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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1~6 너는 아느냐? 2018. 9. 5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1)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6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본문 1절에서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라고 합니다. 30:1~4절까지가 아굴의 잠언인지 오늘 함께 읽은 6절까진지 30장 전체인지 확정할 수가 없습니다. 31장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말한 것이로 보아 30장을 아굴의 잠언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아굴이라는 사람은 야게의 아들이며 아굴이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 사람들의 족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케한(P. Skehan)1절의 야게아굴이라는 히브리어를 유추하여 아굴을 나는 나그네다로 봅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자신을 나그네라고 한 것입니다(47:9). ‘야게도 히브리어로 유추하여 여호와로 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자기 아들로 부르는 이스라엘(4:22)에게 한 잠언으로 봅니다. 모든 성경은 다 자기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까지 볼 수 없어도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는 자들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딤후3:15,16).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하나님의 계시로 받는 것은 우리의 가지고 있는 기존의 가치체계로 성경을 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박윤선 목사는 이런 태도를 계시의존사색(啓示依存思索)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으로 그 계시를 믿는 믿음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아굴이라는 사람이 자신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짐승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총명이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총명이 없다는 것은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것이 참으로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크고 높으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표현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참으로 아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짐승과 같다는 것은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할 때에 쓰는 성경적 표현입니다.

 

시편 49:6~13절입니다.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10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1 그러나 그들의 속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우리의 삶의 방향성이 이런 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사람이 존귀하다고 하지만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이어지는 14~20절도 봅니다.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세상에서 모든 영광을 다 누리고 존귀하게 살았다고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멸망하는 짐승이 부럽습니까?

 

본문 4절입니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아굴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같은 지혜가 없는 짐승과 같다고 하면서 당신은 이런 것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사람들의 성공실패를 무엇으로 보는지 시편 49편에서 너무 잘 나옵니다. 자기의 재물을 늘리고 부동산을 자기 이름으로 등기함으로 영원히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생시에 치부하고 영광이 더함으로 자신을 축하하고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도 본문 4절을 모르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4절의 말씀은 욥기 38장을 생각나게 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신앙을 자랑하시자 사탄이 참소를 합니다. 욥은 알지도 못하는 중에 하늘에서 일어난 일로 인하여 갑자기 재앙을 당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와서 네가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때에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끝까지 주장하다가 욥기 38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네가 이런 것을 아느냐는 질문과 잠언 30:4절의 내용이 비슷합니다. 욥기 38장의 압축과 같은 내용이 본문 4절입니다.

 

4절의 처음 질문인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1절을 볼 때에 야게는 여호와로 아굴은 야곱 곧 이스라엘로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근거로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다가 광야에서 잘 때에 하늘로 연결된 사닥다리를 본 것입니다(28:12~13). 그러므로 야곱이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는 아니지만 하늘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사들을 보고서 그곳을 벧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성취를 예수님께 요한복음 1:5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신 분이란 하늘의 사정을 밝히 아시는 ㅜㄴ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 우리식의 표현으로 하늘에 올라갔다고 내려온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1~15절입니다.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선생인 니고데모는 아직 거듭나지도 못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4:6절을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합니다. 니고데모가 율법의 선생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거듭나지도 못한 사람이며 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최고에 이를 수 있는 선이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가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육이라고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이 영의 세계로 넘어올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을 다시 봅니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만 그 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는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 바람을 불게 하심으로 물이 줄어듭니다(8:1). 바람으로 홍해를 가르시고 홍해를 덮어버리십니다(15:10). 바람으로 자신의 사신을 삼으십니다(104:4).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십니다(135:7). 그리고 물을 옷에 싼 자,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합니다. 이러한 일을 하시는 분은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지혜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아들에 대하여 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씨와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아브람이 사래와 결혼하였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불임부부에게 씨를 약속하시고 땅을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땅의 약속은 다윗시대에 이루어집니다. 씨에 대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집니다(3:16).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땅도 새 하늘과 새 땅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약에서 아들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계시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430년을 지낸 후에 하나님의 약속의 때가 되어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을 시켜 내실 때에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4:22~23절입니다.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내신 것이라면 입 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길러내시고 출 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내십니다. 그래서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하시면서 그 아들을 출애굽 시키시는데 바로가 가만히 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나고 마지막 장자의 죽음에서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아 출애굽을 한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따로 자기 아들을 세우신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2:7절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세상이 요란한 것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 아들에게서 그들이 떨어져 나가려고 하기에 요란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비웃으시고 분노하심으로 아들을 세우십니다. 그 아들에게 입을 맞추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급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17:3).

 

마태복음 3:17절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로부터 들린 소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8:23~27절입니다.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오늘 본문 4절에서 바람을 장중에 모으시는 분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신약에서 이렇게 답변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7:5절입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변화산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목격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실 때에 모세와 엘리야도 나타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곳에서 예수님의 별세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하늘의 음성을 들을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16~21절입니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 확실한 예언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 5~6절입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6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언은 창조주와 그의 아들을 너는 아느냐고 물었지만 구약에서 그 창조주와 아들이 누구신지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분이라고 밝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방패라고 하신 것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15:1).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방패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에 무엇을 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면 너를 책망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무엇을 더하면 그것이 거짓말 하는 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데(5:39)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무엇을 더하는 것이 됩니다. 목사가 설교를 하거나 어떤 누구라도 성경을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신 그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말씀에 인간의 사상을 더하고 인간의 욕망을 더하는 것은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이렇게 말하는 자는 아직도 십자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십자가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 십자가에 자신의 사상과 철학과 가치관을 넣어서 말하면 거짓말 하는 자가 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저 자신도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복음과 생명이라는 책을 쓴 서형섭씨의 서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너무나 크고 너무나 높으신 하나님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고 사람들 앞에서 수치기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1세기 철학자 안셀무스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만 글만 아니라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무엇을 안다고 하는 그것이 과연 바르게 아는 것이냐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분명한 기준이 없느냐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입니다. 누구의 설교나 누구의 신학논리가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설교를 듣기 보다는 성경을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설교는 많이 듣지만 예수님의 설교인 성경을 잘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저의 설교를 녹취하기에 제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설교를 녹취하다가 보면 계속하여 반복하여 듣고 기록하여야 하기에 나도 모르게 그 설교에 세뇌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백성을 인도하십니다만 모든 설교는 얼마든지 자기의 뜻을 보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단지 말씀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나의 사상과 가치관과 욕망을 성경에 투사시켜 나의 것으로 끌어오면 거짓말하는 자가 됩니다.

 

요한계시록 22:18~19절입니다.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두루마리의 예언이라면 일차적으로는 요한계시록을 말하지만 성경전체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문맥을 따라 가장 가까운 말씀은 17절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고 합니다. 듣는 자도 오라고 합니다. 목마른 자들과 원하는 자들이 값없이 생명수를 받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 더하거나 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로 앞의 구절인 16절도 봅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뿌리며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고 믿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사람에게서 나올 수가 없기에 너희는 창조주와 그 아들을 아느냐고 잠언서를 통하여 질문을 하고 나서는 성경 전체에서 그 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계시록 22:20~21절입니다.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2)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도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가 오실 것과 그의 고난과 영광에 대하여 다 증언한 것입니다(벧전1:11).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다 가져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고 믿게 된 자들은 그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