 이스마엘이 죽이고 이스마엘이 암몬으로 가는 중에 요하난이 공격하자 이스마엘은 암몬으로 도망가고 백성들은 요하난을 따라 애굽으로 피난하기 위하여 게롯김함이라는 곳에 이르기 까지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40:1~6절입니다. “1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원고가 길어지는데도 성경본문을 다 올리는 이유는 어떤 분이 원고를 출력해서 본문을 보지 못한다고 본문을 원고에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길어도 본문을 그대로 올립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의하여 자유의 몸이었는데 다시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은 바벨론 군인들의 실수로 그렇게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를 알아보고서는 예레미야의 뜻대로 하도록 합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그다랴에게로 갑니다. 그다랴는 누브사라단이 멸망한 유다의 총독으로 세워 바벨론의 지시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40:7~12절입니다. “7 들에 있는 모든 지휘관과 그 부하들이 바벨론의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그 땅을 맡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잡혀가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고 8 그들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두 아들 요하난과 요나단과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느도바 사람 에배의 아들들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사냐와 그들의 사람들이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에게 이르니 9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들과 그들의 사람들에게 맹세하며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10 보라 나는 미스바에 살면서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장하고 너희가 얻은 성읍들에 살라 하니라 11 모압과 암몬 자손 중과 에돔과 모든 지방에 있는 유다 사람도 바벨론의 왕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 둔 것과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그들을 위하여 세웠다 함을 듣고 12 그 모든 유다 사람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과일을 심히 많이 모으니라” 

예루살렘을 파괴한 바벨론 군대가 물러가면서 그다랴에게 그 땅과 빈민들을 그에게 위임한 소식을 듣고서 전쟁 중에 피난한 자들이 그다랴에게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사람들 가운데 중요인물이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스마엘과 요하난입니다. 그다랴는 예루살렘이 파괴되었기에 미스바에 거합니다. 이곳에서 자신은 바벨론 왕을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그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총독이 우선적으로 할 일은 식량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1년 6개월 동안 바벨론이 포위하고 있었기에 성안에 갇혀서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들판에 나가 추수하도록 하여 많이 모았습니다. 

40:13~16절입니다. “13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들에 있던 모든 군 지휘관들이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14 그에게 이르되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네 생명을 빼앗으려 하여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보낸 줄 네가 아느냐 하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믿지 아니한지라 1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내가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가 네 생명을 빼앗게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 사람을 흩어지게 하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하게 하랴 하니라 16 그러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 이르되 네가 이 일을 행하지 말 것이니라 네가 이스마엘에 대하여 한 말은 진정이 아니니라 하니라”

요하난이 그다랴에게 정보를 줍니다. 암몬 자손의 왕이 그다랴를 죽이기 위하여 이스마엘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스마엘은 다윗 왕의 종친이며 장관인데 전쟁이 일어나자 암몬으로 피난한 모양입니다. 이제 돌아와서는 그다랴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요하난이 그다라에게 비밀히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다랴가 허락하면 자신이 이스마엘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다랴가 요하난의 말을 믿지 않다가 결국은 이스마엘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왜 그다랴는 요하난의 말을 믿지 않았을까요? 그다랴가 바벨론이 임명한 총독이 되었지만 지금 나라가 형편없이 약합니다. 빈민들만 조금 남았기에 전쟁 중에 피난한 자들이 몰려오니 이들의 힘을 합하면 나라를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누구든지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다랴의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마음보다는 자신이 잘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이스마엘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인 결과 그 이스마엘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41:1~4절입니다. “1 일곱째 달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로서 왕의 장관인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있던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의 왕의 그 땅을 위임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 있던 모든 유다 사람과 거기에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4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의 그다랴에게 가서 함께 떡을 먹습니다. 떡을 먹는 것은 식사입니다. 식탁에서 함께 떡을 먹는 것은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신뢰의 식탁자리를 피로 물들인 자가 이스마엘이며 압살롬이며 가룟유다입니다.  시편 49:9절입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다윗의 반역한 자들을 말하지만 이 내용은 요한복음 13:18절에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반역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합니다. 그다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바벨론에 항복하며 살기로 하는데 이 꼴이 보기 싫다고 식탁에서 죽여 버린 이스마엘입니다. 그다랴만 아니라 그다랴와 함께 있는 자들과 거기에 있던 갈대아 군사들까지 죽여 버립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그들의 측근까지 다 죽임으로 죽은 지 이틀이 되었어도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 순례 단이 옵니다. 

41:5~10절입니다. “5 그 때에 사람 팔십 명이 자기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와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 울면서 가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더라 7 그들이 성읍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에 던지니라 8 그 중의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니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을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가 쳐죽인 사람들의 시체를 거기에 채우고 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이스마엘이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고 떠나니라”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한 그 때에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는 자들 80여명이 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오기에 평소에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오는데 이번에는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까지 내고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옵니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하 자들이 울면서 이들을 영접하면서 그다랴에게로 가자고 하여 성읍 중앙에 이르자 이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집니다. 그 중 열 명은 자신들이 곡식을 저장한 곳을 알려주겠다고 하여 살아남습니다. 이스마엘은 자신의 행위가 들키지 않게 하려고 순례자들을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던져 넣은 구덩이는 아사 왕 때에 북 이스라엘 바아사와 싸울 때에 판 구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남은 백성들을 이끌고 암몬으로 갑니다. 

