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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5:1~22 슬픈 노래(5) 2015. 6. 17

 

19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20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2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다 우울하다고 합니다. 메르스는 잡히지 않고 경제는 더욱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우울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애가는 그런 정도의 우울함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망하고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망하고 기대하였던 왕마저 망하여버렸습니다. 더 이상 망할 것이 없을 정도로 멸망한 예루살렘을 보면서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애통이 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죄악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소망을 둡니다. 자신들의 죄악을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하여 나라가 망한 것이 소망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기는데도 심판이 없다면 이것이 영원한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하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을 나타내시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이 말씀만 보면 무언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전체를 보면 우리는 이렇게 심판을 당해도 마땅하다는 분명한 자기인식이 있습니다. 7절을 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범죄 하여 없어졌고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마치 조상들의 죄로 자기들이 억울하다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자신들과 조상들의 죄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죄도 인정한 것이 16절입니다. 우리의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진 것은 우리의 범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심판을 받은 것은 우리 조상들의 죄와 우리들의 죄로 인한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과 고백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봐 달라고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출애굽기 2:23~25절입니다.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예레미야서에서 이미 충분하게 살펴보았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도 우상숭배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보다 그들의 고통이 한탄스러워 부르짖었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돌보시고 구원하여 내십니다. 그러나 출애굽 하여 광야로 나왔어도 광야에서도 반역하고 가나안 땅에서도 반역한 자들입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내십니다.

 

예레미야 31:1~4절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 언약하신 내용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이러한 언약관계가 왕과 백성의 관계입니다. 나는 너희의 왕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런 언약을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배반합니다. 신실한 남편을 버리고 날마다 바람을 피우는 아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으로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으로 돌이켜 내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사랑의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으로 완성될 것을 알았습니다.

 

예레미야 31:27~28절입니다.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여호와 하나님께서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무너뜨리지 않고 세워주시면 안되느냐고 묻는 자들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실까요?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기대와 모든 의들이 완전히 무너진 자리에서 새 언약이 나타납니다.

 

예레미야 31:31~33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언약의 내용은 동일합니다만 그 언약의 방법이 다르기에 새 언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멸망함으로 인하여 인간에게서는 어떤 가능성도 없음을 드러내시고 새 언약으로 자기 백성을 만들어 만들어내심이 언약의 내용입니다.

 

에스겔 36:16~28절입니다. “1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19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예레미야애가 5:1절의 간구를 이해하기 위하여 출애굽기와 예레미야와 에스겔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망치고 하나님은 이루어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제대로 순종한 적이 없이 늘 배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그 언약을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하고서 여호와여 이 상황을 살펴보아 달라고 합니다. 자기들의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조상들의 죄와 자기들의 죄로 인하여 망하게 되었지만 여호와의 언약을 알기에 우리의 형편을 돌아봐 달라고 하는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형편이 어떠한지를 세세하게 아뢰고 있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2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3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오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으니 4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나무들을 가져오며 5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기진하여 쉴 수 없나이다 6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우리의 기업과 집들이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시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간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대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과 같고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을 주고 물을 마시고 값을 주고 나무를 가져오는데도 그마저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러 우리가 기진하여 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예레미야 2:14~19절입니다. “14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15 어린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그의 성읍들은 불타서 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16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1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이 종처럼 포로가 된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악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였고 이것이 반역이기에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고통이며 악인 줄 알라고 하십니다. 지금 예루살렘의 성읍과 성전까지 파괴되고 종처럼 팔려가게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이 고통입니까? 대한민국이 다 고통으로 여기는 메르스와 경제문제가 고통입니까? 아니면 여호와를 버리고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것을 고통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본문 8~11절입니다. “8 종들이 우리를 지배함이여 그들의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9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10 굶주림의 열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11 대적들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읍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시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있다면 다른 이방 나라들이 종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로 그 종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다. 광야에는 칼이 있어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습니다. 지금 광복 70주년 기념 대하드라마 징비록이 방영됩니다. 임진왜란을 이겨낼 힘이 없어서 명군을 불렀지만 명군도 백성들을 약탈하는 지경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당하는 고통들과 오버랩이 됩니다. 굶주림으로 피부는 아궁이처럼 되고 대적들이 부녀와 처녀들을 욕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는 시온에서 부녀들이 욕을 당하고 유다의 각 성읍에게 처녀들이 욕을 당합니다. 그의 남편과 그의 연인들도 속수무책입니다.

