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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7:1~2 자랑하지 말라   2018. 6. 13

 

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2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오늘이 지방 선거일입니다. 모든 후보자들이 당선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나옵니다. 여론조사를 통하여 도저히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하여도 역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이 과정에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종교가 있는 자들은 신에게 빌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여서라도 당선이 되면 자랑거리가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랑을 위하여 일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런 자랑거리가 생기면 사람들마다 칭찬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자랑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우리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자나 땅에 있는 자나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이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2:10,11).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인간은 자기를 자랑하고 싶고 자기가 칭찬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은 자기 자랑이 안 됩니다. 오히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에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5:44)” 인간이 자기 영광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의 본성입니다.

 

오늘 우리도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증거는 피조물인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주를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의 영원성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죽어가기에 자신이 유한한 인생인줄은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의 영원성을 추구하게 됩니까?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처럼 자기의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인생의 모습이 바벨탑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자 우리의 흩어짐을 면하고 우리의 이름을 내자고 하는 그 정신이 오늘날도 여전한 것입니다. 김정은이나 트럼프가 역사적 만남이니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자기의 이름의 영광을 위한 계산기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실상이 어떠한지 너무나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들이 인간의 연약함을 어떻게 말하는지 봅니다. 사람은 입김이며 속임수라서 저울에 달면 입김보다 가볍다고 합니다(62:9). 인생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풀의 시들어짐과 같다고 합니다(102:11). 인생이 땅의 먼지이며 그 날이 풀과 같습니다(103:14,15). 인생의 호흡이 코에 있으니 수에 칠 가치도 없다고 합니다(2:22).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고 합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하는 모습을 이사야 선지자는 지렁이, 버러지라고 합니다(41:14). 인생을 안개라고 합니다(4:14). 이런 인생과 인생의 일이 다 헛되다고 합니다.

 

인간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타락한 인간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시인들이나 철학자들도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실상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소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근원이 어떠한 자인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피조물 주제에 창조주의 자리를 찬탈하여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들에게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예수가 자신이 주라고 할 때에 사람들은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일을 계획할 때에 자기를 자랑하려고 하거나 칭찬을 받으려고 하거나 아니면 복수를 하려고 할지라도 사람은 그런 것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내일 무엇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러나 오늘 죽어버리면 내일에 대한 이야기는 다 물거품이 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희망이 없으면 사람들은 행동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일에 대한 생각과 계획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성경에서 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9:2절입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엘리야 한명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대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가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이 내일 이맘때까지 엘리야를 죽이지 않으면 신들이 자기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다는 자기 저주로 맹세를 합니다. 북 이스라엘을 호령하던 그 위세로 내일까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맹세를 하였지만 그러나 결국은 이세벨이 개들의 밥이 되었습니다. 온갖 우상숭배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그 벌을 받은 것입니다.

 

에스더 5:14절입니다.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이 이르되 높이가 오십 1)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가소서 하니 하만이 그 말을 좋게 여기고 명령하여 나무를 세우니라아하수에르 왕의 다음 권세를 가진 하만이 가장 기분 나쁜 일이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엎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나 있으니 아내와 주변 친구들이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청구하여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라고 합니다. 하만이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그 나무에 모르드개가 아니라 하만 자신이 달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니 인간은 내일 일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2:16~21절입니다.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이유는 바로 앞의 13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자신의 형이 아버지의 유산을 가로챈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유산을 자신과 나누게 하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면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율법에도 있는 유산을 나누는 법에 의하여 나누어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마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면서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하십니다.

 

야고보서 4:13~17절입니다.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오늘 본문의 해석과 같은 말씀입니다.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도 저것도 할 것이라고 하는 자가 자신의 인생이 안개와 같은 자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안개인 줄도 모르고 허탄한 자랑을 한다면 그러한 자랑이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희망을 말합니다. 내일의 비전을 말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이런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무엇을 하겠다고 하지 말고, 내일 선행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자기를 모르는 것입니다. 신앙도 내일이 아닌 오늘 여기서 주님 앞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30~34절입니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내일 일을 자랑할 것도 없지만 내일 일을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를 비유로 말씀하실 때에 생활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가시떨기 밭에 뿌려진 씨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장의 내일의 염려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게 되는 것을 말씀하시며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것들은 아버지가 없는 이방인이나 구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하시면서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은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이기에 주님만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정도의 말씀만 찾아봐도 우리는 내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도 없고 내일에 대하여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 주와 함께 살면 그것이 천국을 맛보며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만족과 감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자아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을 미래로 던져놓고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하여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뿐 아니라 신에게 자신의 정성을 바침으로 더 나은 나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말로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그 안에 있는 자기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이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얼마나 책망하는지 몇 곳을 보겠습니다.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10: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십니다(12:3). 이들은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는데 아첨하는 말과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12:2). 시편 49편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단 한사람의 생명도 구속하지 못합니다. 그 생명의 속전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돈을 의지하고 자랑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재물을 남겨두고 죽어갈 것인데도 자기의 이름으로 집과 토지를 등기하고 영원히 대대에 있을 것이라고 하는 자들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기에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자들을 사람들은 자랑하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생들을 시편 90:10절에서 한 절로 요약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예레미야 9:23~24절입니다.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자랑하지 말 것과 자랑할 것을 다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자랑하고 자랑해야 할 것을 자랑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참으로 자랑할 것을 자랑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로마서 1:23~27절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3)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인간의 행위로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보다 함을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6~31절입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 받은 자들은 자기를 자랑할 것이 없는 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로 모인 성도라면 자기의 잘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고후 11:30, 12:5).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적인 행위로 육체로 자랑하려는 자들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면서(3:18)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6:14).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이 그 피로 값을 주고 산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