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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실 사정으로 영상녹화와 음성녹음을 재편집 하였기에 중간에 끊김 현상이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도서 2:1~11 나를 위하여 2018. 11. 14

 

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 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3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7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8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지난 한 주간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았습니까? 바람을 잡으려고 살았습니까? 생명을 잡으려고 살았습니까? 지난주에 우리는 생명을 잡는 일을 할 수가 없고 거저 평생토록 수고하다가 죽는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허무하게 죽어가는 인생살이에서 나를 즐겁게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늙으면 힘이 들어 놀지 못하니 젊어서 놀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나온 노래인데 고래야전폭적으로 놀아보세라는 곡도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사람들이 즐거워할 일을 다 해보았습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 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다고 합니다. 이미 헛되다는 결론을 내려놓았습니다만 무슨 일을 해서 자신을 즐겁게 하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와 부와 권력으로 사람이 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은 다 해보았습니다. 이것도 지혜를 찾는 한 방편으로 생각했습니다.

 

2절입니다.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웃음이라고 생각하고 웃을 일과 희락에 대하여 경험해 보니 이것도 미친 짓이라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합니다. 1여전도회 가을 소풍에 따라 갔습니다. 회원 중에 부산의 어느 교회 노인학교 강사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오가면서 여러 가지 활동으로 많이 웃었습니다. 그런 활동을 잘 따라하면 치매 예방과 온 몸을 튼튼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인도하는 분은 아주 건강하신 줄 알았는데 화장실에 급하게 자주 갔습니다.

 

3절을 봅니다.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지혜를 찾기 위하여 무엇이 인생의 즐거움인지 자신을 즐겁게 해 보기 위하여 술을 마셔보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인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4~6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4 나는 여러 가지 큰일을 성취하였다. 궁전도 지어 보고, 여러 곳에 포도원도 만들어 보았다. 5 나는 정원과 과수원을 만들고, 거기에 온갖 과일나무도 심어 보았다. 6 나무들이 자라나는 숲에 물을 대려고 여러 곳에 저수지도 만들어 보았다.”

 

여러 가지 큰 사업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한 어느 회장은 부도가 났습니다만 솔로몬의 무역은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잘 나옵니다. 그 엄청난 사업만 한 것이 아니라 여러 궁전과 포도원과 멋진 정원도 가꾸어 본 것입니다. 정말 자기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평생에 하나도 이루지 못한 일을 솔로몬은 여러 가지를 다 해 보았습니다.

 

정원 가꾸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타샤의 정원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타샤 튜더는 200893세로 죽었습니다만 4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 100 여권을 발표하였으며 미국 버몬트 주에 30만 평의 대지를 40년간 꾸려온 정원사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나와서 봤습니다. 본인이 직접 출연하여 자주 한 말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경제력이 없어서 자신이 일을 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해서 이렇게 이루어내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다른 사람이 평생에 겨우 이룰 일을 수도 없이 해 보았습니다.

 

7~8절입니다. 타샤 튜더는 자신과 가족끼리 정원을 가꾸는 일을 했습니다만 솔로몬은 임금이고 부자이기에 남녀 노비를 사고 그들 사이에서 나온 자녀들은 다시 종이 되기에 수많은 종을 거느린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그 어떤 사람보다 소와 양떼가 많았으며, 금과 은과 각종 보배들을 자기를 위하여 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을 많이 두었다고 합니다. 처와 첩을 무려 천명이나 두었습니다. 노래하는 남녀라면 악기까지 다룰 것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오케스트라 단원을 자기 집에 둔 사람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하루의 식사량이 얼마이겠습니까? 열왕기상 4:22~23절입니다. “22 솔로몬이 쓰는 하루 먹 거리는 잘 빻은 밀가루 서른 섬과 거친 밀가루 예순 섬과 23 살진 소 열 마리와 목장 소 스무 마리와 양 백 마리이고, 그 밖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 들이었다.” 솔로몬 왕궁의 하루 식사량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다고 합니다. 새 번역은 이렇습니다. “드디어 나는 일찍이 예루살렘에 살던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큰 세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지혜가 늘 내 곁에서 나를 깨우쳐 주었다.” 예루살렘의 그 어떤 사람보다 부귀영화를 다 누려보았지만 지혜가 늘 자기 곁에서 깨우쳐 주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하였다면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을 텐데도 지혜가 여전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지혜를 가지고 참된 인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시험 삼아 즐겨보았다는 말에서 답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10절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라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눈이 원하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자신의 모든 수고를 자신의 마음이 기뻐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수고를 하여 어떤 결과가 나오면 마음이 기쁩니다. 그래서 이것을 자신이 수고하여 얻은 자기의 몫이라고 합니다. 전에 번역은 자신의 분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마다 수고하여 이루어내는 기쁨들이 있기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수고합니다.