 

본문 12~18절입니다. “12 지도자들은 그들의 손에 매달리고 장로들의 얼굴도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13 청년들이 맷돌을 지며 아이들이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14 노인들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청년들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15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16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17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들이 어두우며 18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

 

지도자들은 대적들에 의하여 매달려 죽고 장로들은 천대를 받습니다. 청년들은 맷돌을 돌리고 아이들을 나무를 지다가 쓰러집니다. 노인들은 회의와 재판을 위하여 앉는 성문에 앉지 못하고 청년들은 노래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그쳤고 춤이 변하여 슬픔이 되었습니다. 머리의 면류관이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의 범죄라고 합니다. 이런 범죄로 인하여 마음이 피곤하고 우리의 눈이 어두웠으며 시온이 황폐하여 들짐승이 노는 곳이 되었다는 탄식입니다. 철저한 파괴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심판이 일어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저주를 받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 바닥에서 다시 주님의 신실한 언약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집니다.

 

본문 19~22절입니다. “19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20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2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19절에서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간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어 달라는 간구입니다. 우리는 비록 왕의 언약을 배반하여 이렇게 망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어주시면 우리는 소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왕 노릇을 해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범죄 하였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요구할 수가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겠다고 하신 그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0절에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셨느냐고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뻔뻔해 보이는 간구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을 알고 믿기에 이런 간구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21절에서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돌아갈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 어떤 것으로도 주께로 돌이킬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돌이켜 주셔야만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22절에서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다고 합니다. 이 구절에 대한 다른 번역을 보겠습니다. 새 번역은 이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습니까? 우리에게서 진노를 풀지 않으시렵니까?” 공동번역입니다. “주께서는 아무리 화가 나시어도 우리를 아주 잘라 버리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을 보시고 여호와의 진노를 푸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간구를 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물론 이러한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이 언약의 성취가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해 봅니다. 유대인들에는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들에게 미련한 것입니다. 율법에서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를 받아 죽은 죽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아는 유대인들이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저주 받아 죽은 죽음입니다. 누가 보아도 완전한 멸망의 자리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의 탄식이 압축되어 있는 장면이 십자가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70년 만에 돌아옵니다. 성전이 재건되고 제사가 회복이 됩니다. 제사장들과 율법선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은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 애가서를 통하여 나타난 나라의 멸망과 그들의 죄악이 무엇인지 십자가에서 밝히 들어나는 것입니다. 나라의 멸망을 통하여서도 한 가닥 소망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의 완성자로 오셨다고 생각하신 분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림으로 모든 유대인들의 기대는 사라졌습니다. 네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남을 구원할 수 있느냐는 조롱을 받으면서 그렇게 저주스럽게 죽으신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소망하였던 그 언약의 완성 자에 대한 소망마저 포기되는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의심하였고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는 제자들도 십자가에서 다 배신하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죽음의 자리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 이루심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살려내시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이 나오는 것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망한 그 바닥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구약은 수천 년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수천 년의 역사를 새 언약의 백성들에게는 하루에도 경험하게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기의 죄와 비참함을 알기에 구약의 그 절망을 한 순간에 보게 됩니다. 그 절망의 바닥, 탄식의 끝 에서 다 이루었다는 십자가가 보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20~21절입니다.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태복음 5:4절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성도는 지금 애통을 합니다. 애통하고 탄식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끊어내시고 참으로 의지하여야 할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시기에 일어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며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간다고 시편 90편에서 증언 합니다. 우리의 일평생이 수고와 슬픔뿐인 세상에서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원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울고 애통하는 자는 영원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