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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6:10~28 너를 구원하셨느냐? 2015. 9. 1

 

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20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21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10절을 봅니다. 다니엘이 변개할 수 없는 메대와 바사의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전에 하던 대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죽는 줄 알고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포로로 잡혀온 자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느라 공개적으로 기도하면 죽음에 이를 줄 알면서도 기도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죽을 줄 알고도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은 지난주에 본 대로 이미 역사의 끝을 본 것입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아무리 요란스럽게 떠들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견고하게 섰다는 것을 계시로 알았기에 죽음 앞에 감사기도 한 것입니다.

 

시편 2:1~6절입니다.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다윗의 시편이지만 계시를 받은 자는 이 사실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분노하며 헛된 일을 꾸미더라도 여호와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면서 이미 시온에 왕을 세우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7~12절입니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온의 왕이 철장의 권세를 가지시고 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에게 입 맞춘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승리라는 그 약속을 구약에서  이미 받고 믿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다윗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과 승리할 것을 이미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다윗과 다니엘과 같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하여 믿은바 그 언약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세상의 요란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하나님의 언약을 십자가로 완성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죽음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언약 완성의 능력이 죽음조차 이기는 것을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누가복음 2:24~33절입니다.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립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란 메시아 오심입니다. 시므온이 주의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습니다. 이제 시므온은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이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신다고 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물론 그 아기가 할 일이 이방인의 빛이며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 합니다만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죽을 수 있기에 감사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다니엘도 이미 역사 끝에서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계시를 받았기에 지금 죽을 줄 알고서도 감사의 기도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히브리서 2:14~16절입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아담의 타락 이후의 모든 인생들은 다 혈과 육에 속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도 다 혈과 육에 속한 자들입니다. 혈과 육에 속하였다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신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만이 스스로 생명을 내어 놓는 죽음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모든 인간들은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죽음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이러한 죽음의 종노릇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 오직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죽을 줄 알고서도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처럼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자신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의 문제가 해결이 된 자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생물학적인 죽음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실패도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도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도 두려운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죽음에 종노릇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의 구원이 임하게 되면 죽음도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20~24절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다니엘서를 보면서 신약의 서신서 까지 왔습니다만 다니엘, 시므온, 바울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죽음을 감사하고 죽음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사시기에 죽는 것도 유익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일을 추진하던 사람이 죽으면 실패로 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가장 귀한 가치가 무엇입니까? 순교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을 가장 귀한 가치로 여깁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자들의 공통점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지금 나는 죽기를 원하십니까? 살기를 원하십니까? 나의 몸이 괴로워서 죽기를 원하는 그런 죽음이 아니라 정말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나는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그런 죽음을 원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질문하면 구원 받았느냐는 질문이 됩니다.

 

오늘 본문 11~13절입니다.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왕의 도장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는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확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니라 하는지라 13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

 

한 달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간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자들이 다니엘을 지켜본 것입니다. 그런데 어김없이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할 뿐 아니라 죽을 줄 알고도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을 왕에게 고발하기 위하여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왕의 규례를 언급하면서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않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다고 고발합니다. 그들이 다니엘을 잡기 위하여 법을 만든 것을 왕이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왕이 심히 근심하며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다가 해가 질 때가 이르렀습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에 대한 이런 마음은 다니엘을 왕 다음의 높은 자리에 임명하면서 다니엘의 사람됨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왕실의 기록들을 통하여서도 다니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기에 다니엘을 구하려고 애를 쓰지만 어쩔 수가 없는 지경입니다.

 

15~17절입니다. “15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께서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고치지 못할 것이니이다 하니 16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해가 질 때까지 왕의 명령이 내려지지 않자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 압박을 합니다.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께서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고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왕이 이것을 어기면 왕이라도 탄핵하겠다는 것입니다. 왕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으라고 말을 하면서 왕이 다니엘에게 말합니다.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합니다. 자신이 왕이지만 다니엘을 구원할 수 없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신앙을 주신 하나님이라면 너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을 왕이 합니다. 그리고 돌을 굴려 굴 어귀를 막고 왕과 그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합니다.

