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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11~13 네 눈을 뜨라 2017. 12. 28

 

11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12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13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11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비록 아이라 하여도 자기 행위로 사람됨을 드러낸다. 그가 하는 행실을 보면, 그가 깨끗한지 더러운지, 올바른지 그른지, 알 수 있다.” 사람의 행위라는 것은 그 사람의 어떠함을 알 수가 있는 척도가 됩니다. 행위라는 것은 그 사람의 속에 있는 뜻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은 항상 악하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로 타락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죄인입니다. 존재론적으로 죄인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속이 겉으로 나옵니다.

 

어린 아이라도 자기의 행위로 자신의 사람됨이 드러납니다. 그 행실을 보면 그가 깨끗한지 더러운지 올바른지 그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는 깨끗합니까? 더럽습니까? 올바릅니까? 그럽니까? 우리는 후자임을 압니다. 성경으로 통하여서도 알고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경험적으로도 압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도 그 행위로 그 사람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행위란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식까지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은 어린아이보다 더 악한 이유는 자신의 행실을 위장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간에 그 행위의 결과로 의와 생명에 이를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러면 왜 어린 아이 같아야 천국에 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모든 것을 부모가 다 해 주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어린 아이 일수록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된 상태입니다. 이것이 원래 피조물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인생들이 사탄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 먹고 선악의 주체가 되어 자신이 마치 창조주나 된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인생들이기에 모든 인간이 죄인입니다.

 

마태복음 7장을 보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결국 열매로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알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떤 나무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나무인데 그들이 맺힌 열매는 악한 열매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6:38~40).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기는커녕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 그들의 속이 어떠한지가 다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열매로 안다는 것은 단지 선악체계와 인과율에 의한 율법이나 양심이나 그 사람이 속한 문화적인 해석으로 열매를 가늠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신과 함께라는 영화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영화의 소개를 보면 결국 착하고 바르게 살면 죽어서 좋은데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세상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열매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상대적인 행위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 보편적인 생각에는 인간의 가능성에 의미를 둡니다. 그래서 인류가 스스로의 그 운명을 개척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어떻겠습니까?

 

로마서 3:9~18절입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1)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사도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다 이와 같은 죄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인용된 말씀들은 다 구약의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가 이렇게 보기 전에는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자라고 생각하였기에 예수를 믿는 자를 다 잡아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살인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인간이 왜 자신의 행위로서는 의에 이를 수가 없는지를 철저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이 복음이 됩니다(3:22).

 

본문 12절입니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단지 인간의 귀와 눈을 지으셨다는 말씀만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듣고 보는 것으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인간이 들어야 하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 눈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내용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생은 듣고 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만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무엇을 듣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시편 115:1~9절입니다. “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2 어찌하여 뭇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4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9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우상숭배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조롱합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세상의 강대국이 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무너뜨립니다. 그러니 그들이 만들어 세운 우상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상이라는 것이 눈과 귀와 코와 손과 발을 만들어 놓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상을 인간이 만들어 섬기는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소원을 그 우상에게 투사시켜 자기에게로 환원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자의 최종영광은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우상숭배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이 영광을 사람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찬송하면서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합니다. 그가 너희의 도움과 방패라고 합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합니다. 그 이유는 나의 영광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7~8절입니다. “7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이 말씀은 앞뒤를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에서도 인도하여 내실 것을 말씀하시는 본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택하셔서 자신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이어지는 9~13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열방이나 간에 모두가 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결코 자기 힘으로 출애굽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역시 자기 힘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그 언약을 지킬 수가 없어서 나라가 망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언약이 영원하여 망한 후에도 바벨론에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어지는 14~20절을 봅니다. 봉독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다시 구원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이며 이스라엘의 창조자시며 왕이 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셔서 인도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한 것이기에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믿는 것이 바로 눈을 뜨게 된 것이며 귀가 열리게 된 자들입니다.

 

이사야 64:1~4절입니다.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3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 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주의 구원을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께서 그 일을 이루신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5~12절입니다. 봉독이스라엘이 범죄 함으로 주께서 진노하셨기에 나라가 망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마저 불이 탔습니다. 백성들은 다 부정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의라고 하는 것은 다 더러운 옷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고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망이 있는 것은 8절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아버지시라고 합니다. 우리는 진흙이며 주는 토기장이 이시기에 주의 손으로 지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면 비로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5:20~21절입니다. “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여호와께서 반드시 보고 듣게 하시겠다는 여호와의 의지의 말씀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주의 말씀에 복종을 하는데 인간은 반역하기에 하나님은 심판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심판을 재촉하는 일들이 31절 이하에 나옵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긴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겔 12:1~3절입니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3 인자야 너는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서를 부분적으로 봤습니다만 이런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눈을 열고 귀를 열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봅니다.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성경의 이런 말씀이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는 내용을 전하기 위한 것일까요? 그런 말들은 성경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가르치고 배웁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이런 말씀을 다르게 봐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을 알게 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 썩는 양식의 이야기는 세상에 가득합니다.

 

마가복음 8:14~21절입니다.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3)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 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겉과 속이 같지 않습니다. 속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한데 겉만 꾸민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경계하면서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누룩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을 생각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관심사가 생명의 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떡에 있음이 제자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음이 둔하다고 하시면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에게 나누어주고 조각남은 것이 몇 바구니냐고 하시자 열둘이라고 답을 합니다. 그리고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에게 떼어 줄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고 물으니 일곱이라고 대답을 하지만 아직 깨닫지 못합니다. 오천 명이 먹어도 열둘이 남는 것이고 사천 명이 먹어도 일곱이 남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알아보는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만 알아듣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택함을 받은 열두 지파와 열두 제자를 통하여 계시하시는 것이며 그러한 자들을 온전하게 구원하여 내신다는 일곱으로 말씀을 하시지만 제자들이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가복음 8:22~25절입니다.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예수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눈을 뜨게 하실 수 있는데 왜 이 맹인에게 두 번이나 안수하시면서 눈을 뜨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앞의 단락에서 제자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반드시 눈을 뜨게 하시고 귀로 듣게 하시기 위하여 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인 이어지는 말씀에서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조차 결국 십자가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을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이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찾아오셔서 자신을 보여주시고 그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시자 이제 보고 듣게 됩니다.

 

요한복음 14:16~20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세상은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일을 주님께서 이루어내시는 일이 그의 죽으심과 부활과 성령의 임함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일하심의 결과로 눈뜨게 된 자가 성도입니다.

 

고린도전서 2:6~9절입니다. “6 그러나 우리가 2)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3)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십자가로 나타날 줄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였고 귀로 듣지도 못하였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장의 십자가의 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며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믿는 것이 눈을 뜨게 된 자이며 귀로 듣게 된 자들이기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알기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10~12절입니다.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이 임하게 되면 우리가 눈을 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됩니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보고 듣는 자들이며 눈을 뜬 자들입니다. 썩는 양식이 아닌 생명의 양식에 눈이 뜨여진 자들은 성령과 말씀 안에서 지금부터 영원토록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