 

11절입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할 모든 일들을 다 해보았다고 합니다. , 사업, 정원, 보석-오늘 뉴스를 보니 스위스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핑크색 다이아몬드가 574억에 낙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솔로몬이 이런 보석들도 많이 가져보았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음악, 여자들까지 한 사람이 평생을 해 보아도 못해볼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며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함에도 오늘도 사람들은 이런 헛된 것들을 즐거움이라고 하고 행복이라고 하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헛된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입니까?

 

근원적인 답변은 창세기에 다 나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였지만 뱀의 유혹을 받아서 그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그 선악과를 먹음으로 생명나무가 있는 곳에서 추방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인생들은 오늘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이 즐겁다, 재미있다, 성취가 있다는 모든 것들이 아담의 타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용입니다. 아담의 후손들이 추구하는 모든 즐거움이라는 것을 솔로몬이 직접 체험하여 본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은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 아무른 유익이 없다고 합니다. 왜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다 체험하여 보았는데 헛되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자기를 위하여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만 내가’ ‘나를 위하여이런 표현이 얼마나 무수히 나옵니다. 그 중에 나를 위하여라는 말은 네 번이나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 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이 시험 삼아 자기를 위하여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다 해 본 것입니다. 그 결론은 헛되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 무익한 것이라고 합니다. 무익한 이유는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영원하지도 못하고 생명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살아가면서 나를 위한 즐거움의 추구가 헛되다는 결론입니다. 성경에서 헛됨이란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출애굽기 20:1~6절입니다.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1)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속에서 언약하신 대로 때가 되어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에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합니다.4절을 보시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그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 합니다. 모든 종교는 형상과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형상을 금지하라고 합니다. 형상을 만들어 내어 섬기면 그것을 우상이라고 한 것입니다.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이유는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이 다 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읽으면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렇지!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기에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섬기며 봉사하는 일을 하면 자기를 위한 재미보다 훨씬 나은 재미가 있습니다. 시간과 물질을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면 훨씬 보람됩니다. 그렇게 평생을 봉사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가만히 따지고 보면 자기 재미, 자기 보람이라는 자기를 위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기적은 삶보다 이타적인 삶이 훨씬 좋지만 궁극적으로 따지고 보면 어떤 형상물을 만들어 섬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하여도 보람이나 선함이라는 이미지를 섬긴 것입니다.

 

출애굽기 20:5~6절을 다시 봅니다.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은 그 죄를 갚기를 삼사 대까지 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면 결국 누구 좋은 것이 됩니까? 내가 저주를 받지 않고 천대 까지 은혜를 받고자 하는 것이라면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까?

 

신명기 30:15~20절입니다. 봉독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출애굽하고 난 후에 시내산에서 언약하신 그 내용들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명과 복,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둔다고 합니다. 생명과 복의 길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것이 너와 네 자손이 생명과 복을 누리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과 복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을 위한다면서 제사도 드리고 성전도 짓고 절기도 지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나라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셔서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포로기간에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금식 일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와서 그런 금식을 다시 해야 하느냐고 선지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대답하신 내용은 이러합니다(7:5,6).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그런 금식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이냐포로로 잡혀가서 금식하며 애통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다시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런 자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의 핵심 내용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2:28~34절입니다. “봉독 서기관들이 율법의 핵심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율법의 핵심 강령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율법을 지킨 것은 결국 자기 사랑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무엇인지 모르면 우리는 평생 자기를 위하여 우상숭배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거래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듣고 믿은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또 물어봐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은 것이 나의 선택으로 귀결된다면 이것도 나를 위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예수님 홀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구하셨습니다. 그 결국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 다 이루심의 내용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찾아내시는 것입니다(6:38~40).

 

그 뜻을 십자가로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오늘도 복음으로 자기 백성을 찾아내십니다. 그런 자들은 자신이 원치 않는 길로 이끌려 갑니다. 자기를 위한 삶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작은 성취들을 맛보며 잠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살펴본 대로 자기 수고의 성취를 즐거워하지만 나의 수고로 만들어진 것들은 결코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이나 영원한 생명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적인 헌신과 충성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그 십자가를 우리에게 넘겨주심으로만 생명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가게 됩니다. 이것은 다시 금욕적이거나 율법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의 어떤 결단과 결심으로도 주님을 따라 갈 수가 없는 자임을 알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은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할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그 결단과 결심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시기에 세 번이나 배신하여도 따라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일하심 때문입니다.

 

로마서 14:7~9절입니다.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믿음이 연약한 자를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판단하고 비판한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믿는다는 것은 나를 위하여 살거나 죽을 수가 없게 된 자들입니다. 일어서거나 넘어지는 것도 주께서 허락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책임지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무언가 좀 잘하는 것이 있다고 그렇지 못하는 자를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바울사도가 주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이 어떤 것인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산자와 죽은 자의 주님이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게 되면 이제부터 자기를 위하여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이 자유를 누리는 자가 성도입니다.