11~18절입니다. “1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을 듣고 12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 가에서 그를 만나매 1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14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이 사로잡은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1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16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자와 유아와 내시를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17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18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의 왕이 그 땅을 위임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스마엘의 악행을 알고 요하난과 군 지휘관들이 추격합니다. 기브온 큰 물가에서 이스마엘을 따라잡을 때에 이스마엘과 함께 한 백성들이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한 자들 편에 섭니다. 그러자 이스마엘과 함께 한 자들은 암몬 자손에게로 도망갑니다. 요하난은 그 남은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기 위하여 베들레헴 근처 게롯김함에 이릅니다. 게롯이라는 말은 여관이라는 뜻입니다. 왜 애굽으로 가려고 하는지 18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일 뿐 아니라 바벨론 군인들도 죽였기에 갈대아 사람들이 보복할까 하여 애굽으로 피난가려고 합니다. 이때 게롯김함에서 잠시 머물며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에 보겠습니다만 이러한 혼돈의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나온 세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의 태도를 다시 정리해 봅니다. 첫째, 그다랴는 처음에 하나님의 뜻대로 바벨론에 항복하고 살자고 합니다. 바벨론에서도 예레미야에게 우호적인 사람을 총독으로 임명하고 돌아갑니다. 그다랴가 총독으로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은 흩어진 유대인들이 그다랴에게로 모여듭니다. 이때 그다랴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추정하여 보았습니다만 나라가 망하여 빈민들만 남았습니다. 이들은 전쟁이 나도 도망갈 능력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전쟁으로 나라의 주인이 바뀌어도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어차피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는 자들은 도망갈 여력이 있던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힘을 합하여 나라를 굳게 하자는 마음이 당연히 들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세는 언약의 나라 모습이 아닙니다. 언약의 나라는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다랴가 자기 힘으로 연합하여 힘을 가지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그다랴의 정책도 실패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마엘은 자신이 왕족인데 암몬으로 피난 간 것은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말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예레미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고 암몬에서 이방의 왕과 결탁하여 그다랴를 죽였습니다. 암몬도 바벨론의 팽창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이스마엘과 결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그다랴와 같은 자가 총독이 되어 바벨론의 속국이 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이스마엘과 그 측근들을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환이 두려워 예루살렘 순례 객들까지 죽이고 암몬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끝으로 요하난입니다. 요하난은 이스마엘의 의도를 그다랴에게 알리고 이스마엘을 제거하려고 하였지만 그다랴가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요하난은 잠시 다른 곳에 간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의 악행을 듣고 그를 공격하기 위하여 왔을 때에 이스마엘에 끌려가던 백성들은 요하난 편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요하난도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서 애굽으로 피난가려고 합니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백성들은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여 이리 저리 헤매게 됩니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를 따라가야 합니까? 

예레미야 24:5~10절입니다.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바벨론에 1차로 포로로 잡혀간 후에 여호와께서 환상을 통하여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환상의 내용은 극히 좋은 무화과 광주리와 극히 나쁜 무화과 광주리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극히 놓은 무화과라고 하시고 예루살렘에 남아있거나 애굽 땅에 피난하여 살려고 하는 자들이 극히 나쁜 무화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다랴와 이스마엘과 요하난이 다 극히 나쁜 무화과라는 말씀입니다. 그다랴는 그나마 바벨론에 항복하였지만 역시 유다 땅에서 자기의 정책과 힘으로 사람들을 규합하여 힘을 가지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 사람의 행위들은 이미 예레미야 24장의 예언대로 이 땅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자들이기에 극히 나쁜 무화과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라고 하느냐고 반문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들이 바로 극히 좋은 무화과이기에 하나님께서 돌보신다고 하십니다. 반면에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힘을 규합하려고 한 그다랴나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을 대항하기 위하여 암몬이라는 외세의 힘을 빌려서 바벨론을 대항하려고 한 이스마엘이나 애굽을 의지하려고 한 요하난과 같은 자들이 극히 나쁜 무화과이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내용이 24:9~10절입니다. “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하나님께서 돌보셔서 칠십년 만에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렇게 돌아오는 자들은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들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임을 알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에스겔서를 통하여 이미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도 우상숭배요, 광야에서도, 약속의 땅에서도, 바벨론에서도 우상숭배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유다에 남아있는 자들에게도 방법은 다르지만 그대로 드러난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의 갈 길은 어디입니까? 서울로 가야 합니까? 대구로 가야합니까? 부산으로 가야합니까? 아니면 창원이라도 가야 합니까? 다 아닙니다. 우리가 갈 길을 우리가 찾지 못합니다. 우리가 찾아서 이것이 옳다고 한 그 길은 다 엉터리입니다. 

로마서 11:33절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로마서 11장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인의 구원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남은 자들이 아닙니다. 엘리야처럼 나만 남았다고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숨겨진 칠천 명이 있는 그런 방식입니다. 유대인들이 일부 꺾어짐으로 그 자리에 이방인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도 자고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결코 자긍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은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은 우리가 찾지 못할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찾아오시는 길뿐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찾아오시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마치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주의 영은 주의 백성들에게 임하시는데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길로만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의하여 포착되거나 포획되는 진리는 다 가짜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포획하여 끌고 가는 그 진리만이 실재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란 이 세상에서 실패와 저주와 조롱거리와 모독을 받은 십자가로만 보여 집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자기 백성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게 하시면서 끌고 가십니다. 이렇게 끌려가는 자들은 이 혼돈의 시대에 길을 묻지 않습니다. 묵묵히 도살당할 양처럼 끌려갈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만 보여 지는 생명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