 

18~23절입니다. “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20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왕이 궁에 돌아가 밤이 새도록 금식하면 오락을 그치고 잠도 자지 않습니다. 어떻게 다니엘에 대하여 왕이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살얼음을 딛는 것과 같은 정치판에서 참으로 신실한 한 사람 다니엘을 만난 것입니다. 왕에게 손해를 끼친 적이 없는 청렴결백한 이런 신하를 어디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다니엘에 대하여 왕이 밤새 고민하다가 이튿날 새벽에 급히 사자 굴로 가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고 묻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기도 합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맞습니까? 구원파와 같은 그런 구원의 체험과 날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도 자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종교적인 욕망입니다. 오래 전에 임 장로님이 신천지 사람 두 사람을 데리고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들에게도 구원에 대한 욕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옥가라고 해도 가야지요! 그 말을 했더니 어떻게 목사가 그런 말을 하느냐고 화들짝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천지든 구원파든 이들의 욕망은 이 세상의 목숨 건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 하는 욕망이 더 강렬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구원 욕망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라면 다니엘과 시므온과 바울과 같은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죽음도 감사합니다. 평안히 놓아주십니다.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좋다는 고백을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자들의 공통적인 고백들이 이러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까!

 

21~23절입니다. “21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다니엘이 왕에게 인사를 하면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무죄함이며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대에 죄수나 반역자를 처형할 때에 분명히 죽을 수밖에 없는 처형을 하였는데도 죽지 않았다면 이것은 무죄한 사람이라는 것을 신이 기적적으로 보호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기뻐 명하여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올리니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다리오 왕을 통하여 다니엘의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너를 구원하여 주셨느냐고 묻습니다. 다니엘이 구원을 받은 것은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어진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이런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24절입니다. “24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다니엘을 모함한 자들의 가족까지 사자 굴에 던져 넣어버립니다. 그러자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을 움켜서 뼈까지도 부서뜨린 것입니다. 사자 굴에서 살아난 다니엘로 인하여 그들이 다니엘을 모함 한 것이 드러났기에 그들이 오히려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이에 다리오가 조서를 내립니다.

25~28절입니다. “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왕이 조서를 내린 내용입니다. 자신의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다니엘을 통하여 경험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다리오 왕이 고백한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분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으며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면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시기도 하시며 하늘과 땅에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분이시기에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 다음의 고레스 왕의 시대에까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다니엘을 보면서 우리도 다니엘처럼 죽음으로 신앙을 지켜서 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가 되자고 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런 영향력을 끼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 역사의 끝은 본 다니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임을 이미 보았습니다. 거대한 신상들이 이 세상의 국가들이며 그 나라들이 사람에 손에 의하지 아니한 뜨인 돌에 의하여 가루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작은 돌은 태산을 이루는 것이며 그의 나라는 지금 다리오 왕이 고백한 그런 나라입니다. 망하지 아니할 영원한 나라가 세워졌음을 이미 그는 묵시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죽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용히 그 죽음의 길로 걸어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4~18절입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만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타락한 인생들은 일평생에 죽음을 두려워하여 죽음에 종노릇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리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세상이 보면 죽음의 자리로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이 보면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을 살리신 자리가 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은 다니엘과 시므온과 바울과 같은 고백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러한 고백이 나옵니까? 우리는 과연 구원을 받았습니까? 다리오 왕이 다니엘에게 물었듯이 네가 항상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를 사자들의 입에서 너를 구원하셨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에 다니엘이 구원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보다 더 선행한 구원이 있습니다. 그 구원이란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이미 구원을 얻은 자로서 자신이 죽을 줄 알고도 그 죽음의 길로 걸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구원 얻은 자들이 가는 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자신의 생존이나 자신의 자존심을 위하여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털려지고 그리스도가 채워지는 그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은 자는 예수님을 믿는 길이 세상에서 죽는 길인 줄 알고 가는 길입니다. 세상에서 잘난 나가 되고 싶은 것들이 다 털려나가고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지는 그 길이 십자가를 따라 가는 길입니다. 이 구원이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